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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4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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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
유감에서 공감의 예술로

김수현 (SBS 정책문화팀 선임기자)

코로나19로 공연장이 문을 닫고 온라인 공연이 급증했을 때, ‘방콕에 지친 당신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공연 소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3월에 시작한 기사인데 다섯 달 넘게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오래 쓰게 될 줄 몰랐다. 최근 코로나19의 기세가 다시 거세졌다. 공연 연기와 취소, 중단이 다시 잇따른다. 공연 취재 담당인 나도 우울하다. 이런 와중에 ‘예술가를 위한 제언’ 코너에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났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저 최근 몇 달간 공연계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볼까 한다.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예술 소통의 가능성

그 어느 때보다 예술가의 ‘소통’이 중요해졌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이제 자신의 관객이 누구인지, 그 관객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예술가들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방구석 클래식’ 온라인 공연을 열어온 공연 기획자는, 적극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연주자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이들이 온라인에서 했던 ‘소통’은 이전에 없던 팬들을 만들어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를 찾는 팬들을 늘려야 한다. 이는 공연 제작자나 홍보 담당자만의 몫이 아니다. 예술가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공연은 공연장에서 하는 것’이라는 관념도 깨졌다. 이제 공연은 ‘예술가가 있는 곳’에서 이뤄진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홈 리사이틀’을 시작했다. 아이폰 두 대, 그리고 새로 구입한 캐논 카메라가 촬영 장비다. 녹음 장비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성능 좋은 것으로 구비했다. 소음이 적은 자정에 연주와 촬영을 진행한다. 언제까지나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는 공연장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온라인 공간이든, 감염 우려가 적은 야외 공간이든, 어떻게 해서든 관객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신적·무형적 가치와 함께해야 할 예술 시장

‘예술’과 ‘상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방식도 낡은 것이 되었다. 예술적이면 모두 비상업적이고, 상업적이면 모두 비예술적인가? 최근 판소리 수궁가의 현대적 변용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는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베이시스트를 인터뷰했다. 유명 영화음악 감독이기도 한 그는 밴드 이날치를 시작하며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내가 좋아서 하면 되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좋은 밴드도 상업성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예술의 정신적, 무형적 가치는 크지만 예술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고, 그러니 재정 자립이 어려운 예술 장르에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 못 버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냉혹한 신자유주의 논리를 적용하자는 게 아니다. 예술계 역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고,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있으니,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좋은 상품을 내놓고 알려야 한다는, 당연한 시장 원리를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유감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예술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연 관련 기사를 쓰면 “이런 시국에 한가하게 무슨 공연이냐”며 비난하는 반응이 적지 않아 속이 상했다. 공연 역시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산업’이라는 걸 왜 몰라줄까? 왜 공연예술은 한가할 때나 즐기는 여흥이라고만 생각할까? 예전에도 나는 공연예술을 일부 계급만 즐기는 사치로 바라보는 시각에 마음이 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왜 예술이 이런 시기에도 필요하고, 왜 예술이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이전보다 더 강하게 ‘존재 증명’을 요구받게 된 상황인 것 같다.

위기 속 예술계가 발신하는 ‘절박한 외침’이 내부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중요성을 몰라주는 게 섭섭하지만, 섭섭해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예술이 사람들을 위해 뭘 했는지,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 높여 알려야 한다. 예술의 가치에 공감하는 지지자들이 많아지도록. 예술계가 무너지면 많은 사람들의 생계도 무너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어 오랜만에 공연을 볼 수 있게 됐을 때 ‘울컥’하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아, 공연을 본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구나! 무대와 객석이 서로 반응하고 함께 몰입하는 공연장의 공기, 피부로 전해지는 그 느낌은 너무나 강렬했다. 온라인 공연을 보면서 감동을 느낀 적도 종종 있었다. 예술에 공감하는 이런 ‘순간’을 일부 애호가들만 느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당장 생존이 힘든 상황이니 이 모든 얘기가 쓸데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코로나19 시대를 굳세게 버티어 내기를 기원한다. 많은 이들이 한동안 상황이 호전됐다가 다시 악화하니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희망고문’ 같다고도 한다. 이제 코로나19를 갑작스럽게 돌출한 변수가 아니라, 우리 일상을 정의하는 ‘상수’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할 일을 준비하기보다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나도 공연 취재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 한다. 사상 초유의 사태, 정해진 답은 없다. 그저 해보면서 찾아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