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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기회가 적은 원로예술인들을 위해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창작준비금지원 사업-창작디딤돌’을 펼치고 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9년 이 지원사업의 상반기 수혜자 중에는 조금 특별한 예술인이 있다. 러시아 사할린동포 3세인 이(李)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86) 화가다. 고령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를 만나, 창작활동과 노후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떡벌이가 안된다고 반대가 심했지요. 그림 그리는 일에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수학이나 노어(러시아어)를 배우라고. 그래서 어릴 적엔 어머니 아버지가 노동 나갈 때 몰래몰래 그렸어요.” 베갯모에 밑그림을 그려 수를 잘 놓으셨던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거 같다는 원로예술인은 어눌하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우리말로 이어간다. 러시아 사할린동포 3세 화가인 이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에게 그림은 그렇게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룩한 삶이자 꿈이었다.
어려웠던 시절 배고픔의 대명사였던 예술, 그 예술인의 길을 가고자 했던 이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 작가. 사할린사범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예술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 우리말 밥벌이의 다른 표현인 떡벌이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한다. 소학교 교사 시절 만난 지금의 부인(이수자)과 결혼하면서 한 집안의 가장이자 생활인,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러시아 연해주 한인 이주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온 화가의 가족사 또한 고통과 시련의 이민사였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연해주로 이주해왔지만 소비에트 공화국 주권 아래 한인(고려인)들이 강제추방되면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까지 오게 되었다고. 이곳에서 강제이주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했던 부친(故 이영식)이 흔적도 없이 끌려가면서 가족의 이민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1933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사할린, 하바롭스크까지 순탄치 않았던 이주의 삶 속에서도 작가의 그림에는 어촌의 풍경, 진펄의 갈대, 푸르른 산, 가지가 무성한 잣나무, 하늘색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절벽 등이 표현되어 있었다. 일상의 아픔과 고통, 시련을 아름다운 자연으로 표현하면서 예술로 승화시키지 않았을까.
사할린에서 소학교 미술교사를 시작으로 하바롭스크의 중학교에서 조각과 미술을 가르치며 퇴임하기까지, 56년간 교육자로 살아온 작가의 삶. 그에게 교직은 생활의 방편인 동시에 화가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원천이었으리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물감, 붓, 캔버스 등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얻을 수 없는 창작 도구들은 예술가들에게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에는 공훈 화가가 아니고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게 없었어요. 지금처럼 이런 캔버스가 없어서 처음 내가 유화를 시작했을 때는 판지나 종이, 천에 그렸습니다.” 작가는 판지에 그려진 자신의 첫 유화 작품을 보여주며 그림설명을 이어간다. 힘들었던 체제,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도 그림과 예술 창작에 쏟았던 그의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랫동안 선친이 정치적 동기로 근거 없이 탄압받은 것에 대한 명예가 회복되면서 부모님의 나라이자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대한민국에 영주 귀국할 수 있게 된 화가 이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 부부. 지난 2013년 12월 경기도 파주에 정착, 오로지 창작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바랄 게 없이 너무 좋아요. 그림 그릴 수 있게 도와주셔서 고맙고요.” 옆에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화가 남편을 대신해 활동을 보조하고 있는, 부인 이수자 씨가 “한 번에 300만 원씩 지원받았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예요”를 덧붙이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거듭 고마움을 표한다.
파주 정착 후 파주미술협회에 가입하면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알게 되었고, 지난 2015년 첫 지원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이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 작가. 파주 인근 풍경 좋은 곳으로 스케치를 나가거나 인천, 부산 등으로 떠난 여행의 자취는 작품으로 남겨졌다. 이런 작품들은 매년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협회 회원들이 함께하는 것 말고, 개인 전람회도 4번이나 했어요.” 그림과 전시회 이야기에 작가의 눈빛은 생생한 예술가의 그것으로 돌아간다. 그림에 몰두할 때면 불러도 대답 없고 배고픔도 잊는다는 부인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싶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①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원로예술인의 유화 작품들
②2019 파주미술협회전에 전시될 작품,‘평화의 다리’
③마무리 작업 중인 최근 작품
④인사동에서 주로 구입한다는 미술재료(유화물감)
작품활동을 지속하면서 전시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작가는 올해 두 차례의 전시가 남아있다고 한다. 정기적인 파주미술협회전과 한·중화가들의 교류전이다. 특히 협회전에는 파주의 지정학적 의미를 담은 ‘평화의 다리’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거실 벽면을 장식한 작품들과 방 한켠에 모아놓은 유화 작품들을 보며 예술인에게 물리적 나이는 오히려 창작의 폭을 넓혀 그것을 담아낼 수 있게 하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러시아, 사할린, 한국의 경치가 다 달라요. 한국에서도 파주 다르고, 부산도 달라요. 각기 다른 경치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영주 귀국해서 자신의 그림 풍이 러시아에 있을 때보다 색채가 더 환해지고 고운(좋고 예쁜) 데만 그리게 된다는 원로예술인, 이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 작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아직도 꿈꾸고, 꿈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노부부가 함께 미술 재료를 사러 가는 곳이자 크고 작은 미술관과 전시공간이 있는 인사동에서, 그의 표현대로 ‘개인 전람회’를 열고 싶은 게 앞으로의 꿈이라고 한다.
한 폭의 그림에는 예술가의 영감과 기술적 표현능력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물감과 붓, 그림을 담아낼 캔버스’라는 물리적 도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 예술인들의 창작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원로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사업’ 지원이다. 행복하게도 고국에서 그 사업의 수혜자가 되어 더 없는 행운이라는 이 블라지미르 니꼴라예위츠의 꿈이 요원하지 않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