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나는 연기자로 살고 싶다
2016. 10올해 2월, 예술인 복지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이순재가 예술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예술인 복지사업에 대해 알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흔쾌히 재능기부에 나섰다. 예술인 복지 홍보영상 촬영으로 분주한 현장에서 틈틈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한다. 취재·사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지난 7월 말, 예술인 복지정책 홍보영상 촬영장에 모습을 나타낸 이순재 선생은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 막바지 촬영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연극 〈사랑별곡〉(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2016. 9. 4.~10. 1) 연습이 시작되었으며,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SG아카데미에서 학생 워크숍 발표를 위한 연기 지도가 한창이라는 근황을 전했다.
1950년대에 연기 활동을 시작해 여전히 활동하는 배우로서 예술인의 복지, 예술인의 삶이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정책적인 복지의 개념보다는 소위 말하는 생활 여건이라는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제가 느낀 점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도 분야별로 차이가 있겠고요. 제가 연극을 하던 60년대에는 연극, 연기라는 건 돈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연극으로는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TV로 옮기게 되었죠, 출연료를 주니까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돈하고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림이나 소설은 히트작이 나오면 괜찮았고,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은 60년대 이후 대중들이 한국 영화를 찾게 되면서부터 일부 괜찮아졌죠. 하지만 출연료가 워낙 열악해서 대선배들이 말년에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몇 사람 빼놓고는 안 좋았다고 봐야합니다.
요즘은 한류 바람으로 인해, 제 기억으로는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조금씩 달라졌는데, 특히 젊은 스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해서 일부는 부를 충족할 수 있게 됐지요. 하지만 여전히 일부 순수 연극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이고,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 취약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복지적인 측면에서 정부와 기관이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하면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준비금지원 사업은 어떤가요? 주변의 평가도 궁금합니다.현재 지원되는 3백만 원은 말 그대로 창작을 위한 준비금, 예술인의 의지와 의욕을 불러일으킬 만한 계기가 되는 돈이라고 봅니다. 신인이나 활동 기회가 적은 원로 예술인에게 권장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먹고 살아야 하니, 예술인이 부업을 하잖아요? 부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작품과 역할을 만나기 위한 준비 단계이고, 그런 의미에서도 3백만 원이라는 지원금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죠. 그걸로 생활비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많은 대상을 제한된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이니, 예산 부분에서 더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지원책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신인 발굴을 봅시다. 예전에 대학에 경연대회가 있었어요. 전공 여부를 떠나 해마다 경연대회를 반복했습니다. 상금도 줬고요. 이런 걸 다시 살릴 방안은 없을까요? 극단들과 함께. 사실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창작 욕구가 가장 중요하고 이런 것을 바탕으로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전혀 몰랐어요. 말만 들었지 구체적으로는 잘 몰랐죠. 사실 저 같은 경우는 다행히 아직 자급자족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상황이 아니라 재단이 단순한 지원, 후원단체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근원적으로 예술인과 예술계 전반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관이고, 그런 구호단체와는 의미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또 연장자로서 마지막으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 전업 연기자로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연기자라는 게 요즘 영화나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는 것 외에는 시험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본인이 가진 창의력과 의지로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비록 현재는 이러하다고 해도 긴 미래를 보고 자기 자신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요. 예전에는 대부분 다 그랬어요. 인내력과 능력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금의 60대, 70대, 80대 연기자가 된 겁니다. 요즘은 한 작품으로 뜨면 주목을 받고 부자가 되기도 해요. 물론 꾸준히 노력해서 대기만성으로 빛을 보기도 하지요.
지금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아쉬움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신지요?문화예술계라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 분야만 말하자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죠. 문학 분야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수준까지 올라왔고요. 더불어 번역 작업이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끼리만 읽고 끝나지 않고, 과거의 고전이나 명작 등 좋은 작품들을 통해 우리 고유의 철학, 문화를 해외에도 알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공연예술 쪽으로는 기업이나 단체들이 지원을 많이 하고 있는데,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어떻게 살아남느냐의 문제가 있어요. 공통적으로는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하는 것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의욕도 있고, 좋은 소재들도 있으니, 이제 그들이 현업에 밀착해서 작업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대학교 때입니다. 대학생의 여가생활이란 게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돈 생기면 영화 한 편씩 보는 게 낙이었죠. 그때는 유명한 영화가 많아서 명감독, 명작, 명배우를 보는 기회였어요. 충동을 느낀 건, 로런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m)의 〈햄릿〉. 올리비에의 연기를 보고 ‘저건 정말 예술이다’라고 느꼈죠. 프랑스의 연출가 장-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도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대단한 예술이라고 했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배우를 딴따라라고 했지만, 해외에서는 배우들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런 예술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1956년에 학생극을 했고, 졸업 후 군대 다녀와서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연기를 하겠는가? 지금 같다면 얼른 하죠, 돈도 많이 버는데(웃음). 이 직종의 장점은 항상 창의력을 발휘하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겁니다. 작품이 바뀔 때마다 새 것이잖아요. 생에 대한 의욕이 있어요,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것보다는.
예술성은 초기에 빛을 발하는, 흔히 말하는 신동 같은 특수한 경우에 일찍 부상할 수 있어요. 천재성을 발휘해서 주목을 받는 경우가 어느 분야든 있지요. 그러나 연기자는 기본을 얼마나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지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롱런할 수 있고, 갈수록 더 원숙해지고 커질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아역 때부터 천재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역 배우가 커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전례는 없어요. 언젠가는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자기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불확실하지만, 끝까지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기회는 분명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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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KBS 개국 첫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로 브라운관 데뷔를 하였다.
이후 수백여 편의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였으며, 연기 인생 60년 차를 맞이한
지금도 정극부터 예능까지 폭넓게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 중이다.
예술인 복지 홍보대사. 대학 재학 중인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