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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재단 뉴스레터 〈예술인〉을 위해 함은주 스포츠인권연구소 대외협력위원장이 글을 써주셨습니다. 스포츠인권연구소는 폭력과 성폭력, 학습권 침해, 건강권 침해 등 한국 스포츠의 혁신과 스포츠 인권, 성평등 스포츠에 대한 연구와 활동 등을 실천하는 단체로 2020년 4월 설립되었습니다. 예술계와 많은 유사점이 있는 스포츠 현장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예술 현장에 대해서도 다시금 숙고할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0 도쿄올림픽 개최 기간 동안 스포츠인권연구소 성평등 스포츠 세미나팀의 SNS 대화방은 매우 소란하였다. 개회사 및 IOC 위원들의 사전 인터뷰에서 언급된 ‘완전한 성평등을 이루는 올림픽’2) 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서로 경쟁하듯 발견한 차별의 증거들을 공유한 탓이다. 필자를 포함한 스포츠 선수 및 체대 출신인 구성원들은 자신의 스포츠 경험까지 곁들여 생생한 차별의 증거들을 찾아 풀어내느라 올림픽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아주 피곤한 시간이었다. 올림픽을 보는 내내 눈에 걸리는 불편한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고, 자꾸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육상을 비롯한 여러 종목에서 여자선수들만 짧고 타이트한 유니폼을 입는 것이 불편했고, 자녀가 있는 여자선수에게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엄마’, ‘로켓맘’이라거나 ‘올림픽 슈퍼맘’, ‘엄마영웅’이라 호명하는 것도 불편했다. ‘올림픽 슈퍼대디’, ‘아빠영웅’으로 호명된 남자선수를 본 적이 있던가? 여자선수에게 붙는 낭자, 요정, 여신 등의 호칭도 거슬렸다. 체조 ‘마루운동’ 종목에서 여자선수 경기에만 음악과 안무를 필요로 하는 것, 체조에서 여자선수가 시행하는 최고 난이도 동작이 여자선수에겐 위험하단 이유로 감점을 받는 상황,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모두 남자 축구경기만 방송해서 여자 배구경기 시청을 놓치게 만드는 것, 올림픽 중계방송의 중계 캐스터의 대부분이 남자 아나운서이며 여자 아나운서는 대개 리포터의 역할을 맡는다는 사실 등은 세계 최정상 선수들이 펼치는 탁월한 스포츠의 향연을 오롯이 즐길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불편했던 2020 도쿄올림픽은 IOC가 성평등 가치를 올림픽에 반영하겠다며 2018년 발표한 성평등 리뷰 프로젝트 3)를 실행한 첫 올림픽이었다.
IOC의 성평등 리뷰 프로젝트 시행으로 올림픽 역사에 존재하지 않던 양궁 3관왕이 탄생했다. 양궁 혼성팀 초대 금메달리스트이자 단체전과 개인전까지 금메달을 거머쥔 안산 선수는 양궁 뿐 아니라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달성했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에서 ‘숏컷’을 한 여대생, 페미라며 온라인 괴롭힘(online abuse)을 당했다. 안산 선수의 SNS에 댓글 폭격이 이어졌고 특정 커뮤니티에서는 숏컷을 한 페미의 금메달은 인정될 수 없다며 금메달 박탈 청원을 올리자는 글들이 게시되었다. 짧은 머리, 페미니스트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차별과 혐오를 지나 스포츠 선수 개인에 대한 온라인 폭력으로 발전한 대표적 사례다.
