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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

201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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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에서 장애예술인으로 살아가기

글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신체적 장애가 예술의 장애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글과 그림, 노래와 악기, 춤과 무용 등 전방위 예술 분야에서 장애, 비장애가 따로일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신체적 장애가 예술 활동과 처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를 통해 우리나라 장애예술인들의 실태 및 관련 법안, 그리고 해외 사례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장애인 문화권이 아닌 장애예술인에 대한 인지 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장애인은 무능한 사람이고 예술인은 비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장애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장애예술인의 창작을 예술로 보지 않는 것이다. 단지 장애인의 취미생활이나 재활치료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2018년 장애인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이다. 문화부에서 장애예술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한 것은 2012년이었다. 2012장애문화예술인실태조사는 대학로에 장애인문화예술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장애예술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창작지원금이었고, 창작공간은 두 번째로 나타나 연구 목적을 100%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설득력이 있었다. 장애예술인 개인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작지원금이 훨씬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6년이 지난 후 실시된 장애예술인실태조사는 그 명칭부터 잘못되었다. 장애인이 어떤 문화예술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연구 목적을 두다 보니 모집단이 장애예술인 그룹이 아닌 장애인복지 그룹인 장애인복지관과 장애인거주시설 등으로 되어있어 장애예술인의 예술권 보다는 장애인의 문화권에 대한 욕구만 드러났다. 즉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체육으로 예를 들면, 생활체육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의 확대이다. 물론 장애인의 문화생활도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장애예술인들의 실태를 파악해서 장애예술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장애인 문화예술활동으로 범주를 확대한 실태조사로 장애예술인의 실태를 또다시 묻어버린 것은 장애예술인을 인정하지 않고 예술계에서 장애예술인을 배제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된다.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예술의 안타까운 현실

장애인예술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장애인예술 자체가 일반예술과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장애예술인에 대한 정책 부재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장애인예술이 공론화되어 역동적인 장애인예술 운동이 일어났다. 영국 정부는 장애예술인이 예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국예술위원회에 장애인예술 전문자문위원회(Disability Reference Group)를 구성하여 장애평등계획(Disability Equality Scheme)을 1차(2007~2010)와 2차(2010~2013)에 걸쳐 실시하였다. 1차 장애평등계획의 목적은 장애예술인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이었고, 2차 장애평등계획의 목적은 장애예술인의 명성 높이기였다.

이밖에 독일은 유크레아(EUCREA), 미국은 VSA(Very Special Arts), 일본은 에이블아트(Able Art), 중국은 중국장애인예술단 등이 장애인예술을 대표하고 있는데 장애인예술을 한계가 없는 예술, 모두를 위한 예술, 경험예술로 특징지어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시켰다. 이렇듯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장애인예술이 정책적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예술이 예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매우 안타깝다.

근육병이 진행되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숨조차 쉬기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꽂고 생활하는 김진우 시인은 시를 쓴다. 2017년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대상을 차지한 후 일반 문학상에 꾸준히 도전하여 크고 작은 상을 수상했다. 2018년도 ‘시의 날’ 행사에서 시 낭송을 하였는데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시를 들으며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다고 그 순간의 감동을 말했다.

중증의 장애로 학교에 가지 못해 만화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소녀 이해경은 엎드린 자세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습작 기간을 거쳐 20살에 『새소년』으로 데뷔하였는데 그 소녀가 지난 7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는 피아노 전공으로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무대에 오를 때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입장하여 완벽한 연주를 선물할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 길에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게 된 김용우는 휠체어무용가로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안무가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더욱 빛내고 있다.

장애예술인 지원 관련 법안에 대한 노력과 열망

저마다 독보적인 예술 분야를 구축해낸 장애예술인들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서는 장애예술인의 삶과 예술을 담은 스토리텔링북 〈누구?! 시리즈〉를 기획하여 13종까지 발간하였다. 그러나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마련해야 하기에 공모사업에서 탈락하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관계로 지속적인 스토리텔링북 시리즈 제작에 가속이 붙지 않고 있다.

2018년 장애인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서는 장애예술인 6천여 명, 장애인예술활동가 26만여 명으로 추산했지만, 현재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은 1만 명에 달한다(2019년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_방귀희 박사학위 논문, 2013). 장애예술인 인구가 1만 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 하여 1만 장애예술인들의 열망을 담은 「장애예술인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해,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장애예술인의 예술 활동을 돕는 창작지원금제도, 장애예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지원고용제도, 장애예술인에게 일정 비율의 참여를 확보해주는 공공쿼터제도이다. 그런데 국회가 민생은 젖혀놓고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어 장애예술인들은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 법률은 2012년부터 준비하여 2016년도에 발의되었고 2017년 국회 공청회로 의견수렴까지 마치는, 일련 모든 과정을 어렵게 밟았다. 이번 국회에서 완결되지 못하면 폐기되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구제와 예방 시스템 구축인데 그것을 일정 집단의 이익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도 아쉽다. 장애예술인을 이대로 계속 방치하는 것은 정치적 유린이며 사회적 유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