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의 세 번째 세션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재단)의 대표 사업인 창작준비금지원사업과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쟁점에 대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정책연구실의 차민경 부연구위원이 발표했다.
▲ 차민경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차민경 부연구위원은 “창작준비금 제도는 예술인의 창작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이지만 가장 어려움을 겪는 ‘준비기간’을 지원하는 제도로, 예술인의 창작주기 특성에 맞춤화된 유용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인들에게는 영감을 받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준비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가시적인 예술활동이 일어나는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의 급격한 감소와 예술활동 지속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준비기간을 지원하는 창작준비금은 창작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선사하며, 창작활동의 충실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밝혔다. 창작준비금의 장점으로는 지원금의 용도가 유연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의 협의로 제출 서류가 간소화되어 절차가 간편하고 효율적인 것을 꼽았다. 2020년부터 원로 및 장애예술인을 모두 ‘우선 선정 대상자’로 하는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우대를 제공하고, 2022년부터는 신청자의 소득 기준으로 파악하는 등 제도의 취지에 맞게 선정 기준을 지속적으로 개선한 것 역시 성과로 꼽았다.
예술인이 창작을 ‘준비’하는 기간을 지원한다는 의미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창작준비금은 현장의 여러 오해를 받고 있다. 저소득 예술인 생계지원 사업인지 창작활동 기반 지원사업인지 정체성에 대한 현장의 해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2013년 창작디딤돌 사업으로 시작된 사업이 2014년 예술인 긴급복지제도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2015년 창작준비금 제도로 복귀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민경 부연구위원은 제도 설계 시 생계 지원을 고려하고, 수혜자 선정 시 소득이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생계지원 사업으로도 볼 수 있으나, 창작준비금의 주요 목적은 생계가 아닌 창작에 있으며 ‘예술인으로서의 생존’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므로 창작활동 기반 지원 사업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고보조금 사업과 달리 지원 금액에 대한 영수증 정산과정을 진행하고 있지 않지만 창작 초기 준비과정을 지원하는 제도의 특성상 영수증 정산은 어렵고, 이런 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이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제공하는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인 파견지원-예술로사업(이하 예술로사업)은 예술인을 예술 이외의 영역(기업·기관·단체 등)과 만나게 함으로써,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장하고 예술인에게 다양한 활동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예술직무영역 개발을 지원하는 적극적 복지의 성격을 띠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이나 기관, 예술인 등 매우 이질적인 영역의 사람들이 한정된 시간과 장소 안에서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갈등이 소요되고, 기업의 영리 활동에 예술인이 단순 활용되거나 예술인들의 재능이 기업의 요구 수준 내에서만 펼쳐져야 하는 등의 한계도 있다고 보았다.
차민경 부연구위원은 “창작준비금과 예술로사업은 특정 직업군을 위한 복지정책일 뿐 아니라 문화예술인의 지속적인 창작을 지원함으로써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꽃피우게 하므로 문화예술 정책의 하나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제를 마쳤다.
이어 김석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사업부장, 이광복 극단 창작집단 일각 대표, 임현진 독립 프로듀서, 최지만 삶지대연구소 소장, 홍경한 미술평론가 등이 무대에 올라 창작준비금지원사업과 예술로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이광복 극단 창작집단 일각 대표는 “창작준비금은 예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창작을 준비하는 시간을 견뎌내게 하는 지원금”이라며 “예술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과 같다”고 말했다. 창작준비금 수혜자이기도 한 이광복 대표는 예술제에 참여한 경험을 예로 들며 창작준비금과 같은 지원정책이야말로 현장 예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영수증 정산 과정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예술적 사고와 준비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증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의문이라고 밝혔다.
▲ (왼쪽부터) 이광복 극단 창작집단 일각 대표, 이현진 독립 기획자
이어 독립 기획자이자 예술로사업의 리더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진 씨는 “창작준비금이 예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업이라면, 예술로사업은 예술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도와주는 사업”이라며 “예술계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세상과의 교집합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고, 여기에 예술이 있고 예술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예술적 개입을 통해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예술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최지만 삶지대연구소 소장, 홍경한 미술평론가, 김석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사업부장
광주에서 예술로 지역사업 컨설턴트를 맡고 있는 삶지대연구소 최지만 소장은 지역의 상황과 정책 간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역은 예술로 지역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업이 적고, 도 단위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예술인들이 협업을 위해 2시간 이상을 이동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예술로 지역사업의 경우는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다양한 이슈 등을 기업, 기관뿐 아니라 지역 단체, 네트워크, 거버넌스 등 다양한 주체와 협업할 수 있도록 참여 주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예술인복지사업 대상으로 생활예술인의 유입을 어떻게 볼 것인지 재단과 예술계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재단의 예산이 3억 원에서 2천억 원으로 증가하는 동안 재단의 직원수는 변함이 없고, 여전히 적은 인원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조직 운영의 문제도 지적했다. 재단 종사자들의 복지와 직결된 문제이면서 동시에 재단 사업을 통해 다양한 지원을 받는 예술인들의 질 높은 복지와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석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사업부장은 “예술인의 창작활동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원한다는 말에는 창작활동뿐 아니라 생계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예술인의 삶과 창작은 별개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단순히 가난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지원하는 것인데 정책과 현장에서의 인식 차이가 있고 여기서 오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 특성상 명확한 기준을 세우거나 성과를 수치화하기 어렵지만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을 운영하는 기관으로서의 어려움을 밝히며 여러 사업을 통해 확인한 다양한 성과와 가치들을 잘 축적해서 다음 사업으로 어떻게 이어나갈지 현장에 묻고 전문가와 토의하고 내부에서 의논하면서 고민하겠다며 라운드 테이블을 마쳤다.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10주년 기념 포럼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