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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7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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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예술로(路) 사업은
서로에게 끈이 되고
앞으로의 꿈이 됩니다.

끈끈한 연대를 넘어
예술의 세계로

2020 예술로(路) 사업,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협업 프로젝트
소리를 보는 사람들

‘이룸’은 뜻한 대로 되게 한다는 뜻을 가진 ‘이루다’의 명사형이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도 우리 사회가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삭제하고 돌보지 않았던 이웃과 ‘함께’ 이루기 위한 단체다. 2005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룸〉은 성매매피해상담소로서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과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다는 김은미 리더예술인과 참여예술인. 이룸의 '불량언니 작업장' 언니들과 함께 이번 2020년 예술로(路) 사업에서 다시 만났다.

*2020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_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협업 프로젝트
협업활동기간 2020년 5월~10월(6개월)
리더예술인 김은미(연출)
참여예술인 이성순(전통타악), 이유진(건반), 정소희(감독), 타무라 료(퍼커션)
Q1_2017년 음악교류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이 더튠*과 〈이룸〉 고진달래 대표의 첫 만남이었다. 2020년에 예술로(路) 사업으로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1_ 2017년 〈뜻밖의 만남〉을 시작으로 2018년 더튠은 정기공연인 〈月談-달의 기억〉에서 ‘불량언니 작업장’ 식구들을 초대했다. 이룸의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대응 중 하나인 불량언니 작업장은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되면서 나이와 건강 문제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여성들, 뿔뿔이 흩어져 빈곤과 차별에 허덕이는 여성들에게 생존과 지지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활동이다. 이곳에서 불량언니 작업장의 언니들은 무엇인가를 만듦으로써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히고 관계 맺음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이후 자연스레 예술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 같다. 재밌게도 이번 예술로(路) 사업에서 그 끌림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Q2_끌림의 이유는 오랜 팀워크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참여예술인과 〈이룸〉 모두 올해 예술로(路) 사업 이전부터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다.

A2_ 개인적으로는 더튠의 일부 멤버들과 10년 이상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더튠과의 인연도 깊어졌다. 정소희 감독은 더튠은 물론 이룸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어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됐다. 이룸, 더튠 그리고 각 예술인이 오랫동안 형성해온 관계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 그 관계는 이번 프로젝트를 안전하고 즐겁게 추진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소리를 보는 사람들

참여예술인이 음계와 노래를 가르치는 모습

Q3_전문가 자문을 계획한 ‘준비’ 단계부터 예술로 관계 맺는 ‘실행’ 단계, ‘기록’과 ‘정리’의 단계까지 차근차근 정리된 활동 계획서가 인상 깊다. 구체적으로 〈이룸〉과 어떤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는가?

A3_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았다. 언니들의 삶에 존재했던 순간들을 ‘노래’라는 언어로 세상에 풀어놓으며 사회와의 연계망을 확장시키고 싶었다. 개인의 삶을 반추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며 만들어진 음악들은 하나의 창작곡으로서 탄생했다. 물론 불량언니 작업장의 언니들과 만들어낼 여정을 설계했을 때, 이는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그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언니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의 존중, 그리고 섬세한 관계 맺기를 위한 마음가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전제되어야만 이 여정이 모두에게 안전하고 즐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예술로 만나는 것만큼이나 언니들과 예술인이 사람 대 사람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대 여성으로 평등하고 동등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프로젝트에도 잘 담겨서인지 노래 안에도 언니들의 삶과 정서가 섬세하게 담길 수 있었다.

Q4_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공연계가 멈췄다. 공연을 계획했던 〈이룸〉 협업 프로젝트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A4_ 8월 중순에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악화되며 약 한 달 남짓 언니들과 예술인이 만나지 못했다. 언니들은 ‘아…, 이거 이렇게 끝나나 보다’하는 생각까지 드셨다고 들었다. 이때의 공백으로 계획했던 프로젝트 일정이 뒤로 밀렸고, 모두의 마음에 불안과 염려를 심어준 것 같다. 그러나 이 시기에 예술인들은 언니들이 쓴 글과 멜로디의 조각들을 잇고 발전시켜 노래 초안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언니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늘 함께하고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됐다. 9월 중순쯤 다시 만나 각자가 끄적인 글과 멜로디의 조각들이 노래로 완성된 모습에 언니들은 ‘아, 나의 노래가 정말 탄생하는구나. 우리를 위해 노력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만나지 못해 아쉽고 힘들었던 한 달이었지만, 서로에게 연결된 끈을 놓치지 않고 작업했던 시간이 다시 만난 우리를 더 단단하고 깊게 이어주었다.

소리를 보는 사람들

10월 말 곡을 녹음 중인 불량언니 작업장의 언니와 이성순, 이유진 뮤지션

Q5_2020년 예술로(路) 사업은 끝났지만 이룸과는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12월에 예정된 공연에 대해서도 살짝 귀띔해준다면?

