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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6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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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예술인 권리보호, 작가이자 변호사로 말하기
정소연 변호사·소설가

예술인권리보장·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위원회 위원으로 예술인 권리보장을 위한 법률 활동을 하는 정소연 변호사는 또한 SF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예술인이기도 하다. 독특한 이력 덕분에 예술인의 권리보호에 대해 더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정소연 변호사를 만났다.




이력이 독특합니다. 변호사이면서 동시에 SF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SF를 쓰고 번역도 하는 12년차 변호사입니다. 2004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시작으로 번역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글을 쓰게 된 것은 번역 일을 하고 몇 년 뒤의 일인데 제 안에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글이 나오게 되었어요. 학교 체육관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마음속으로 떠올린 이야기를 글로 쓴 것이 데뷔작인 〈우주류〉입니다. 데뷔작으로 바로 수상(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에서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했다)하면서 엉겁결에 작가가 됐죠.

어렸을 때부터 과학교양서를 많이 읽었어요. 많은 분이 ‘인생책’으로 꼽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중학생 때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몇 달치 용돈을 모아 그 책을 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책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라서 서점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원서로 샀는데 글쎄,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그 옆에 있던 ‘사이언스 픽션’을 사면서 아이작 아시모프로 시작해 SF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렸습니다. 세상을 약간 기울여 보면 정상성과 비정상성,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같은 판단 기준이 달라지잖아요.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내가 비정상이었던 게 아니야’ 하는 안도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렇게 SF에 빠졌고 SF 소설도 쓰게 되었네요.


변호사와 작가라는 두 직업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요?

로스쿨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변호사도 소설가처럼 글을 쓰는 직업이니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두 직업이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요. 변호사가 되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소설가로서의 내 삶은 끝났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실제로 쓰지 못했고요.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냥 그때는 과로해서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점점 모드를 전환하는 법을 익히게 됐습니다.

어떤 직업이 주업인지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아무래도 변호사입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죠. 글은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써요. 평소에는 글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아서, 청탁을 받으면 천천히 워밍업을 했다가 최대한 며칠 정도의 덩어리 시간을 확보하고 글을 씁니다. 변호사는 시간을 매우 작은 단위로 쪼개서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10시에 재판에 갔다가 11시에는 상담을 하고, 11시 40분에는 이메일을 한 통 쓰는 식이죠. 그래서 글을 쓸, 덩어리 시간을 확보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예전에는 글 전체를 머릿속으로 썼는데 요즈음은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키워드나 주요 문장을 메모해 놓았다가 덩어리 시간에 풀어 쓰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정소연과 글 쓰는 정소연이 함께 존재하는 법을 점점 익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소설가로서 쓰는 글이 변호사 정소연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요즈음은 상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도 받아들이고 있어요.


예술인권리보장·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위원회(이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공익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일하고 싶어서 로스쿨에 진학했어요. 막상 로스쿨을 졸업하고 처음 몇 달간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제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협업하는 데 서툴다는 걸 알게 되어 혼자 일하기를 선택했지만요. 기본적으로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사회에 돌려주어야 할 게 많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성장중인 개발도상국에 태어났고, 좋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사랑받으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자랐어요. 내면의 혼란조차도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고, 대체로 안전하게 지내왔어요. 좋은 대학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았고, 원하는 직업을 갖고, 생계를 넘어 자아실현의 기회도 가졌어요. 전쟁도 빈곤도 겪지 않았어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은 본래 공평하지 않은데, 그 불평등이 저에게는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했고, 다른 많은 사람의 유무형의 기여가 제 삶을 지탱했어요.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서 이를 보정할 의무가 있고 받은 것을 내어놓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는 어떤 기관이며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을 근거로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위원회입니다. 기존 「예술인 복지법」에 근거한 복지 및 지원정책을 넘어,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 보장, 성희롱·성폭력 등 예술 활동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피해구제 등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위원회가 출범한 지 어느새 1년 4개월이 되었는데, 저는 성희롱·성폭력 분과와 권리 분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고된 사안을 다른 위원님들과 함께 심의·의결하고, 예술인 권리보장 정책에 필요한 일들을 함께 논의합니다.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놀란 점은 아직도 구두계약이 많다는 것입니다. 서면계약에서 내용에서의 불공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아예 서면계약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예상보다 훨씬 많습니다. 서면계약서 작성은 예술인 권리보장의 기본입니다. 서면계약 없이 서로 적당히 양해했다가는 나중에 길고 고통스러운 분쟁을 겪을 수 있어요. 그러니 서면계약서를 꼭 요구하세요. 만약 서면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런 일은 안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부득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중에라도 예술인신문고에 신고해주세요.


5월에 예술인 권리보호 교육인 〈예술 계약 제대로 시작하기!〉 특강을 맡으셨는데요. 어떤 분들이 강의를 들으면 좋을까요?

계약 경험이 없는 분들이 꼭 들었으면 합니다. 신인 때 계약이 정말 어려워요. 내 글이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지, 그 가치를 계약서라는 법률문서에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계약을 잘 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 정작 어떤 게 ‘잘’ 하는 건지 몰라서 특별히 문제가 없는 부분에 대해 오해를 하는 바람에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판계약은 여러 번 했고 아직 특별한 갈등은 없었지만, 계약서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는 분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업계에서 실제 사용되는 계약서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강의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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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르의 계약과 비교했을 때 출판 계약의 특수성이 있을까요?

출판 계약의 경우 대체로 서면계약은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작가에게 불공정한 부분이 아직 있고, 쌍방 계약서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단 믿고 서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판권설정기간을 매우 길게 잡거나, 특약서로 2차적저작물작성권에 관한 사항 전체를 포괄위임하는 등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일단은 계약 내용을 자세히 물어가며 따져보기 어려운 분위기는 아직 있는 것 같아요. 따지면 까다롭다는 말을 듣고요.


최근 웹소설 연재 플랫폼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이렇게 연재된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도 많습니다. 이러한 출판시장의 변화의 흐름에 맞춰 예술인이 계약 시 주의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2차적저작물작성권에 대한 부분이 까다롭고 복잡해졌어요. 계약의 방식이나 내용도 다양하고요. 수익배분의 문제도 있고, 정산방식 문제도 있어요. 대체로 개별적으로 계약서를 검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 출판사는 원래 이렇게 한다”는 말만 듣고 작가님들이 바로 서명하지 말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법률상담 등을 통해 경험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계약을 체결했으면 합니다. 가장 난감할 때가 기존 출판에서 포괄위임을 이미 해버린 경우예요. 출판사에 포괄위임을 하면 드라마, 영화 등에 관한 계약 체결 과정에서 원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작가가 내 의견을 들어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리죠. 계약을 하고 일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 잘못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잘못일 수도 있는 일들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계약서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쓰여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게 잘 풀리면 계약서가 필요 없겠죠. 계약서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의 기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예술인이 기울여야 할 노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계약서를 꼭 읽어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 공적 지원을 통해 충분히 이해를 하고 그 다음에 서명하세요.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읽고, 이해하고, 그 다음에 서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