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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

202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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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술인들에게 활짝 열린
예술활동의 장으로

김영운 국악방송 사장

온종일 국악을 듣고 볼 수 있는 방송이 있다. 2001년 첫 방송을 시작한 국악FM을 비롯해 2019년 12월 27일에 개국한 국악TV를 통해서다. 이제는 소리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국악의 멋과 흥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 24시간 활짝 열린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국악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우리 문화의 미래 또한 밝게 한다.

‘한국의 전통음악’과 동의어로 인식되었던 국악

‘국악’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음악’의 준말 정도로 생각한다. 마치 한국역사를 국사라 하고, 한국어를 국어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국악의 의미는 조금 다른 듯하다. 국악이 한국음악의 준말이라면 BTS의 노래나 미스·미스터 트롯도 국악이어야 할 것이고, 홍난파의 〈옛 동산에 올라〉나 장일남의 〈비목〉도 국악에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음악을 국악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결국 국악은 한국음악 중에서도 특정한 음악, 즉 ‘예부터 전승되는 전통음악’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국악’은 ‘한국음악’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음악’과 동의어가 되는 셈이다.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이 땅에 살면서 가꾸어 온 음악이 전통음악, 즉 ‘국악’이라 할 수 있다. 흔히 국악이라고 하면 TV나 음향 매체로 자주 접할 수 있는 판소리나 민요·사물놀이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전통사회의 음악 문화는 매우 다양하였다.

어린이들이 부르던 동요나 농부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던 들노래, 상여를 메고 가며 부르던 노래와 같은 토속적인 향토민요를 비롯해서 향토사회의 구성원들이 정초에 꽹과리·징·장구를 들고 풍물을 치면서 마을 축제를 벌이던 민속음악은 다소 거칠고 소박하지만 우리 민족음악의 바탕을 형성하는 음악이다. 여기에 비해 사대부·중인 등 전통사회 지식인들 가운데 음악애호가라 할 수 있는 풍류객들은 거문고와 가곡으로 대표되는 금가(琴歌)를 통해서 자신들의 성정을 가다듬고 동호인끼리 친목을 도모하였다. ‘민속음악’과 ‘풍류음악’은 세련된 기교를 드러내기보다는 스스로 연주하며 즐기던 음악이었다.

시대의 부침 속 예술인들의 노력과 함께해온 음악

전문예술인이 연주하던 음악으로는 예술음악·궁중음악·종교음악이 있었다. 가문의 전통에 따른 세습음악인인 이들은 지역사회의 각종 의례나 무속의식, 또는 관아의 행사 등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하였고, 국가로부터 차출되어 궁중 악공(樂工)의 역(役)을 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궁중의식이나 종묘·사직 같은 국가 제례의 음악은 예술가의 예술성을 자유롭게 펼치기보다는 해당 의례의 성격에 맞추어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도록 만들어졌다. 음악이나 춤의 공연을 업으로 삼는 전문음악인들이 만든 공연용 ‘예술음악’은 판소리와 산조·잡가 등으로 대표된다. 오랜 기간의 수련을 통하여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고, 자신의 예술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면서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해 온 명인·명창들이 조선 후기 이후 다양한 음악들을 가꾸어 왔고, 이들의 음악이 오늘날 전통음악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개화기 이후 전래된 서양음악과 이웃 나라의 대중음악은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들 외래음악이 방송·음반 등의 대중매체와 학교 교육의 주류를 차지하고, 대중들은 우리 전통음악을 접하기도 어려운 사정이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국악은 우리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중에게는 생소한 음악이 되어버렸다.

최근 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더욱 좁아지면서,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지역이나 민족의 색깔이 희석되는 느낌도 든다. 심지어 복식(衣)·음식(食)·건축(住)과 같은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도 그 정체성이 옅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민족문화를 언급하는 것조차 시대 흐름에 뒤쳐진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비롯한 큰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우리가 세계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저들의 문화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멋과 흥이 짙게 배어있는 전통문화였다. 그리고 냉전체제의 붕괴과정에서 민족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동유럽 국가의 재편을 통하여 익히 보았다. 이런 점으로 보면 글로벌사회에서도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는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할 것이 분명하다.

예술인들에게 더 넓게 더 활짝 열린 예술의 장으로

이제 국악은 전통의 보존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한국음악으로 거듭나기 위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서 요즈음 국악계에서는 기존의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퓨전국악이니 월드뮤직이니 하는 새로운 음악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여러 국·공립국악관현악단들이 연주하는 악곡들도 대부분 새롭게 만들어진 창작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발디의 〈사계〉를 국악기로 연주해 보기도 하고, 오페라 아리아를 국악관현악으로 반주하는 음악회도 있었다. 최근 창극 무대에 오르는 작품도 〈패왕별희〉니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동서양의 고전에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어서, ‘국악’은 이제 단순히 ‘전통음악’에만 머무르지 않고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국악’은 전통음악의 표현방식을 빌려 새로운 내용을 담아내는 현재와 미래의 한국음악까지를 포함하는 ‘열린 음악’임을 알 수 있다.

국악방송은 다양한 국악의 장르를 치우침 없이 고루 감상할 수 있도록 명인·명창들의 음악과 활력 넘치는 신세대 국악인들의 수준 높은 예술세계를 담아 전해드리고자 한다. 음악을 비롯해 무용·미술·공예·음식·복식·건축 등 다양한 전통문화의 특징과 가치를 전하고, 보다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 한국음악문화의 미래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예술인 여러분들이 예술세계를 펼쳐나가는데-더 넓게 더 활짝-열린 예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