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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2

201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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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술인에게 복지란 무엇인가

글 신달자 시인

많은 예술인에게 복지는 낯선 단어이다. 하늘은 언제나 바라볼 수 있지만 손닿을 수 없는 영역과 같은 것처럼. 예술인이란 이름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분야마다 다르지만, 문학에서 보면 ‘복지는 사막을 걷는 자의 목마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복지가 넘치는 곳이 있을지는 글쎄, 잘 모른다. 보편적 도움을 받으려고 몇 개 되지 않는 복지의 문을 두드리다 지친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지원금이 존재하되 그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끝없이 나아가야 할 예술인의 복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우리나라가 복지 하나는 잘 되어 있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진실이라면 강(江)의 말이 다르고, 산(山)의 말이 다름을 표현한 것일 뿐, 결국 복지는 받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라는 것. 고루고루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예술인의 어떤 믿을만한 면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가장 핵심이며, 그 믿음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복지는 심장이 강해야 한다. 의지를 갖고 높이고 넓히는 것이 복지의 심장 박동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난항에도 굴하지 않고 크나큰 박동 소리를 울리며 나가야 하는 것이 복지다. 그것이 국가의 힘이고 예술인에 대한 예우라고 할 수 있다. 그 힘이 결국 예술 혼을 키우는 원동력일 것이다.

“복지란 여기까지”라는 건 없다. 나아가고 더 나아가야 한다. 그 나라의 발전 가능성은 “예술인들에게 어떤 대접을 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예술은 키워지는 것, 그러므로 배려와 돌봄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배려와 돌봄이 ‘나에게도 다가온다’고, ‘나는 배려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예술인들은 사라져 가는 예술 감각을 깨워 자신을 넘어서는 천재성을 촉발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정감으로 탄생하는 훌륭한 창작물

복지의 탄생은 그 예술혼의 확장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영국에서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이 임명되었다. 외로움을 국가적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는 얘기다. 국가 복지정책에서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임명되었을 때,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은 사회적 단절에 의한 정신적 고통이 하루 15개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외감은 어떨까, 외로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로움보다 하루 담배 30개를 피우는 정도로 독성이 더 강하다는 것뿐. “너는 되는데 나는 안돼”는 결국 자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혜택이 가는데 나에게는 먼 얘기다”라고 할 때 그 소외감은 담당 장관 이상의 돌봄이 필요할지 모른다.

복지는 서로 어울림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예술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예술인 스스로의 노력과 어울림 속으로 들어가려는 부단한 의지가 중요하다. 배려와 돌봄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자격을 쟁취하려는 부단한 노력 또한 예술인들의 몫이다. 어느 문학 교수는 “복지의 지원을 겨냥하지 않고 온 전력을 기울여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자기 능력을 뛰어넘기 위해 갱신의 시간을 보내며 창작품을 이 세상에 내놓을 수만 있다면, 복지지원은 반드시 그에게 걸어가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옳은 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발점의 가능성은 바로 ‘지원’이다. 예술인에게 안정감은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있다.

격려와 인정 속에서 커지는 예술사랑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이작 싱어(Isaac Bashevis Singer)는 “모든 인간은 설사 그 사람이 백치라 할지라도 감정의 백만장자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예술인은 감정의 백만장자이다. 이 감정의 백만장자를 그냥 떠내려가게 하지 않고 소중한 씨앗으로 키워낸다면 개인의 백만장자를 한 사회의, 한 국가의 백만장자로 키워 낼 수 있을 것이다. 복지는 다독거림이고 등을 문질러주는 격려다. 사회가 주는 격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인들을 인정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며 포기하려는 창작 의욕을 부추기는 강력한 생명력과 같다.

예술작품은 많을수록 좋다. 많은 사람의 시선, 마찰, 느낌, 충격들이 많아지면서 공감하다 보면 작품들을 선호하는 다양한 선택이 예술가들에게 결국 무엇인가 하려는 의지와 돌파구를 찾게 한다. 얼마나 외로운 작업인지 얼마나 공포스러운 작업인지 심각한 갈등을 믿어주며 “해 보라구”라고…. 포기하지 말고 부단히 작품세계에 머물고 견뎌내야 하는 일은 예술인들의 의욕을 증폭시키는 예술사랑일 것이다. 밀어주는 복지야말로 의기소침한 예술인들을 일어서게 할 것이다.

작은 복지는 큰 작품을 태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발전 가능성은 예술인의 복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맞다. 복지 공간을 더 튼튼한 의미와 가치로 증폭시키며 예술인이 행복하고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 건강한 복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더 많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