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신청
|
재작년 말에 출간된 〈김동식 소설집〉 중 하나인 〈회색 인간〉은 10쇄를 훌쩍 넘겨 문학계에도 큰 화제가 됐다. 김동식 작가는 이제야 본인을 작가로 소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는 서울 주물공장에서 단추 같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노동자였다. 22살에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장으로 출퇴근하길 10년. 그는 단추와 함께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이야기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올라왔다. 그의 소설은 김민섭 작가의 제안으로 출판됐다. 여전히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피드백이 있어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을 잊지 않던 그를 만나보자.
글 편집부 사진 최지원
인터뷰는 작년에 많이 했었죠.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어쩌죠?(웃음) 지금은 주로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 같은 강의를 하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많이 불러주시네요. 다음 달은 방학이라 일정이 적은데, 방학 아닌 달에는 한 달에 보름 정도 강의를 나가는 것 같아요. 저를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연락이 오면 다 찾아가려고 합니다. 제 책을 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직도 신기해요.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도 제 서평을 찾아보는데, 직접 만나서 듣는 후기는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강의에서 현장의 후기를 듣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이미 제 책으로 수업이나 토론을 한 후에 불러주세요. 그래서 매번 기분 좋게 갈 수 있어요. 대부분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를 많이 궁금해하십니다. 커뮤니티에 글을 쓰다 작가가 된 경우가 흔하지 않잖아요. 또, 질의응답으로 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중학교를 중퇴하고, 19살에 대구로 올라와 PC방 아르바이트를 3년 정도 했습니다. 시급 1,900원 받고, 휴일 없이 11시간씩 일해서 한 달에 60만 원을 벌었어요. 당시에는 누구도 시급을 적게 받는다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단골손님이 그 사실을 알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제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때마침 외삼촌의 소개로 성수동 주물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2006년 월드컵 직전이었어요.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받은 월급은 130만 원이었습니다. 두 배가 넘는 돈을 받는 신세계가 펼쳐진 거죠. 이 공장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결근도, 지각도 없이 10년을 일했습니다.
딱 1년만 쉬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지치더라고요. 제가 30대가 됐을 때, 지난 10년을 하루로 압축할 수 있었습니다. 공장에 출근하고, 다시 퇴근하는. 20대가 삭제된 것 같더라고요. 공장 생활에 지칠 때쯤,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2016년 5월부터 오늘의 유머라는 커뮤니티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공장은 딱 10년 일하고 그만뒀네요. 글을 쓸 생각으로 그만둔 건 아니지만 1년 동안 여행도 다니고 기억에 남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공장은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웃음) 근데 1년 후, 책이 출간돼서 글쓰기에 몰입하기로 했어요.
단순한 이유였어요. 커뮤니티는 3일이 지나면 잊히거든요. 댓글로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일에 한 편씩 글을 올린다는 저만의 다짐이 생긴 거죠.
할 일이 없다 보니 인터넷을 많이 합니다. 커뮤니티는 물론 뉴스, 실시간 검색어를 눌러보다 번쩍 떠오르면 쓰기 시작해요. 인터넷에서 텍스트를 소비했다고 생각합니다. 웹서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재밌는 글을 찾으러 커뮤니티의 유머나 공포게시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최근에는 이동하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한 번씩 의식하려고 합니다. 버릇이 든 것 같아요. 흥미 있는 것을 찾으려는. 공장 다닐 때는 글을 쓸 생각이 없어서 뭔가를 찾진 않았어요. 대신 벽보고 혼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흔히들 망상이라고 하죠.(웃음) 초능력이 생기면 뭐할까, 어디에 갇혀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같은.
인터넷 외에도 만화, 게임, 시트콤 등을 챙겨보며 기발한 부분에 늘 감탄했어요. 그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접했으니 제가 모르면 다른 사람도 무조건 모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최대한 결말, 상황 등은 저조차도 처음 보는 쪽으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자료를 따로 찾진 않고, 모르는 게 나올 때까지 머릿속에서 생각해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가 소름 끼치는 반전이나 뒤통수 맞는 느낌의 결말이거든요. 또한, 댓글에서 제가 생각한 반응이 나왔을 때 짜릿함을 느껴요. 소름이 돋을 만큼. 그것 때문에 글을 재밌게 쓸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32살까지 살면서 좋아하는 일이 없었거든요. 처음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막상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에게 댓글과 추천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너무 짜릿했어요. 제가 댓글중독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댓글도 꼼꼼히 챙겨봤고요. 그때의 희열 때문에 계속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글을 썼는데, 감사하게도 기회가 오더라고요. 물론 이전에도 커뮤니티에 가입까지 하는 참여형 이용자였습니다. 댓글로 이어서 소설을 쓰기도 했고, 잡담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차근차근 발전했습니다.
틈날 때마다 쓰고 있어요. 일정이 바쁘면 이동하는 시간을 활용하는 편이에요.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여러 명의 작품을 책으로 엮은 앤솔로지나 카카오페이지에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앤솔로지 같은 경우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작가분들과 교류도 할 수 있어 감사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초심을 잃은 것 같다는 댓글을 받곤 해요. ‘예전만큼 재밌진 않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책보다는 신경을 씁니다. 어떤 부분에서 재미가 없어졌는지, 어떻게 하면 재밌을지 계속 생각 중입니다. 또한, 10,000자 정도 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정도 텍스트가 있어야 독자들이 더 좋아하시고요. 공장을 다닐 때는, 퇴근할 때까지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주저 없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지금은 바로 키보드 앞에 앉으니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두 가지 조언을 들었는데, 하나는 공장에 다시 다니라는 것.(웃음) 다른 하나는 산책입니다. 공장보다는 산책하면서 사색의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작가로서 이렇게 계속 글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 못 했어요. 누군가 저의 글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죠. 꾸준히 해왔고, 억지로 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며 글을 쓴 게 인생의 반전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장소 협조: 책방열음
서울 광진구 광장로 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