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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노조 창립 초기 근로기준법 적용과 함께 고민한 것이 프로젝트별 고용으로 인해 짧은기간 고용되고 실업상태가 반복되는 스태프들을 위한 실업부조1) 제도였다. 한편의 영화에 3개월 남짓 고용되는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이번의 영화가 끝나면 다음의 영화가 언제가 될지 알길이 없으니 생계를 이어갈 수단이 필요했고 영화를 꿈꾸던 사람들은 배달, 주차아르바이트, 음식점 등의 임시 일자리를 전전했다. 생계를 걱정하니 영화적 상상이나 고민은 사치가 되었고 결국 영화를 위해 얼마나 참고 버티느냐가 관건이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이러한 사정이 확인되었고 그 뒤 논의된 것이 『예술인 복지법』이었으나 법이 제정된 후에도 참고 버텨야 하는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예술인복지법 제정 당시 예술인의 고용·산재보험 적용에 대해 근로자 의제2) 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근로자 범주의 확대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반대했고 예술인의 사회보험은 나중으로 밀려났다. 예술로 일하고 있고 계속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사정은 예술을 관장하는 문체부에게도 노동을 관장하는 고용노동부에게도 남의 일이었다. 그러던 남의 일이 대통령의 공약과 함께 한국형 앵떼르미땅3) 이 되어 ‘예술인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고 12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영화현장에 근로기준법 적용되기에 앞서 요구한 것이 영화스태프들의 실업상태를 부조하는 것이었다. 18개월 중 180일의 고용보험 가입은 1년에 3개월 남짓 고용되는 스태프들에겐 현실적이지 않았고 고용보험법의 개정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현행의 고용보험제도 외로 영화스태프의 반복적인 실업상태를 고려한 제도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마련된 것이 쉬는 동안 영화현장의 직무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이수한 스태프에게 영화스태프직업훈련수당4) 을 지급하는 현장영화인교육이었다. 영화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가 사용되고 고용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이 적용되면서 현장은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긍정적인 변화로 꼽는 것이 ‘단축된 노동시간’, ‘최저임금의 적용’, ‘실업급여’였다. 24시간 밤샘 촬영은 옛말이 되었고, 경력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법에 따른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았으며 영화를 안 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음의 영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실업급여 수급요건은 상대적으로 고용기간이 긴 제작, 연출, 촬영, 미술부서의 스태프들과 연간 두 편 이상에 참여한 스태프들에 해당되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는다는 어색함은 영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선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권리로 확인되었다. 영화라는 이름 뒤의 가려진 노동을 드러내고 법이 바뀌기 전이라도 마음이 바뀌니 가능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표준근로계약서의 사용이 저조한 저예산영화나 감독급 스태프들의 경우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당장의 일이 급한 스태프들에게 고용보험은 나중 문제였다. 상시 고용된 노동자의 기준에 맞춰진 고용보험 가입기간은 많은 스태프들이 적용받기엔 한계가 있었고 근로계약이 아니더라도 고용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했다.5)
개정된 고용보험 제도는 예술인의 경우 24개월 중 9개월을 일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근로계약이 아니더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예술인의 일하는 사정을 고려한 예술인 실업급여로서 첫발을 뗀 셈이다. 그러나 다음 걸음이 원활히 이어지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실업급여는 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되기에 예술노동의 정당한 대가가 확립되어야 한다. 법정의 최저임금이 있어도 남의 얘기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조차 예술노동의 대가가 고려되지 않는다면 예술인고용보험은 허울뿐인 제도가 되고 만다. 무엇보다 예술인 고용보험의 구체적인 내용은 예술인 당사자가 포함된 논의 테이블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는 예술인을 안타깝게 여긴 시혜로서의 정책이 아니라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예술을 업으로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로서 마련되어야 한다.
1) 고용보험(실업급여)의 혜택을 얻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안정망 정책을 말하며 내년부터 시행예정인 ‘국민취업지원제도’가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로 마련되었다.
2) 예술인복지법 제정 당시 논의되었던 사안으로 예술인의 4대보험 적용에 있어 근로자로 보는 것.
3) 앵떼르미땅, 간헐적·단속적으로 고용되는 예술인의 상황을 고려한 프랑스의 예술인 실업급여 제도로 예술인복지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됨. 10.5개월 중 507시간(기술직 스태프 10개월 중 507시간)을 일하면 8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4) 영화스태프직업훈련교육을 이수한 스태프들에게 100만 원의 훈련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제작 상황이 수월하지 못하여 실업상태의 스태프들을 위해 사업을 확장하여 시행 중에 있음.
5) 2019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간 참여한 영화는 두 편이 채 안되었고 한 편의 영화에 고용되는 기간은 평균 4.8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