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냐, 가족이냐
2019. 21990년대 초 임금이 오르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한국 사회의 개인화 경향이 강해지는 듯했으나 1997년 IMF 경제위기는 다시 가족주의를 소환했다.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에서 계층이 양극화된 것처럼 가족의 양극화도 함께 일어났다. 중산층 이상의 가족은 자녀 교육과 경쟁력 향상, 계층 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데 반해 중하위 계층은 가족 구성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포기해야 할 게 점점 늘면서 N포 세대라 명명되는 현 2030 세대, 그중 예술인도 예외 없이 가족 구성에 난색을 표하거나, 이미 가족을 구성한 경우 육아 등의 돌봄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혼이 위험한 시대의 예술인이제 결혼은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적어도 그 부분의 인식은 어느 정도 합의가 된 듯하다. 문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인가 하는 점이다.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회 구조라면, 결혼은 아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성별을 막론하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들어졌다. 부양하거나 돌보아야 할 가족이 없는 편이 그 상황에서는 누구에게나 유리하며 특히 여성에게는 더 그렇다. 20대 여성 비혼 비율이 높아진 데에는 그런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다. 통계청 자료(2017년 총 혼인 건수)에 의하면 2011년 이후 혼인 건수는 7년 연속 감소 추세이고, 경제적 부담감을 결혼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런데 2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작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라 해도 결혼해 가족을 만들 생각은 없다는 답변이 47.1%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결혼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었다. 2030 세대 예술인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가족이 있는 기혼자의 경우 예술이냐, 가족이냐 선택의 귀로에 서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형태로 공존한다결혼을 포기하거나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또 같이’ 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문화예술커뮤니티를 결성해 실험적 작업을 시도하거나, 공동작업실을 운영하며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추진한다. 주거 공동체를 형성해 가족의 의미와 기능을 확장하면서 사회적으로도 그 의미와 기능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N포 세대 예술인들에게도 필수다. 사회제도가 보호하는 ‘정상가족’이 아닌 여러 다른 형태의 공동체, 커뮤니티, 단체, 느슨한 연대체, 또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형태의 모든 관계에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예술인 동료를 만날 수 있다.
기혼자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나 개인, 관계와의 연결은 중요하다. 획일화된 경로를 벗어난 삶의 형태는 적잖은 자극이 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를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결혼하는 사람과 태어나는 아이들 수가 줄면 거기에 맞춰 사회를 다시 설계하면 된다고 말한다. 팽창에만 익숙해져서 그 반대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N포 세대 예술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가족 혹은 개인으로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는 양태가 이어지지 않을까. 이 세대의 특징에 맞는 복지 방향과 정책적 고민이 필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