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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이동 북한산 자락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번 2020년 예술로(路) 사업을 통해 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예술인들이 있다. 각자 다른 분야를 작업하지만, 더 깊은 움직임을 만들고자 모인 이들은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어 예술의 소통을 보여준다. 이번 협업 프로젝트의 강민지 리더예술인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협업활동기간 | 2020년 7월~10월(4개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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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예술인 | 강민지(애니메이션) |
참여예술인 | 강동형(만화), 김준서(설치미술), 정승(미디어아트) |
A1_ 2019년 이음센터(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가 주최한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에 이음센터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작가로 초청됐었다. 현재 소보사 협업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김준서 작가, 강동형 작가도 그때 각자 ‘폭포대 탁구’ 제작, 전시부스 디자인 및 설치 등에 참여했었다. 참여예술인 모두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수어 시 낭독, 수어일기 등으로 전시를 진행한 소보사를 알게 됐고, 그들의 ‘농정체성’과 ‘수어 문화’ 등이 궁금해졌다. 다양한 예술로써 농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팀원 모두 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2020년 예술로(路) 사업까지 인연이 닿은 것 같다.
(좌측부터 시계방향) 소보사 홍보 SNS 포스팅 카드뉴스, 〈2020 전국 농학생 모여라〉 축제 셋업, 비대면 수업부스 3D 시뮬레이션
A2_ 2014년에 나와 김준서, 강동형 작가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알게 됐다. 정승 작가는 이번활동에서 처음 만났다. 각기 다른 시각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어서 각자의 영역에서 펼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구상했었으나, 코로나19로 소보사 교내 상황과 전국 농아인 축제상황에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획했던 프로젝트를 번복해야만 하는 힘든 과정을 지나왔다. 그래도 개별활동보다 수어 이모티콘 제작, 캠핑존 디자인과 설치 등 함께할 수 있는 활동들을 단단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갑작스럽게 바뀌었지만, 참여한 예술인들 모두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며 무리 없이 진행한 것 같다.
A3_ ‘수어응급상황 매뉴얼북’, ‘수어사전’ 등 이미지 중심의 시각 프로젝트를 계획했으나 코로나 일상이 지속되며 외부인으로서 소보사 방문이 어려웠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학생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기존 계획 대신 소보사와 회의를 거쳐 소보사에 필요한 프로젝트로 방향을 바꿨다. 그 결과로 소보사 홍보영상 제작, 수어 이모티콘 제작, 수어통역 장갑 등을 계획했다. 소보사는 수어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언어가 아닌 농인들의 고유한 언어이며 농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농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대안학교다. 한글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학생들은 채팅앱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팀원들은 농인들의 채팅 방식에 주목하여 소보사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자주 쓰는 표현을 움직이는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현재 수어 이모티콘은 소보사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 채팅앱에 정식 이모티콘 등록예정이며 지금은 소보사의 축제준비로 인해 잠시 보류된 상태다. 이외에도 추운 날씨에 수어 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수어장갑’이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시제품 제작을 준비 중이다.
소보사 협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수티콘, (왼쪽부터 차례대로) ‘얼굴’, ‘이놈’, ‘나 지금 화났어’, ‘쉿!’을 뜻한다.
A4_ 제일 먼저 학생들을 만나 수어의 다양한 표현을 영상으로 담았다. 영상을 토대로 나와 강동형 작가가 스틸 이미지로 움직임을 표현하고, 참여예술인들 각자의 작업 스타일로 이모티콘을 완성했다. 소보사와 1차 제작물을 공유한 결과, 청인의 시각에서 표현된 수어는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한 불완전한 이모티콘이었다. 이미지 표현에 중점을 두다 보니 언어 전달에는 부족한 결과물이었던 것 같다. 소보사 김주희 선생님이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셨고, 강동형 작가가 농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어 이모티콘 작업을 마무리했다. 수어 이모티콘 프로젝트 덕분에 지금까지 진행했던 미술 작업을 고민할 수 있었다. 시각적 재미와 완성도보다는 나와 팀원들이 간과한(혹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언어적 장벽을 직관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더 고민했어야 했다. 이것은 비단 작업의 기술만이 아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청인과 농인의 소통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더 나아가 참여예술인들은 각자의 분야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소보사와 협업에서 비롯된 작업적 고민은 다양한 관점과 다른 방식으로 시도될 것이다.
