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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9 2019. 2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집중 기획 예술인과 가족

가족을 작품에 담다

2019. 2

예술인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단일한 답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에 담긴 그들 가족을 보면서 다만 그 시선과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는 정도겠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평생 작품의 모티프가 되어주었고 반면, 평생 굴레가 되어 목을 조르는 존재인 경우도 있었다. 가난한 예술인과 그 가족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도 자주 등장했다. 작품 속 가족의 모습은 예술적 성취와 의미 외에도 작업 당시 시대상과 가족 형태를 반영하므로 문화사회학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가족을 욕망하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 나의 할아버지, 부모님, 그리고 나, 1936 가족 초상화, 1950 프리다 칼로, 〈나의 할아버지, 부모님, 그리고 나〉, 1936 / 〈가족 초상화〉, 1950

18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타고 있던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면서 프리다 칼로(Frida Khalo, 1907~1954)의 길고 끔찍한 고통은 시작되었다. 평생 일곱 번의 척추수술을 포함해 총 서른두 번 수술대에 올랐고, 결혼 생활 동안 세 번의 유산을 겪었다. 단 한 번의 사고가 그의 남은 인생 전체를 삼키고 내내 지배했다.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며 긴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평생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143점의 회화 중 55점이 자화상일만큼 계속해서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응시해온 프리다 칼로. 그가 그린 가족의 모습은 그래서 조금 특별하다. 가족을 보는 그의 시선은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시선이다. 거기에는 욕망이, 표현할 수 없는 원망이, 때때로 냉정함이 담겨 있다. 그에게 가족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온전히 안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존재. 특히 유산과 불임에 대한 고통과 아이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 그대로 투영된 그림들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복수였을까요? 루이즈 부르주아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 빌바오, 스페인, 1999 마망, 데이트 모던, 영국, 1999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 빌바오, 스페인, 1999 / 〈마망〉, 데이트 모던, 영국, 1999

청동조각으로 만든 거대한 거미의 이름은 마망(Maman). 엄마라는 뜻이다. 1999년 런던 데이트 모던 마당에 슬그머니 걸어온 ‘엄마’ 덕분에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가 엄마를 모티프로 탄생시킨 이 거미는 10년 만에 전 세계 이곳저곳에 출몰해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엄마, 나의 엄마’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이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거미처럼, 내 어머니는 베틀에서 베 짜는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은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는 사업을 했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생산을 담당했다. 거미처럼, 나의 어머니는 매우 영리했다. 모기를 잡아먹는 거미는 친근한 존재다. 우리는 모기가 질병을 퍼뜨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돕고 예방하고. 나의 어머니는 거미처럼 그랬다.”

어린 시절 그가 겪은 폭군 아버지, 아버지의 정부, 폭력적인 기억 등으로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은 사실 유년에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는 메타포로 가득 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앞선 고백에서 ‘모기’는 누구의 비유였을지 알 만하다.

평생 가족을 그린 칼 라르손 칼 라르손 큰 자작나무 아래 아침식사, 1896(수채화, 32×43cm, 스웨덴 국립 미술관) / 숙제하는 에스베욘, 1912(74×69cm, 종이에 과슈, 개인 소장) 칼 라르손 〈큰 자작나무 아래 아침식사〉, 1896 / 〈숙제하는 에스베욘〉, 1912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꼽히는 칼 라르손(Carl Larsson, 1853~1919)은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그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꾸리고 유지하기를 바랐다.

예술인인 카린 베르구(Karin bergoo, 1859~1928)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후 그는 장인이 마련해준 집에서 8명의 자녀를 낳고 살면서 초라한 오두막에 불과했던 집을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으로,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의 모델하우스로 탈바꿈시키면서 이후 스웨덴 아트 앤 크리프트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평생 집과 아내와 아이들을 화폭에 담은 칼 라르손. 어린 시절 꿈꾸었던 행복한 가정, 안정적인 자연 속에서 그는 어린 자신과 대면하고 스스로를 치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림들을 묶은 『나의 가정』이란 그림책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언젠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위안을 주었고 무척 사랑받았다고 전해진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 헨리 무어
  • 헨리 무어, 가족, 1949 헨리 무어, 〈가족〉, 1949

현대 영국 조각의 개척자라 불리는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 2차 세계대전 이후 기념비적인 청동 조각상들을 제작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작품 〈가족〉에서 현대 가족이 상실한 것들을 일깨운다. 재료의 차가움과 세 가족의 따뜻함이 부드러운 곡선 안에서 묘하게 어울린다.

그는 모델링에 의한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을 거부한 걸로 유명하며 상징화된 인체의 조형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현대조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와상, 즉 누워 있는 형태인데, 가족은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보면 아이가 부모의 양팔을 매듭처럼 묶고 있으며 각각의 개체가 하나의 형태로 조화를 이뤄 생명력이 느껴진다. 무어는 “엄마와 아빠의 팔이 아이의 몸에 3개의 매듭을 짓는 모양새가 된다. 3개의 매듭은 가족 간 단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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