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로고 예술인 로고 모바일 예술인 로고 모바일

vol.32

2019. 7

menu menu_close menu_close_b
구독 신청
닫기
구독신청
칼럼
당사자의 언어로
'청년예술인'을
정의해야 할 때

채태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예술인 혹은 청년예술가는 누구인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청년운동 및 청년 정책이 등장했고, 이 ‘청년’기호는 기존의 정책 범주들을 청년 노동자, 청년 실업자로, 심지어는 청년 그 자체를 새로이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청년’ 정책들의 변주 혹은 변종으로서의 청년예술가는 누구인가. 이들은 왜 신진 예술가도 아니고, 신인 예술가도 아닌 청년예술가로 불려야 하는가. 또는 청년예술가라는 호칭이 구성해 낼 그 반대편의 범주로서 기성예술가는 어떤 식으로 의미화되어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그리고 누가 이 청년예술가라는 범주를 의미화할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청년예술가를 연령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크게 고민이 필요가 없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혹은 청년실업에 관한 기존의 법령에 따라 만 39세 혹은 35세 이하의 연령대에 속한 예술가로 청년예술가를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연령 기반에 따른 예술가군 내의 한 집단이 왜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정책 차원에서 특별히 더 조명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이 연령대의 예술인들은 얼마나 ‘다른’ 위험에 처해있을까. 예술계 내의 불안정성은 정말 연령에 따라 상이하다고 볼 수 있을까. 청년예술가들의 불안정성은 다른 연령대의 예술가들이 지닌 불안정성과 비교해 그 양적인 규모가 크거나, 질적인 양상이 완전히 상이하다고 볼 수 있는가. 해당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요청받은 내용은 ‘청년예술인이 지닌 특정한 어려움은 무엇인가’였다면,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청년예술가들이 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진지하게 고민되고 있을까.

정책 이전에 필요한 근본적인 물음, 왜 청년예술인인가?

서울시가 시행하는 청년예술단. 청년예술인 공간지원사업, 최초예술인 지원사업 등의 사업과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실시하는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과 같은 사업 등은 정책의 대상으로 청년예술가를 상정한다. 위의 세 가지 정책들은 각각 프로젝트 지원, 작업실 지원, 생활비 지원, 또는 예술 장(Field)으로의 진입을 위한 경험 지원으로서 그 의의와 목적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청년세대’의 특별한 불안정성에 주목한다. 즉, 이들 정책은 전체 예술가 군 내에서 특별한 경제적, 기회적 불평등에 처해있는 이들로서 청년예술가라는 정책의 대상을 가정한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를 포함해 다수의 지자체에서 진행 중인 ‘청년문화창작소’와 같은 사업들은 창업정책의 맥락에서 청년예술가를 호출한다. 여기서 청년예술가란 기성과는 다른 상상력, 창의력을 가진 이들로 여겨진다. 정책을 통해 호명되는 청년예술가는 마치 양분되는 청년담론처럼 일군의 맥락에서는 기성과는 다른 문화적 가치관과 상상력을 지닌 창조적 세대(90년대의 신세대담론 혹은 근래의 밀레니얼세대 담론)이기도 하며,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새로운 경제적 위기, 사회적 위기로 인해 불안정성에 처한 이들(N포세대)이기도 하다. 즉, 오늘날 정책은 청년담론에서 가정하는 청년상 너머로 ‘왜 청년예술가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청년예술인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왜 청년예술가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부재하지만 2010년대 이후 급증한 소위 청년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정책은 홍수인 상황에서 만 39세 이상에 속하는 예술가들의 볼멘소리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세대의 구성원들 또한 힘들다”라는 세대 간의 취약함 경쟁의 구도는 소모적이다.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청년예술가로 호명되는 예술인 내에서도 ‘청년’이라는 호칭이 일군의 미성숙함을 구성하며 ‘기성에 비해 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정은 있는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이들 역시 상당하다. 이제 ‘청년예술가‘의 ‘청년‘이란 어떤 존재인가 혹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에 관해 보다 본격적이고 정치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청년예술가, 스스로가 결정하고 스스로가 선언한다

여기서 필자는 이를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을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의 문화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는 서울시에서 활동 중인 청년 시민들이 모여, 문화-일자리-평등-교통환경 등의 분과를 구성하고 직접적으로 정책 제안을 실시하는 거버넌스 플랫폼이다. 참여자의 자격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참여자의 인적 구성은 매우 다양하지만, 문화분과의 경우 ‘예술인’들의 비중이 가장 크다. 이들이 털어놓는 문제점과 원하는 개선 방향은 그간 예술계에서 논의되어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원사업의 결과 공유, 사업비증빙완화, 문화기획자 처우개선, 예술인 증명절차 개선, 프로젝트 지원사업 자격 기준 완화 등은 예술계 내부에서 생경한 문제들이 아니다.

문제는 이 청년예술가들은 왜 문화재단이 아닌, 문체부가 아닌, 청년이라는 연령 기반의 거버넌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문화정책기관에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에 관한 것이다. 현재 문화재단 및 각급의 문화부처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거버넌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참여자에게 제한적 역할을 부여하는 정부주도형인 경우가 많으며, 예술계에서 이미 성원권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대상인 경우가 많기에 청년에 속하는 예술가군의 참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난하고 열악한 예술가와 상상력과 창조력을 지닌 대상으로서 청년은 끊임없이 호명되지만, 정책이 결정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는 배제된다. 청년예술가들이 직접적으로 정책에 개입하고 결정하고 스스로 ‘청년예술가’란 무엇인가를 선언할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