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확장하는 가족의 의미
2019. 2인류학자들은 일찌감치 문화에 따른 가족의 다양성에 주목했다. 가령, 남부 인도의 나야르(Nayar)족은 전형적인 모계사회를 이루며 생물학적 부모와 사회적 부모가 일치하지 않는다.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은 시동생과 처남을 얻기 위해 결혼해 가족을 이룬다. 에스키모인들에게 가족이란 우선 경제적 결합체이다. 근친상간이 자연스러운 결합 형태였던 고대 이집트는 또 어떤가. 우리가 ‘정상가족(하나로 통일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적이라 가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이라고 인식하는, ‘부모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형태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예술인들은 이 협소한 가족 개념이 유일하게 정상적이라고 가정하는 사회 분위기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경계하며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왔다.
가족관계 모순 꼬집어- 서하진 『착한 가족』
“어머니와 형제들, 아내와 자식….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그들을 M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와 연결된 자신. 그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서하진 작가의 소설집, 『착한 가족』 중 단편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의 한 대목이다. M이라는 인물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후 가족이라는 제도이자, 관계, 형식적 유대가 실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겉으로는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중산층 ‘정상가족’의 불행은 갑작스런 사건으로 쉽게 뒤틀리고 부서지는 가족관계로 대변된다. 동시에 그들이 ‘정상가족’ 밖의 가족들을 어떤 편견 속에서 어떻게 소외시키는가를 드러내는 장면들은 고스란히 이 사회의 그림자로 대입된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른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인 가족 형태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 모순적인 가족 형태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 오래고 지속적인 질문에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지 및 강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정상성’을 향한 욕망까지, 예술인들이 시선과 방식을 달리해 재차 꼬집는 작품들을 여러 장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직장 생활과 집필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균형을 잡아 왔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육아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엄마가 되자 모든 게 ‘와장창’ 무너졌다고 했다. 어느 정도 매뉴얼과 과정이 있는 일이나 집필 작업과는 달리 육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이와 남편,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답을 계속 찾고 있다고 했다. 어떤 한 가지를 위해 무언가를 쉽게 희생하고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그는 계속 충돌하고 고민하고 답을 구하며 살아갈 것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 상상을 현실로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 Tofler)는 가족의 미래를 예언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가족은 360여 개의 형태로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1970년대 가족학자들 중 가족의 붕괴 혹은 소멸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며 가족 유대가 약화되고 가족생활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가족학자들의 예측은 어느 정도 맞았지만 자아와 개인 영역의 확대로 오히려 이 영역을 친밀하게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관계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게 된 건 예측 밖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제도로서의 가족보다 가족의 관계적 성격이 더 강해진 것이다.
가족을 소멸시키는 대신 사람들은 가능한 가족 양식을 시도하고 만들어냈다. 이혼과 재혼이 늘면서 이혼 부부가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새로운 형태의 확대가족을 이루는 집합가족(다부모 가정)을 비롯해 1인 가족, 동거 가족, 자녀 없는 부부 가족, 한부모 가족, 양부모 가족(step-families), 전문직(two-career) 가족, 역할 공유(role share) 가족, 역할 전이(role reversal) 가족, 동성 가족, 비혈연 가족, 공동체 가족 등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족 유형도 더욱 다양해졌다. 미하일 엔데의 『모모』 속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그랬고, 박완서 소설들의 가족 해체와 대안이 그랬고, 김이설의 『나쁜 피』에서 주인공의 선택이 그랬으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 친구이자 여성노인들이,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의 비혈연 관계 또한 그랬다. 가족의 의미도 다양해졌다.
예술적 상상과 현실은 엎치락뒤치락하며 그렇듯 서로를 보완해왔지만 현 사회제도는 여전히 ‘정상가족’을 단위로 설계되고 있다. 부양의무제의 문제, 생활동반자법의 난관 등 경직된 가족주의와 제도는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고 작품 속에서 재현해온 예술인들의 상상 뒤로 한참 뒤쳐진 모양새다. 그렇더라도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그에 따른 가시적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