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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을 통해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시민들은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의식을 보여주었고, 폭증한 환자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떠나지 않은 의료진의 값진 희생은 세계적 귀감이 됨은 물론,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안정을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한 건 아니었다. 감염병 예방수칙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혹시 모를 확산을 막는데 동참함으로써 최악의 고난을 최소화했지만, 공공생활이 정체되면서 국민 모두 민생위기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야 했다. 그야말로 가혹한 봄이다.
문화예술계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공연장을 포함해 예술계 내 거의 모든 공간이 문을 닫았고, 행사들 또한 줄줄이 취소 및 연기되었다.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초토화되자 예술인들의 일거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약 80%에 달하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피해가 컸다. 어떤 이는 그저 속절없이 버티는 것 외에 도리가 없었으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주변 지인에게 빚을 냈다.
이런 상황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3월 18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보고서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 미치는 영향과 과제』에 따르면 1~4월 동안 취소 또는 연기된 국내 공연과 전시는 2,500여 건이 넘었다. 이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직접적인 피해액만 523억 원에 달했고, 예술인 10명 중 9명의 수입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예술인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방역용품을 지원했으며, 지난 2월 20일 진행된 간담회에선 예술인 지원과 단체들에 대한 피해 보전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3월 18일엔 추가 대책으로 공연관람료 할인권 제공, 소극장과 공연예술단체를 대상으로 한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예술인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온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예술인 복지사업 참여를 위한 기본 절차인 ‘예술활동증명’ 및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코로나19 피해예술인 가점)’, ‘예술인생활안정자금융자(코로나19 특별융자)’ 등을 맡아 경제적 취약계층인 예술인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일련의 지원책들은 대개 선별적이거나 실효성이 떨어졌고 단체 중심의 지원에 그쳤다. 규모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었다. 일례로 방역용품 지원은 300석 미만의 공연장 외, 여타 타 장르 민간 예술 공간은 제외되어 보편적 지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공연과 전시를 열 수가 없어 당장이 시급한 상황에선 관람료 할인이나 기획비 지원은 꽤나 한가한 얘기였다. 특히 긴급 편성한 30억 원의 예술인 특별융자는 예산 제한이 있는데다 한국예총 추산 예술인 약 130만 명의 1/20 수준에 머무는 예술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구조여서 대부분의 예술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갚아야 할 ‘빚’이라는 점에서 기대했던 재난생계소득 차원에서의 일괄보조금과는 차이가 있었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책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예술인들을 실망케 한 건 2003년 창궐한 사스를 비롯해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의 전례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납득할 만한 매뉴얼 없이 ‘처음부터 다시’와 다름없는 양태를 내보였다는 사실이다.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기본데이터인 ‘예술인피해 전수조사’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고, 그동안 겪은 전염병에 관한 경험과 사례를 토대로 한 중장기 대책부터 내놓은 후 수정·보완하는 절차를 신속하게 거쳐야 했으나, 아쉽게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급한 불 끄기에 급급했을 뿐, 전문성 있는 케어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문체부는 소통도 부족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며 박양우 장관까지 나섰지만 국내 전파가 시작된 지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첫 발생한 지 두 달여가 지난 다음에야 본격적인 지원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니 발 빠른 장르별 맞춤형 지원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예산마련을 비롯해 관계부처와의 협의 등, 여러 난제가 있었겠으나 문체부의 구체적 재난 솔루션이 누락된 행보는 ‘당면할 때는 이미 늦다’는 교훈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더불어 ‘코로나19’ 이후 무엇을 준비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그리고 그 과제 중에는 2018년 발의되어 현재까지 국회 계류 중인 ‘예술인고용보험법’과 ‘통합대응 시스템 구축’, 사회적 재난을 대비한 ‘예술인 긴급예산’의 상시편성 등이 있다.
우선 예술인들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예술인고용보험법’은 실업급여와 같은 예술인들의 기초적 수준의 경제적 안전망까지 포괄하므로 지금과 같은 재난에서도 실직 위험에 따른 소득보전과 실업급여 수급 차원에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경쟁적 구조 아래 일회적이고 제한적인 공모제를 통한 지원에서 벗어나 보다 보편적·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한데다, 예술생태계의 근본적 취약성 개선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제도이다.
또 하나의 과제인 ‘통합 대응 시스템 구축’은 재난·재해 상황에 처했을 때 예술분야 실무에 있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장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문화예술인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재난 대비 ‘예술인 긴급예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심도 있는 대책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의 당위성이 있다.
이 밖에도 공공재를 창출하는 예술인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꾸준한 노력, 비접촉 예술 강습 및 판매‧관람 등이 가능한 통합 플랫폼 개발, 현재 6개월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상시 운영을 통한 예술가일자리 창출의 연속성 등의 해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채 희망을 담보하는 밝고 건강한 예술생태계 조성을 원한다면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