남성에게는 묻지 않을 ‘왜 짧은 머리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은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특정한 여성상이 고정관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고정관념에서 여성은 신체능력이 남성보다 약하고 자동차, 기계 그리고 총, 검(sword), 바벨(barbell; 역기)과 같은 무기나 쇠붙이를 다루는 데 미숙하다.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탁월한 스포츠 실력을 보인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받지 않아도 될 질문들을 받고 ‘마녀’란 호칭을 얻는다. 한편으로는 여성이 아닌 스포츠 선수로만 존재하길 바라면서 ‘탈 여성적’ 4) 훈련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돌봄 노동과 꾸밈 노동 5) 을 스포츠 선수에게 요구한다. 이렇듯 다양하게 만들어진 차별은 오랜 시간 동안 스포츠만 한 여자선수들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그 차별에서 비롯된 폭력을 인지하고 발화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성별고정관념은 여성들을 ‘하지 마의 세계’ 6) 에 가둔다. ‘뛰지 마’, ‘힘쓰지 마’, ‘너무 많이 먹지 마’, ‘너무 커지지 마’, ‘너무 이겨 먹으려고 들지 마’, ‘나대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의 세계에서 뛰고, 힘을 써야 하고, 커야 하며, 이겨야 하는 스포츠는 여성에게 쉽사리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여자아이들은 단체 줄넘기나 피구를 한다. 방과 후 남자아이들은 태권도, 수영, 검도 등은 기본값으로 두고 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을 골라 하거나 돌아가면서 섭렵하지만 여자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 선택지에 이 종목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여성들은 일찌감치 스포츠 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럼에도 박탈이 있었는지, 그것이 차별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우리나라는 여성 스포츠 강국이다. 골프 불모지에서 골프강국으로 이끌고,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성별 상금 격차를 역전시켜 낸 골프선수 박세리, 전세계적으로 극찬을 받는 배구선수 김연경, 우리나라 최초 올림픽 2연속 2관왕을 기록한 쇼트트랙 선수 전이경, 양궁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여자 단체전 종목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 없는 여자 양궁 국가대표팀 등.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이 쌓아올린 업적은 경이롭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스포츠를 잘한다고 믿는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스포츠에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포츠에서의 성차별은 더 발견되어야 한다. 스포츠에서의 성별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차별에 민감해져야 한다.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일상에서 발견된 차별에 불편함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차별이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스포츠의 구조적 차별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성평등 스포츠는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나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으며 스포츠 영역에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이다. 스포츠의 모든 영역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인권을 보장받으며 안전하고 동등한 환경에서 동등한 참여기회(equal opportunity & equal play)가 주어지는 것, 아울러 스포츠 참여를 통해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동등한 보상(equal pay)을 받는 것이다.
성평등 스포츠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만으로 안전하고 평등한 스포츠는 실현되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스포츠는 안전하고 평등하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뿐 아니라 주변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더 발견하기 바란다. 안전하고 평등한 스포츠의 실현은 차별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참, 마지막으로 모두 기억하길.
Any Sport is a Woman’s Sport
1) 《선량한 차별주의자》, 경기: 창비, 김지혜(2019)의 본문 1장 중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를 차용함.
2)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중 여성 비율은 48.5%로 역대 올림픽 중 남녀 비율 50:50에 가장 근접한 대회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역대 IOC 집행위원 중 여성은 33.3%에 불과하고, 지금까지 여성위원장은 한 번도 선출한 적이 없다.
3) IOC Gender Equality Review Project.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운동 및 올림픽 경기에서의 성평등 달성을 위해 작업한 검토 및 지침 보고서.
4)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오로지 (남성 스포츠 선수에 근접하는) 스포츠 선수로서의 몸과 능력을 위한 훈련을 의미한다. 이러한 훈련을 주도하는 사람은 대개 남성 지도자이나 소수만 존재하는 여성 지도자들도 저러한 고정관념이 체화된 상태로 모든 과정을 거쳐 생존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각을 갖지 못한다.
5) 합숙소 생활이나 전지훈련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식사준비(상차림), 지도자 숙소 청소와 세탁 같은 돌봄 노동과 프로스포츠나 실업스포츠 여성선수들에게 요구되는 긴 머리, 화장, 타이트하고 짧은 유니폼 소화하기 등과 같은 꾸밈 노동.
6)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서울: 북하우스, 캐럴라인 냅(정지인 역. 2021). 캐럴라인 냅은 ‘하지 마 세계’의 명령이 누적되면서 여성의 욕구를 제한하는 영향을 미친다고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