A5_ 앞으로도 농인정체성과 예술인이 만나 수티콘**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와 확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술인들은 농인들의 정체성을 만나고, 예술로(路) 사업을 통해 또 다른 눈을 갖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국립국어연구원에 표준 수화가 있을지라도 농인들에게는 수티콘이 더 쉽고 재미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해야 이런 연구도 계속되지 않을까. 농인들과 함께 만든 수티콘이 농인과 청인의 간격을 좁히고, 장애 인식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의 만남으로는 아쉽다.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 이제와서 빼기는 더 힘들 것 같다.
〈2020 전국 농학생 모여라〉 축제 홍보 애니메이션 캡처, 강민지 예술인(a.k.a. 애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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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작업자로서 고민과 결핍이 있기도 했고, 장기간 홀로 작업해야 하는 것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다. 스스로 가진 답답함과 의문들을 예술로(路) 사업으로 더 뚜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을 만나고 다른 삶의 방식들을 사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지금의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까지. 2014년부터 예술로(路) 사업에 참여하며 뚜렷한 성격을 가진 단체들에 지원했다. 그들이 존재하게 된 사회적인 배경을 알아가고,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작업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소보사와 협업 프로젝트로 다른 시각에서 창작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예술로(路) 사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기간 잘 준비해서 함께한 예술인들, 소보사 스태프, 선생님들과 잊지 못할 따뜻한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 2019년 10월 15일부터 25일까지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축제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을 통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실험적인 페스티벌이다.
** 수티콘: 수어와 이모티콘의 약어로 수티콘을 제작한 참여예술인들이 직접 만든 단어다.
(좌) 소보사 협업 프로젝트 관련해서 회의 중인 예술인들, (우) 〈2020 전국 농학생 모여라〉 축제 리허설을 준비 중인 소보사 스태프와 참여예술인들
공간구성과 디자인을 담당했다. 수화를 상징하는 손을 이미지로 표현해 소보사 행사 배너를 디자인했다. 수티콘 제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다. 청인으로서 손을 디자인적 요소로 작업했지만 소보사의 피드백으로 농인에게 손가락과 손의 동작 그리고 손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이번 예술로(路) 사업은 생각과 감각을 확장시키는 좋은 경험이었다. 〈2020 전국 농학생 모여라〉 리허설을 위한 파티가 인상 깊었다. 15명 남짓의 농인과 청인이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파티의 풍경을 바라보니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했으며, 다른 감각에 집중하다 보니 예술 작업에 있어 잊지 못할 영감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소보사 연례 행사인 뒷마당 캠프 준비 및 진행을 함께했다. 또한 청인들을 대상으로 소보사를 알리는 홍보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농인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도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농인들의 소통 환경을 접하게 되면서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됐다. 소통 방식에 있어 많은 사람이 지향하는 청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커뮤니티 중심의 소통을 지향하는 소보사 농인들의 방식이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시스템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계기로 농인들의 소통 방식을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여 기존의 틀을 깨는 흥미로운 결과물을 얻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보사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아동과 농청소년들이 모인 곳이니만큼, 아이들에게 수어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결핍을 막기 위한 보조수단이 아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모국어로서 수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어를 언어로 인식하는데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이를 예술로 풀어가는 작업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이번 협업으로 소보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서, 또 농문화를 예술로 풀어가는 작업에 대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예술인들은 소보사의 농청소년들 한 명 한 명을 ‘장애인’이 아닌 ‘청소년’으로 바라봐주고 소보사 공동체와도 깊은 유대감을 가지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경청해주었던 점도 고마웠다.
(a.k.a. 전구남)
전구 달아주는 남자, ‘전구남’으로도 불린다. 수어 이모티콘을 만들었고, 소보사 뒤뜰을 캠핑존으로 꾸몄다. 무엇보다 ‘농문화’를 배우고, ‘농정체성’에 대해 공부하고,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데 성숙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예술인으로서 장애는 극복하거나 고쳐야 할 혹은 돌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한쪽으로 치우친 발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세상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졌다. 농인들은 청각이 미약한 대신 높은 관찰력과 순간적으로 보여진 화면을 머릿속에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시각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앞으로는 농인과 청인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각적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