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낭만의 역사와 오해
2018. 12역사 속에서 예술을 생활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움직임과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고 둘을 일치시키려는 움직임은 서로 반동을 만들며 진자 추처럼 오고 갔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계속 변주되며 반복되었는데 때로는 거부와 저항의 형태로, 때로는 개념들의 긍정적인 재해석으로 나타났다. 예술을 생활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남아 있는 낭만적인 예술관과도 관계한다. 예술인은 작업의 대가로 적절한 금액을 먼저 제시하기 어렵다는 인식, 그 요구가 직접적일 경우 예술가답지 않다는 시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목적으로는 윤리적 고민이 부재해도 된다는 합리화, 생활의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도피를 예술적 실천으로 포장하는 관성 등 오랜 낭만적 예술사의 부정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지만 예술과 예술인에 관한 전형적 이미지로 오래 굳어진 까닭에 예술인에게 사슬과 같은 오해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예술을 다시 생활로!예술과 생활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두려던 흐름은 예술과 예술작품에 위계와 권위를 부여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반기를 든 건 아방가르드 예술인들이었다. 이들은 예술을 다시 생활로 돌려놓기 위해 박물관 벽을 허물고 싶어 했다.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프랑스 개념주의 미술가)은 파리 거리에서 직접 작품을 등에 짊어지고 활보하며 박물관 벽 너머로 나아갔고, 뒤샹(Marcel Duchamp, 프랑스 미술가)은 변기를,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미국 팝 아티스트, 화가)는 침대를, 앤디 워홀(Andy Warhol, 팝 아티스트)은 캠벨 깡통을 박물관 벽 안으로 던져 넣었다. 권위와 위계를 생산하는 예술 제도에 대한 상징이었던 박물관에 뒤샹은 변기를 넣으려 했고, 당시 변기 전시가 거부되면서 전시장 한쪽에 커튼으로 가려진 채 놓인 일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0세기 초 근대성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한 아방가르드는 회화, 음악, 문학 분야에서 다양한 예술운동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술에서의 아방가르드 실천은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을 다시 삶과 생생한 관계를 갖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경계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서 그치고 말았다. 박물관의 벽을 부수기 위해 던져 넣은 캠벨 깡통은 박물관에서 보호해야 할 귀한 작품이 되었다.
생활 사물들이 박물관 속 예술이 되면서 반대로 박물관에 있던 예술작품을 일상의 사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도 생겼다. 생활이 예술로, 예술이 생활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경계는 그대로이고 다만 그 사이로 요즘 말하는 굿즈들이 자리를 바꾼 것뿐이었다.
(왼쪽부터)앤디 워홀의 〈캠벨 깡통〉, 마르셀 뒤샹의 〈변기〉,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침대〉 생활 인식으로서의 예술결과적으로 기획은 성공하지 못했고 전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아방가르드는 예술과 생활 사이의 경계를 그전보다 더 뚜렷하게 가시화했다. 경계를 지우려 할수록 더 진해지고 확장되는 경계는 예술인에게 그 자체로 제도라고 해도 무관했다. 이 경계에 대한 예술인의 입장은 시대적으로 달라졌다. 누군가는 경계를 넘어 날았고, 누군가는 경계 위에서 춤을 췄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그 모든 시도가 예술적 사유로, 실험으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가령, 러시아 문예비평가 알렉산드로 보론스키는 1924년 「생활 인식으로서의 예술과 현대」에서 “예술은 우선 생활의 인식이다”라고 썼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공상이나 감정이나 기분대로의 놀이가 아니고, 시인의 주관적 감각이나 경험만의 표현이 아니다. 예술은 생활을 인식하고, 대상으로서의 생활과 현실을 갖는다. 과학은 생활을 분석하지만 예술은 생활을 종합한다면서 보론스키는 예술이 형상의 도움으로, 살아있는 감정적 직관의 형식 속에서 생활을 인식한다고 했다. 그의 사유는 다양한 예술 장르의 사회 참여적 시도를 설명하는 데도 용이하다.
그의 말처럼 예술 대상으로서의 생활과 현실이 존대한다고 할 때, 우리는 여러 예술인들에게 질문할 수 있다. 당신 예술의 대상이 되는 생활이나 현실은 무엇입니까? 다음에서 그 답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