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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6 2016. 9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칼럼 영화감독 하원준

예술인과 기업이 소통하는 법

2016. 9
칼럼사진

나는 영화감독이며, 시나리오작가이다. 또한, 대학 강의와 글쓰기 코칭, 스토리텔링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예술을 온전하게 완성하기 위한 직무이며, 책임의 과정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중요한 의미로 자리매김 되고 집중하게 되는 활동이 있다. 바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퍼실리테이터 활동이다.

2014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처음 추진된 이후, 나는 3년째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해에는 공공기관 교육 사업 PM 경력을 바탕으로 퍼실리테이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전년도의 미진함을 벗어나겠다는 결심에 지나친 과욕을 드러냈다가, 예술인과 기업의 갈등에 직면하는 위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견 활동이 중도에 좌초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다행히도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실천 교육을 받고, 예술인과는 물론 파견 기업의 담당자와의 소통 태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소통의 힘’을 얻은 나는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도 퍼실리테이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사업 중이기에 조심스럽게 중간 평가를 한다면, 전년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술인과 파견 기업에 좋은 영향과 창작 결과에 대한 기대감, 예술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다. 본업 활동지역인 서울을 떠나,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기관에 찾아가는 길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대구에서 안동으로 오는 네 명의 다양한 예술인들에게 오히려 많은 창작 방식을 배우고 있고, 그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에 저절로 고마움이 샘솟는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소통’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년간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업과 기관의 고유한 조직 문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 파견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그곳의 고유한 조직 문화를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목격하였다.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동료 예술인들과 나누고 싶다.

첫 번째, 기업의 조직 문화를 인정하고 개선을 제안하자.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 예술인의 직무유형 중 중요한 유형이 바로 ‘조직문화 개선’이다. 조직문화 개선은 파견활동의 배경이 되는 기업·기관의 조직 문화의 건강한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실제로 많은 기업·기관의 소통과 협업 방식, 업무 환경 등 다양한 측면에 예술적 개입이 필요한 실정이며, 예술인 파견지원 활동을 통해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 직무유형에서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은 기업과 기관의 설립 목적, 활동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기존 문화를 인정한 뒤 개선을 제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예술이 없어서 문제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있으면 더 좋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역사 연구 기관에서 활동했을 때의 일이다. 기관에 소속된 연구원은 근무시간 대부분을 개인 연구실에서 역사 사료 해석과 연구에 할애했다. 이 기관의 설립의 목적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예술인들이 연구원들에게 예술 활동에 참여해달라며 개인 연구실을 방문하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예술인들은 차갑고 건조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이것은 ‘차분함’이라는 그 기관만의 문화이다. 그래서 연구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예술 활동보다는 역사 연구 성과물에 예술을 접목하는 ‘자원 재활용의 측면’을 부각하였고, 그것이 연구원들의 관심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예로, 다문화 아이들이 공부하고 모여서 활동하는 기관이 있었다. 일단 그곳의 아이들은 처음 보는 예술인에 대한 경계심이 큰 편이었다.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받았을 가능성도 있었고, 부모가 불법체류 상태인 경우도 있어 외부인에게 예민하고 경계심이 큰 아이들도 다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칫 참여 예술인은 자신의 활동에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거나 아이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예술인에게 반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정밀한 부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에서는 직원들 사이에 대화도 적고, 온통 기계와 생산 부품 상태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이런 곳으로 파견을 가면 생산 라인을 책임진 공장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경영자에 의해 결정된 파견 예술 활동 지원을 탐탁지 못하게 여길 수 있다. 공장 근로자들이 예술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부품의 불량률이 상승하거나, 긴장이 풀려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결과를 책임을 져야 하는 실무자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예술인들의 입장에서는 딱딱하게 보이는 그들의 기업 문화가 문제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고유 상태가 유지되어야만 하는 기업과 기관도 꽤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업이 처한 상황과 고유문화를 예술인의 고정관념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두 번째, 예술인의 역량을 눈으로 목격하게 하라.

기업은 희망하는 협업 유형을 정하고, 퍼실리테이터를 통해 파견 예술인들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다. 그러나 한두 장의 이력서를 통해 기업 관계자가 인지하는 예술인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도는 별로 크지 않다. 그래서 나는 기관 담당자를 파견 예술인의 본업 활동 현장에 초청하거나 예술인의 본업 지역을 방문하게 하는, 일종의 즐거운 외출을 기획하였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나는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기관에서 활동 중이다. 그곳은 안동시에서도 약 40분 정도의 국도를 타고 가야 하는 외지에 있다. 나는 파견지원 활동을 통해 예술인도 즐겁고, 기관 담당자도 예술인의 방문이 즐거울 수 있도록 기관 담당자를 예술인들의 본업 활동 지역인 대구에 초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기관 담당자는 두 차례 대구를 방문하였고, 예술인들의 예술 세계를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 예술인 중 미술 분야의 예술인들이 작품을 전시했던 범어 아트 스트리트와 대구 예술 발전소 등을 방문하여 기관 담당자가 참여 예술인의 예술을 밀접하게 경험하도록 하였다.

