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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제1회 두바이 국제 AI(인공지능) 영화제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작품만 500여 편. 이중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작품이 있다. 권한슬 감독의 ‘원 모어 펌킨(One More Pumpkin)’이다. 권한슬 감독은 기괴하다 못해 조금은 징그러운 노부부, 이들을 잡으러 온 다양한 모습의 저승사자, 그리고 호박귀신까지 모든 장면과 사운드를 생성형 AI로 구현하여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제 수상이라는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해 6월 AI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스타트업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을 설립한 데 이어 AI 관련 정보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플랫폼 ‘AI-Kive’를 준비하고 있는 권한슬 감독을 만났다.
‘원 모어 펌킨’은 200세 이상 장수하고 있는 노부부의 비밀을 담은 미스터리 장르 단편영화입니다. 배우도, 실사 촬영도, 컴퓨터 그래픽(CG)도 없이 생성형 AI기술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영상 구현까지 5일밖에 걸리지 않았죠. ‘원 모어 펌킨’은 상영을 목적으로 제작한 영화는 아닙니다. AI기술로 내러티브가 있고 완결성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작업에 가깝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AI를 이용한 영상 작업 중에 영화라 불릴 만한 작업은 거의 없었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AI 영화만의 장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AI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어야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실사 영화의 하위 호환 버전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창작자로서의 바람도 있었고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표정들이 굉장히 기괴합니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빨라 지금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구현되지만 당시에는 사람의 표정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공포라는 장르와 결합한다면 끔찍하면서도 기괴한, 하지만 새로운 느낌의 연출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AI기술이 저의 작업방식과 작가적인 성향과도 잘 맞았고요. 제가 원래 하드코어한 장르물을 좋아하고 그로테스크한 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창작 방식 역시 소스를 최대한 많이 촬영한 다음, 새롭게 조합하고 편집하면서 의미를 만들며 작업합니다. 이런 작업방식이 수십 개, 수백 개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AI와도 잘 맞아떨어진 거죠. 여러모로 저의 색깔과 AI가 잘 맞았고, 그게 ‘원 모어 펌킨’이라는 성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영화의 경우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굉장히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업영화, 장편영화로 입봉하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고 투자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고,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도 하는 등 감독으로 나쁘지 않은 코스를 밟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 감독으로 입봉하는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더라고요. 현실의 벽을 극복하고자 자본이 없더라도 제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CG였죠. CG도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들더군요. 그러던 와중에 작년 4월경, 생성형 AI기술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생성형 AI기술은 GIF파일 수준의 영상만을 겨우 만드는 정도였습니다만 기술의 발전속도를 생각했을 때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화란 애초에 기술의 발전과 함께 탄생된 예술입니다. 카메라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장르죠.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흑백에서 컬러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화는 발전해왔습니다. AI기술을 보는 순간, 또 하나의 변곡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계속하려면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일이고, 그럴 거면 누구보다 빠르게 도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일 수 있습니다. ‘원 모어 펌킨’의 경우 비용은 전기세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AI 서비스들은 구독료가 있는데, ‘원 모어 펌킨’을 만들 당시에는 오픈되어 있는 AI모델을 가져와서 커스터마이징하여 제작했기 때문에 서비스 구독료도 들지 않았죠. 제작기간이 단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도 AI이기 때문에 가능했고요. 실제로 촬영을 했다면 배우와 장소를 섭외하고, 특수 분장을 해서 촬영을 하고, 이후에 CG작업도 필요했을 겁니다. 비용과 시간의 감축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형태라 논란이 많고, 논의할 거리가 많은 거지만요. 창작의 주체가 인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AI로 영상을 연출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이미지들을 생성해주기 때문에 일정한 톤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독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AI로 영상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보자면, 프롬프트에 정보값을 입력해서 이미지를 만들고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영상화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연출입니다. 카메라 렌즈 mm수와 앵글, 조리개값, 조명, 피사계심도 표현, 소품 세팅 등 디테일하게 입력할수록 AI가 생성하는 영상의 완성도는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또 AI가 생성한 것들 중에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 것인지 역시 감독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테이크를 골라서 쓰는가는 창작자의 크리에이티브한 역량에 달려 있는 거죠. 결국 프로세스는 똑같습니다.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AI라는 도구를 활용한 방식이 등장할 거고, 새로운 형식의 아트워크 리그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현장이 필요하다면 현장에 나가서 촬영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AI 영화제가 생기는 등 변화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또 저희가 후배 창작자들에게 영감이 된 부분도 분명 있는 것 같고요. 여러 감독님이 AI로 영상을 만들고 있는데, 이 시장을 연 사람들이 새로 진입한 분들과 경쟁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의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창작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AI 숏필름 광고 작업을 했습니다. 상업적인 영역에서 인정받아야 예술의 가치도 인정받기 때문에 시장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9년도에 한 번, 2021년도에 한 번, 총 두 번 창작준비금을 받았는데, 졸업 작품을 비롯해 독립영화들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창작준비금 같은 지원 덕분에 작업을 놓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영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술가는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장려하는 좋은 지원들이 많아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국 시장의 AI 도입률이 굉장히 낮습니다. 도입률이 낮다는 것은 결국 경쟁력이 낮아질 거라는 의미거든요. 창작자 입장에서 AI기술을 직접 써봤으니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창작자들이 AI에 대한 정보와 가이드를 얻고 나아가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배울 수 있는 ‘AI-Kive’라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AI-Kive’를 비롯해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을 AI로 창작하는 데 관심 있는 예술인과 함께할 수 있는 회사로, 국내 콘텐츠 업계를 선도하며 더 나아가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미디어 테크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이자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입니다. 두려워하며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AI 등 신기술을 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고요. 기존 방식과 다르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방식의 제작이 가능할 테고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일자리 등이 만들어질 겁니다. ‘기회’라는 단어에 방점을 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를 권합니다. 그러나 그 기술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어떻게 활용하고 내 예술에 접목할지 예술인의 시각에서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기술은 기술일 뿐, 우선되는 것은 우리가 예술로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