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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획자로 일하며 예술기관과 예술가 사이에서 긴밀한 협업을 해오고 있지만 스스로를 예술계의 일원으로 인지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중간 지점에서 두 진영을 오가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부탁하고, 조정하고, 때로 수습하는 일까지도 기획자의 책무라 여겨 왔던 것이다. 기획자 7년차에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했던 때가 기억난다. 감격스러울 것까지야 없지만 어엿한 예술인이 된 것 같은 기분, 입증의 노력을 기울여 자발적으로 획득한 예술활동증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 이제 나도 관련사업을 신청해볼 수 있겠지 하는 안도감이 섞인 복합적인 마음이었다고 할까.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로 사업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몇 차례의 입장 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해 왔다. 첫 지원에서의 ‘서류 광탈’이 떠오른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사업의 본질과 성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한 당연한 결과였다. 주변 동료들을 규합하여 팀을 짜고, 협업할 기관까지 물색하여 제법 탄탄한 지원서를 작성했지만 당시의 의도는 공공에 기여하는 일이기보다는 복지사업의 안정적 재원을 활용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해보고자 하는 것에 가까웠다. ‘복지’의 수혜대상이 되려면, 타인에게도 그만큼의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균형감각이 내게 있었던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건강한 예술노동일까. 복지사업에 걸맞은 맞춤형 기여일까. 어딘지 헷갈리기도 했다.
두 번째 지원은 성공이었지만 부담스러운 족쇄처럼 느껴졌다. 얼결에 ‘리더예술인’ 역할을 맡으면서 겪었던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경제적 수혜를 쉽게 누리고 싶은 이기심, 예술적 진정성에 대한 희미한 부담감, 의미 있는 협업이나 효율적 분업도 모조리 실패한 것 같은 분열증으로 인해 사업 참여가 마냥 신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재난 시기에 진행되었던 협업활동은 마치 신기루와 같았다. 모두 함께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고, 몇몇이 만나는 것조차 제약이 상당했던 코로나 초기의 활동은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은 독특한 경험이자 유산이 되었다. 세 명의 화가, 한 명의 음악인, 그리고 무대 연출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낸 사업의 향방은 전시 운영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미술관을 위한 정책 리서치와 이를 바탕으로 한 출판물 제작 협업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 이후 미술세계의 비물질화에 대한 예술적 리서치를 기반으로 미술관과 미술작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미래사회에 대한 불경한 상상을 담은 그래픽노블과 웹툰을 제작하는 것으로 기획이 재정비되었다. 온라인상에 구글 문서를 띄워놓고 기획서가 아닌 SF풍의 시놉시스를 공동으로 창작하고, 실력의 편차가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원화를 그려보았다. 웹툰 제작을 위해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던 초반부의 고전을 딛고 드디어 협업에 속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사업 종료 한 달 반 전쯤이었다. 각자의 진심과 재능을 쏟아 타인의 생각에 자기의 생각을 얹어 경계 없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언제나 기획을 통해 창작을 ‘매개’하기만 하던 나에게는 꽤 생경한 창작경험이었다. 초기에 겪던 리더예술인 증후군에서 벗어나 창작자 그룹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고,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에는 심지어 섭섭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당시의 창작물은 두 달 정도 웹툰으로 게시되었고, 프로젝트 종료 후에는 기관의 지원을 얻어 출판물과 원화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마지막이 된 첫 (창작)경험이었다. 지원을 포기한 이유는 사업에 대해 책임감과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전제에 진심으로 동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충대충’에 대한 유혹과 자기 황폐화는 한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사업에 장기간 타인들과 결속된다는 것은 겁나는 일이기도 했다. 조금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사업의 증표로써 남아 있는 것은 거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 권, 책 속에 담긴 그림과 글을 창작하며 생각하곤 했던 예술의 미래와 기획자 삶의 비전에 대한 부정적 진단들이다. 작가들과 함께 펴냈던 웹툰을 위해 직접 쓰고 그렸던 에피소드는 작품의 물질성과 예술노동이 거의 소멸된 가까운 미래에도 예술 복지를 꿈꾸는 예술인들에 대한 냉소적인 묘사와 그들을 상대로 AI 기반의 대리 지원서를 써준 대가로 거부(巨富)가 되어, 드디어 기획의 족쇄에서 벗어난 JR(주리, 웹툰 캐릭터)의 자전적 미래상이 담겨 있다. 여전히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상당히 사실적인 예견인지,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상상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공동창작에서 촉발된 상상의 조각들은 이후 또 다른 기획의 단초가 되어, 간혹 그때의 스토리를 떠올리곤 한다. 내가 일하는 터전인 예술계처럼 사회 변동과 제도에 기민하게 움직이는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2022년 봄, 나는 예술로 사업의 지원 서류를 검토하고, 동료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현장 모니터링과 컨설팅에 참여하고 있다. 입장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참여횟수에 비례하여 사례비를 받는 새로운 공식의 예술노동일 것이다. 놀라울 것 없이, 매순간 내가 이미 절절하게 경험한 바 있는 온갖 딜레마와 고민을 동료 예술가들의 선언과 실천, 결속과 해체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예술인을 비롯하여 사업의 축을 이루는 여러 기둥이 있다. 재단과 협업기관 그리고 사업과 관계 맺는 제3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각각의 관계조합 안에서 각양각색의 갈등과 보람의 양상, 가치 있거나 밋밋하거나 때로 민망한 결과물이 도출될 가능성이 공존한다. 그러나 예술로 사업은 예술적 수월성이나 결과물의 밀도를 잣대로 평가하는 종류의 사업은 아니다. 지난 9년간 조금이라도 가시화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재단과 작가 간의 신뢰문제, 기관과 작가 간에 이뤄지는 협업의 본질을 둘러싼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애써 들여다보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보고 서류와 기록사진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사업의 최종적 ‘딜리버리’는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일까. 적시에 사업의 성과를 계량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눈앞의 모니터와 관계 맺는 동안 많은 것들이 망각되는 마법이 일어나곤 한다.
10년째에 접어든다고 사업의 본말이 뒤바뀌거나 새로운 평가지표가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여자들이 제도의 허점과 장점을 곡예하듯 이용하는 순간, 기관들은 어쩔 수 없이 능동적 감시자가 되고, 기관이 수동적인 관리자가 되는 순간, 참여자들은 표면적인 기준에 맞춰 적당한 수행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장기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새롭게 유입되는 협업기관과 예술인들을 위한 명료하고 섬세한 가이드, 풍부한 사례공유, 참여자를 위한 상담제도와 같은 가능한 것들을 차근차근 적용해가면서 제도를 예술적 차원으로 세공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직 상호 신뢰관계 안에서만 예술인과 예술인, 예술인과 협업기관 모두 제도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수정해 나가고, 책임감 있는 참여를 진지하게 고민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도는 예술이 될 수 없고, 예술 또한 제도로 설명될 수 없다. 다만, 서로가 적극적으로 상호 수렴하는 반경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