대구에서 예술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한껏 예술 창작물을 감상하고 체험하고 난 뒤, 활동 기관의 담당자들에게는 눈에 띄게 ‘함께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예술인과 기관 담당자들 사이에 긍정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와 예술인들의 협의로 성사된 초대는 만족스러운 성과로 일단락되었고, 예술적 역량을 눈으로 확인한 기관 담당자는 예술인들이 만들어가는 기획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하고 있다.

세 번째, 기업 담당자의 상황과 일상을 모아라.

일반적으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신청을 하는 기업의 경우, 기업 경영진에 의해 사업 참여 여부가 최종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예술인을 유치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예술인의 활동 과정도 중요하지만, 예술인을 통해 기업이 획득하는 최종 결과가 무엇인지에 주목하는 편이다. 그런데 예술인을 담당하게 되는 직원들은 예술인의 파견 활동을 환영만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담당자는 예술인들의 파견 활동을 지원하고 협력한다고 해서 급여가 오르거나 직위가 상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단순히 ‘일’이 늘어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술인들의 입장에서는 훌륭하고 창의적인 예술인들이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직원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

간혹 예술인 파견 활동을 하다 보면, 파견 기관의 담당자가 하루아침에 바뀔 때도 있다.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고, 새로운 담당자에게 그동안의 활동을 설명하면서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담당 직원이 배치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도 있다. 혹은 담당자가 의욕을 갖고 예술인들의 파견 활동에 대한 기획 문서를 상사에게 전달하였는데, 상사가 심드렁한 반응을 하거나 반대를 해서 예술인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간단히 말해 예술인들의 파견 예술 활동에는 일정한 방식이 없고, 특별한 정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업과의 활동과 관계 형성은 사례별로 모두 다를 수 있으며, 활동이 수월한 기업에 선정되는 것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이 이러해서 예술인이 자조 섞인 태도를 보인다고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럴수록 파견 활동이 지겹고 어색하며, 10일 30시간을 채우는 것에 급급해질 것이다.

이럴 때 유용한 방법이 바로 기업 담당자의 신변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 리스트’라는 작업 과정이 있다. 드라마에 등장시켜야 할 등장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중요한 요소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을 캐릭터 리스트에 적용하여 신변 정보를 모으는 과정을 중요하게 해왔다. 담당자의 주변 동료를 통해 고향, 전공 학과, 결혼 여부, 교통수단, 취미,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 살면서 매우 좋았던 경험과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경청하고 찾아냈다. 물론 가벼운 식사를 대접하거나 차를 마시는 등의 시간 투자는 필수였다. 무엇보다 진솔하고 정직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했고, 내 이야기를 먼저 하거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진행의 어려움도 진지하게 말했었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덧붙여 이 사업의 희망적인 결과 예측은 단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으로 믿는다”라는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활동하는 기관 담당자 중 한 분은 전주가 고향이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거주했던 분이다. 이 분은 안동시 외곽에 있는 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이 가끔 좀 답답하다고 했다. 더 활기차고, 붐비는 대도시의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참고해서 앞서 말했던 예술인들의 활동지인 대구 초청을 기획했고, 기관 담당자는 매우 활기차게 반응하며 만족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담당자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안동에서 활동하면서 그 분 댁에서 신세를 질 때가 꽤 많았는데, 그럴 때면 그 댁에 있는 디지털 기기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어갔다. 덕분에 나도 몰랐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기업 담당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며,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불통과 문제점이 많은 퍼실리테이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한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예술인들과 기업 담당자를 존중하려는 퍼실리테이터로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예술인이 가진 가장 강한 무기는 ‘진정성이 있는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솔직함은 때론 기업 담당자를 당황하게 하거나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예술인의 표현과 기업 담당자가 평소에 쓰는 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온전하게 말하기’이다. 온전하게 말한다는 건, 말을 하는 과정도 온전하고 말의 내용도 온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추측하거나 상상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 존중하며 듣는 것. 이러한 것들을 온전하게 말하기라고 한다. 예술인들이 먼저 기업과 기관에 가식 없이 온전하게 마음을 전한다면, 적어도 후퇴하거나 후회하는 파견 예술 활동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함께 활동하는 퍼실리테이터와 예술인들을 존경하며, 부족한 글을 마무리한다.
“힘내십시오. 당신의 활동은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 영화감독 하원준 사진
  • 영화감독 하원준 1994년에 이명세 감독의 영화 〈남자는 괴로워〉를 시작으로 〈두사부일체〉, 〈그녀를 모르면 간첩〉, 〈뜨거운 안녕〉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하였고, 〈들개들〉로 영화감독에 데뷔하였다. 현재 영화 〈흑산도〉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스토리 강의와 스토리텔링 교육 프로그램 개발, 콘텐츠 회사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