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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2

202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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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주에서 전국 최초로
예술인 권리보장 조례를 만든 이유와 현재
글_임인자
(전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민관협치TF 부위원장)

올해 2월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가 제정되어 공포·시행되었다. 이는 2022년 9월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이후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한 최초의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이다.


조례는 2020년 광주시립극단에서 있었던 부조리 사태를 고발하고 나선 예술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2020년 하반기 광주시립극단 공연에 참여한 조연출과 오디션을 통해 작품별 단원으로 참여하게 된 배우들이 자신들이 겪은 계약지연, 불공정계약 종용, 갑질, 성희롱 및 안전사고 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광주의 예술인 및 시민사회가 응답하며 광주시립극단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대책위원회는 광주시립극단에서의 ‘작품별 단원제’라는 기형적 방식의 고용형태를 지적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광주문화예술회관은 즉시 광주인권옴브즈맨에 사건조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개적으로 사건조사가 진행되었고, 연습 도중 일어난 안전사고 등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등 사건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응 매뉴얼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전문성이 없어 피해구제 및 예방대책 마련에 어려움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광주시립극단에서 발생한 사건은 근본적 해결을 이루지 못했다. 연출, 무대감독 등 상임단원들이 가진 힘의 위계는 해결되지 못했고, 작품별 단원을 고용하는 불평등한 고용구조 방식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모 단체에서 언어적 성희롱 등의 문제가 발생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광주에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관이 부재하였다. 성희롱 문제에 대응 의무가 있는 단체 대표자에게 이야기했지만 스스로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광주문화재단에도 신고할 기구가 없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신문고에도 신고하였지만 당시에는 지역으로 가는 변호사 교통 여비가 예산에 책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대면 면담조차 할 수 없었다. 광주에서의 대응 체계 부재, 중앙 중심의 예술인 권리 침해 대응 미비 등으로 인해 아무런 피해구제를 받지 못한 피해자는 결국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1)


2022년 6월에는 광주 연극계의 위계와 위력에 의한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피해를 입었을 당시 피해생존자들은 이제 막 연극을 시작한 연극인들이었고, 가해자는 극단의 대표, 연출이자 예술 강사로 학교에서 강의하는 선생, 광주연극협회의 임원 등을 맡고 있던 자들이었다. 당시 연극계에는 2차 가해까지 만연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술인의 권리 침해에 대해 광주광역시는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모니터링이 이루어졌다. ‘광주광역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 제6조에 의거하여 예술인 복지증진심의위원회가 설치·운영이 되어야 했으나 단 한 차례도 운영되지 않았고 회의조차 열리지 않은 사실이 지적되었다. 시민사회단체는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 TF 설치’를 제안하였다. 광주시의회 및 광주광역시장과의 면담 등 긴 논의 끝에 2022년 1월 18일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 민관협치 TF〉 첫 번째 회의가 열렸다. 이후 1년 동안 정기회의와 수시회의, 예술인 집담회와 공청회 등이 열리며 많은 예술인의 참여가 이어졌다.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에 관한 조례’는 조례의 지위상 광주에 거주하는 예술인과 예비예술인을 대상으로 그 지위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조례로서의 방향성을 가지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7조 예술의 자유의 침해 금지, 제8조 예술지원사업의 차별금지, 제9조 예술지원사업의 공정성 침해 금지, 제11조 예술지원사업에서 예술활동 개입 금지, 제13조 불공정행위의 금지, 제14조 예술인조합 활동방해의 금지에 관한 사항을 준용하되 처벌이 아닌 권리구제로서의 보장을 반영하고자 했다. 


시장의 책무도 명시했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직접적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시책 마련, 검열 금지, 예술인의 정책 결정 과정에의 참여, 성희롱·성폭력 금지·예방, 예술지원기관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책무로 명시한 것이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에 관한 사항을 심의·자문할 수 있도록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심의위원회’도 둘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광주광역시는 예술 표현의 자유 보장과 피해구제, 예술인에 대한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 및 피해구제,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피해구제,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을 위한 예술인권익지원센터의 운영을 하도록 명시했다. 그렇게 올해 2월 23일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가 제정되어 공포되었다. 


첫걸음은 떼었지만 공포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조례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조례 제정 이후 광주광역시의 집행이 담보되어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행되고 있지 않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실태조사도, 영향평가도, 지원계획도, 심의위원회도, 권익지원센터 등 그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고 있다. 예술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법률 자체의 한계도 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체계에서 시행되고 있기에, 처벌은커녕 조사 권한조차도 지방자치단체로 위임되지 않았다. 분권이라는 가치와 더불어 문화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입법뿐만 아니라 그 정책의 수립과 수행에 있어 조사 권한이 필요하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 아니라 독립적인 방식으로 예술보호관이 임명되는 등 독립적이고 분권적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 분권 및 독립성 보장을 위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광주광역시에 조례 시행에 따른 이행을 조속히 촉구한다. 또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또한 조례를 제정하여, 안전한 창작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광주에서 전국 최초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를 만들기까지 많은 예술인의 참여와 절박함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절박함은 현재진행형이다.

1) 임인자, 〈안전한 창작환경 조성으로 함께 “존중”하고 함께 “지속”하는 문화도시 광주에서 살고 싶다〉, 민선 7기 남은 1년, 문화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문 (2021년 6월 24일)



외부 필진의 원고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