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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0

202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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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기본계획〉의 방향과 의의  

글 오세형(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공연장추진단장)




불과 2~3년 만에 장애인예술과 관련한 법과 정책과 제도가 빠른 속도로 구비되었다. 오랫동안 힘겹게 활동해오면서 더딘 변화에 익숙해진 장애예술인 중에는 격세지감을 느끼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2020년 12월에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22년 9월에 많은 조사와 논의를 거쳐 법에 명시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제 장애예술인과 관련된 시책은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명백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가 되었고, 지속적인 강제력 하에 추진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장애인예술 사업이었던 공모지원사업 규모는 2017년 20억 초반에서 2023년 67억으로 확대되었고, 기본계획에 따르면 5년 안에 200억 규모로 확대한다고 발표되었다. 정부는 문화예술정책의 역동성을 체감할 만큼 이례적인 정책 추진력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5년간 추진될 기본계획에 제시된 5대 전략의 주요한 키워드는 창작지원 강화, 장애예술인 일자리 확대, 문화예술 접근성 확대, 체계적 정책수립, 장애예술인 양성이다. 방대한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그중에서 비교적 쉽게 와닿을 만한 주요한 내용만 추려서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주목해야 할 전략은 ‘창작지원 강화’와 ‘장애예술인 양성’이라는 과제이다. 전략과제 중 현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정책이며, 5년간의 목표도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 주요 과제는 얼핏 보면 기존의 낯익은 예술정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장애예술인만의 특별한 전략이라고 보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2018년과 2021년에 조사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된 내용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장애인은 정규적이거나 전문적인 예술을 교육받는 기회가 적거나 장애를 이해하는 교육전문가의 부족으로 재능을 잘 살린 예술가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어렵사리 예술가가 되더라도 원활한 예술활동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복지시설에서 받은 예술교육을 통해 예술활동을 시작한 장애예술가가 40% 정도나 된다는 것은 낙후한 장애예술인 예술교육의 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해준다. 장애예술인의 설문에서도 92.4%가 문화예술활동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으며, 가장 필요한 정책이 창작발표기회 확대(70.5%)라고 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예술활동 지원이 훨씬 열악하다는 점은 상기 두 과제에 왜 높은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장애예술인의 여건에 맞는 맞춤형 창작지원의 방향은 다각화 전략이다. 장애인 배우와 무용수가 참여하는 공연은 보통 연습기간이 길고 복잡한 창작과정을 거치게 된다. 시각장애인 연주자는 모든 악보를 외워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두세 배의 연습기간이 소요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안정적인 창작활동 기반 제공을 위한 2~3년 단위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방식을 확대하고, 장애별로 상이한 활동 생태계를 고려한 장애유형별 지원사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통과 이동이 편리한 수도권 이외의 소외된 지역에 대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광역단위의 지역거점 중심의 지역특성화사업도 확대하게 된다. 지원사업의 규모도 22년 대비 3배 정도 확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장애예술인의 창작지원금을 2021년 667명에서 2026년 2,000명으로 확대하는 등 지원기반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창작지원 강화의 두 번째 전략은 장애예술인의 작품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소비되고 유통되기 위한 지원책과 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최근 「장애예술인 지원법」이 개정되며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가 시행되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기관은 창작물 구매총액 중 3% 이상을 장애예술인의 공예, 미술품, 공연 등 창작물로 구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증가한 수요로 장애예술인 창작물이 늘어날 것이고, 정부는 구매정보를 매개하는 유통 플랫폼을 제공하여 장애예술인 창작품에 대한 소비와 유통을 진작하려고 한다. 이 외에도 장애예술가의 작품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예술시장 진출 지원사업이나 미술품 대여사업 지원과 같은 예술품 유통에 방점을 찍은 사업들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장애예술인 육성’ 전략의 방향은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에게 수혜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단계별로 예술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장애인은 장애유형별로 예술작품의 특성과 표현체계가 달라 예술교육의 접근법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감각적·인지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의 예술교육은 아직 충분히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영역이며 관련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일찍 재능을 드러내는 음악·미술 등 특정 장르는 입문교육부터 심화교육까지 단계별 접근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장애인 예술강좌 이용권이나 문화 바우처 활용을 통해 장애인의 예술교육 수강기회를 확대하고,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교육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장애인 복지관, 특수학교와도 협력하여 입문형 예술교육을 확대하고 전국에 분포한 장애인 시설의 문화향유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예술을 위한 과정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아카데미를 통한 심화교육과 지역의 거점기관을 연계한 특화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장애인을 교육할 수 있는 예술교육자나 매개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전문인력 양성 교육도 병행할 예정이다.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 접근성 확대’ 전략은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된다. 장애예술인 표준 공연장과 전시장 등 문화기반시설 조성사업은 장애예술인에게 접근성이 좋은 발표공간을 제공한다는 편의 서비스를 넘어 접근성 정책의 확산과 보급이라는 목표가 내재되어 있다. 기존의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문화시설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접근성이 높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조성된다. 이 시설에서는 이동약자를 위한 시설접근성을 넘어서 청각, 시각, 인지기능 등 감각적 접근성을 고려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제작된 양질의 작품을 유통하려는 여타 문화시설들은 자연스레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문화향유를 통해 포용적 문화를 체득한 장애인 관람객은 다른 지역의 공연장, 전시장에도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와 접근성 서비스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문화시설의 접근성 개선을 도모하는 촉매가 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장애예술인 표준 공연장에서는 장애인의 관람편의를 서비스하는 접근성 매니저, 수어통역, 음성해설자와 같은 매개인력들이 전문적으로 육성되고 점차 여타 문화시설에서도 활동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문화시설 접근성 매뉴얼이 보급되고 문화시설 연수 및 종사자 교육을 통해 문화계 전반에 포용적 문화가 점차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국공립 문화시설의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공연/전시 등의 콘텐츠, 홈페이지 등의 정보접근성도 개선하여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전략들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네 번째 추진전략인 ‘정책의 체계적 추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전담기관-장애예술가(단체)로 이어지는 사업수행 체계의 전문성과 원활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조사연구 사업과 정책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고, 실현가능한 실행계획의 체계적 추진과 사업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인 관련 사업은 기존에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주요한 정책을 실행해왔던 관련 부처간의 협치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의 예술인 일자리 창출이나 전속작가제도 등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유사제도와 선행법률을 감안하여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와 같은 제도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거버넌스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기본계획의 비전은 ‘장애예술인이 정당하게 존중받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장애예술인이 적절하고 필요한 예술교육을 받고, 동등한 기회가 보장된 예술활동을 하고, 접근성이 제공되는 문화활동과 향유활동을 통해 예술을 삶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이념이다. 기존에 영국, 미국 등에서 장애예술에 대한 우수한 정책과 성과들이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들 국가는 다민족, 다원적인 국민구성원을 고려한 문화다양성의 정책적 우산 아래에 장애예술을 포함하는 등 문화적 배경과 목표가 상이한 측면이 많다. 우리의 장애예술인 정책은 여성, 인종, 성소수자, 난민 등 여타 소수자가 포함되지 않은 점, 무엇보다 국가에서 주도적이고 선택적으로 장애예술을 문화정책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고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육성을 위한 전방위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차별화되고 있는 지점이다. 이번 첫 번째 기본계획을 통해 장애인 예술의 기반이 탄탄해지고 예술적으로도 위상이 불분명했던 장애예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드러나는 긴 여정의 시발점이 잘 닦이기를 기대한다. 





사진 제공_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2021 무장애예술주간-고블린파티 댄스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