A5_ 완성된 곡은 10월 말에 녹음을 마쳤고, 현재는 앨범 제작 중이다. 12월 11일에는 언니들과 예술인이 함께 연주하는 라이브 무대를 꾸민다. 언니들이 노래를 창작해온 과정을 관객과 나누고 한 분 한 분의 노래를 듣는 발표 공연이다. 이 공연을 위해 지금도 언니들과 예술인들은 매주 두 번씩 모여 노래 연습도 하고, 의상과 소품에 대해서도 상의하고 있다. 이룸의 활동가들도 코러스에 참여해 무대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바란다. (12월 11일 7시, 충무로 ‘코쿤홀’ 공연장)

강민지 예술인

김은미 리더예술인

Q6_예술로(路) 사업으로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연대와 지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글을 보았는데, 리더예술인으로서 남다른 사명감도 있었을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소회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A6_ 언니들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해 온 공동 구성원이며 이웃이다. 그러나 언니들 각자의 삶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부분 삭제된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사회가 건강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가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존중받는 것이며, 약자와 소수자는 차별과 혐오가 아닌 배려와 존중 속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소수자 혹은 약자가 되더라도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삶의 행복과 만족감이 커지고, 이는 곧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행동과 마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룸을 만나는 과정은 예술인이라는, 삭제된 사람이라는 소수자와 약자의 이름으로 살아온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지지하고 다독이는 시간이었다. 이 만남과 인연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재단의 지속적인 응원과 관심, 지지를 바란다.

* 더튠(THE TUNE): 한국전통음악을 재해석하여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음악창작그룹이다. 전통타악기와 해금을 연주하는 이성순 뮤지션, 건반의 이유진 뮤지션, 보컬의 고현경 뮤지션, 송한얼 퍼커셔니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참여예술인 코멘트

창작하는 예술인으로서 태도의 유연함을 기를 수 있었다
이성순 뮤지션 이성순 뮤지션
(전통타악, 해금)

지난해 낙산공원 프로젝트 〈더튠, 삶을 노래하다〉를 통해 사람들 삶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들이 주는 예술적 진정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무대를 극장 밖으로 확장해내는 작업, 그곳에서 음악이 삶의 위로와 응원이 되는 다양한 사회적 기능이 발견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룸의 절대적인 기대와 신뢰, 예술인들의 의지 등이 전제된 덕분에 대상자들과 진정성 있는 사업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었다. 더튠의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위로가 필요한 삶의 시간을 목도하고 노래하며 치유의 힘을 기르는 매개로서 지속가능한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모든 예술인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들여다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일이 재밌어질 것이다.

긴 호흡으로 참여자들과 얼굴 보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유진 뮤지션 이유진 뮤지션
(건반)

이룸과 협업 프로젝트는 그들의 인생을 녹여낸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것이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룸의 의미처럼 이 모든 걸 이룰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참여자들과 만남을 거듭할수록 애틋해지고 내가 누구보다도 그들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여예술인 각자의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그림을 꾸준히 의논했고, 그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것 같다. 다양한 예술에 대한 시각과 접근 방법을 보며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악보 그리기 과제다. 아니 글쎄! 한 언니가 연필이 없어 립스틱으로 음표를 그려온 것이 아닌가. 빨간 립스틱으로 번질까 후후 불어가며 한땀 한땀 그렸을 언니를 상상하니 정말 사랑스러웠고, 이렇게 서로 마음이 모여 하나로 가고 있음에 참 감사했다. 그 립스틱 자국들은 그 언니 곡의 모티브가 되어 멋지게 탄생했다.

함께한 모든 순간이 존경의 시간이었다
정소희 감독 정소희 감독

이룸 활동가, 불량작업장 언니들, 그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예술가로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특히 영상 작업자로서 잘 몰랐던 분야를 알 수 있었고, 특히 언니들과 협업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주된 활동 분야인 이주민의 문화예술활동에서 영감을 얻는 좋은 기회였다. 개인적으로는 언니들이 툭 던지는 말에서 거리의 철학자를 보았다. 언니들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흥미롭고 감동적인 장면이 많은데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전부 공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제일 크다. 언니들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사회적으로도 소중한 가치가 있기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 자체가 영광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룸과의 협업은 세상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넓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언니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타무라 료 타무라 료
퍼커셔니스트

언니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언니들의 삶에 위로가 되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노래로 담는 것이 무겁고 심각할 수 있지만 작업할수록 자연스럽게 6곡이 탄생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조심스럽고 언니들을 어떻게 대할지 어려웠는데, 막상 직접 만나고 소통하다 보니 괜한 염려였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있었는데 어려울 수 있는 곡도 모두 열심히 하고 좋아해서 뿌듯했던 적도 있다. 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특별하고 보람찼다. 물론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여예술인으로 이룸 활동가들, 언니들과의 작업은 즐거웠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회 음지에 내몰린 여성 인권 문제를 직접 알게 된 계기였고, 음악가로서 조금이나마 언니들의 사회활동에 도움 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