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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예술인복지제도 개선을 위한 자문을 구하고 예술현장과의 소통을 통한 협치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예술인복지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술인복지위원회는 정책현장소통소위원회, 공정예술생태소위원회, 예술인생활안정소위원회, 사회보험확대소위원회까지 총 4개의 소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소위원회는 정책전문가 및 현장 예술인을 포함하여, 예술인복지에 있어 선제적으로 이슈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예술가로 살기 위한 조건’이라는 문장 내에는 ‘건강하다’라는 형용사와 상태라는 명사, 그리고 ‘어떻게’라는 부사가 이리저리 얽혀 있다. 복잡한 구성만큼 이들 품사는 예술가들 앞에 놓인 물리적인 상황과 환경, 이유 등의 보다 본질적이고 내외적인 문제를 포괄한다.
‘건강하다’라는 표현에 있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건 정신과 신체의 무탈함이다. 예술가 역시 인간이고, 모든 예술의 발원은 예술가 자신에게 있으므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은 매우 중요하다. 몸이 아프면 예술행위는 불가능하며, 정신이 절망과 좌절,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면 몸도 괴로워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건강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가리킨다. 이 조화로움이 효과적으로 발현될 때 비로소 예술활동도 지속할 수 있다. 예술 탄생의 시작과 종착지 역시 건강하다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육신과 정신이 제아무리 건강한들 예술가를 둘러싼 ‘예술 환경’이 병약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건강한 예술가로 살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주체인 ‘나’의 건강함 못지않게 환경 또한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예술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다. 예술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한량’(閑良)에 준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예술가들이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이자 예술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실질적인 위협이다. 예술가들은 운명까지 자본주의적일 것이라 여기지는 않더라도 예술이 철저히 자본주의의 도구적 논리에 지배되는 상황 앞에선 고민이 깊다.
예술의 도구성은 수입과도 직결된다. 민생고1) 문제와도 관계가 깊다. 부르주아 품에서의 성장에 반감을 지닌 미적 태도를 유지하지만 생활인이라는 현실과 직면하면 그들이 내놓는 몇 푼의 돈인들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 외면은 곧 민생고 해결의 요원함과 맞닿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예술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낮은 수입에 따른 생활의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제 한 몸 거두지 못할 만큼 생활난에 시달리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활동 형태로 인해 일반 금융서비스2)로의 접근은 쉽지 않으며, 주거 불안은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면서 궁극적으론 국민 문화예술 향유에도 악영향3) 을 미치는 요소이다. 적은 작품발표의 기회, 사회보장제도의 아쉬움 등도 있다.
이 중에서도 예술인들이 겪는 민생고는 미적 신념을 무너뜨리고, 심적 체제의 붕괴를 가져온다. 견딜 만큼 견뎌보지만 어쩔 수 없이 부유층의 취미와 기호에 읍소하는 형식주의에 젖게 될 뿐더러 가장 치명적인 권력인 자본주의에 무릎 꿇음으로써 얻게 되는 예술의 허위성을 찬양하고 만다. 우리나라의 실력 있다는 예술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예술계를 멀리하거나 작업 내용이 변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다행히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건강한 예술 환경 조성 차원에서 ‘예술인생활안정자금(융자)사업’을 비롯한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씨앗/창작디딤돌)’4)을 시행하는 등 예술가들의 경제적, 직업적 어려움 개선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을 위한 특별융자가 운영되어 경제적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는 자신의 전공을 통한 일자리 창출, 대민 교류, 예술의 사회적 기여에도 일정부분 몫을 하고 있다.
다만 모든 사업이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일례로 재단 금융지원의 경우 ‘신용대출’로써, 언젠가는 갚아야 할 채무이다. 잠시 빌려주는 것일 뿐이니 경제적 곤란함을 이겨낼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볼 순 없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일반 은행권처럼 거래관계가 아닌 예술계 내 구성원으로 생각하기에 딱딱한 금융이라는 껍데기를 하고 있음에도 동일 공동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5)이밖에도 수정하거나 방향을 재고해야 할 사업들이 있다.
물론 재단은 예술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기준을 새롭게 적용한 금융지원방안과 사회보장정책6) 등을 고민하고 있다. 7) 예술의 특수성을 고려한 장기적 지원정책의 시행을 준비 중이며, 행정8) 과 예술의 상이한 논리를 매개할 인력 9) 및 기관의 전문화도 꾀하는 중이다. 특히 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 개발, 숙원인 예산의 독립성 확보 또한 2021년 중점 목표로 상정해 놓고 있다.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지만10) 이처럼 재단은 다양한 채널을 통한 의견수렴과 논의를 거쳐 예술계 구성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제도 정비 및 정책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예술가들 앞에 놓인 유무형의 한계를 보다 세밀하게 파악하여 ‘예술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명료히 이식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과제를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가들이 피부로 느끼는 한계는 예술계나 관계 기관 내부의 논의11) 만으론 극복할 수 없다. 예술인들의 신분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낱 꿈에 머문다. 다시 말해 동시대 담론과 예술향유를 제공하는 예술가들을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며, 열악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창작환경 개선에 함께하는 국민의 지지야말로 건강한 예술 환경 조성에 있어 우선되어야 할 조건이자 건강한 예술가로 살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라는 것이다.12)
예술은 공공의 삶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예술가들의 미학적 성취와 실험의 성과는 결국 사회로 돌아온다. 만약 우리 사회가 ‘건강한 예술가로 살기 위한 조건’들을 허용한다면, 그들은 우리 사회에 놓인 여러 식민성에 대항하고 투쟁할 것이다.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인 노예화와 착취의 권력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할 것이며 새롭고 유의미한 모더니티(Modernity)13) 를 생성할 것이다. 그것은 미적 민주화를 넘어 동시대인들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삶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일이다.
1) 이는 문화예술인들의 연평균 수입은 대략 약 1,200만 원 정도라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실태조사가 잘 증명한다. 연소득 500만원 미만도 56.2%에 달했다. 2020년인들 획기적으로 나아졌을 리가 없다. 코로나19로 국민 모두 고통 속에 살아야 했으니까.
2) 금융지원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예술인의 생활기반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정책 개발, 공연‧전시 기회의 확대와 예술인 창작공간 지원 외에도 ‘건강한 예술 환경 조성’에 필요한 요소는 많다. 경력단절 예술인을 어떻게 다시 무대로 복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재교육의 문제에서부터 정신노동 압박이 심한 예술가들의 직업적 특수성을 고려한 심리 및 법적 상담 서비스 확대, 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 도입, 공적연금을 비롯한 예술인 사회보험 확장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게 들여다봐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혜성‧단발성 지원을 넘어선 환류구조 구축은 건강한 예술 환경에 반드시 요구되는 주요 조건이다.
3) 왜냐하면 작품 생산과 발표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4)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은 신진예술인들의 예술 창작활동 준비에 따른 지원을 통한 전문 문화예술 생태계로의 진입 및 자생력 확보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신진예술인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씨앗’과, 2015년 도입 이후 예술인의 예술활동 지속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주목받아 온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로 나뉜다. 각각 200만원과 300만원이라는 금액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지만 예술 외적인 요인으로 예술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5) 다만 채무 연체에 따른 도덕적 해이에 관한 문제는 다 같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아무리 일반 금융구조와 다르다 하더라도 어쨌든 대출이기에 만기가 도래하면 상환을 해야 하지만,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추심을 하거나 독촉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럴수록 해당 제도가 존속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상환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작가들도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제도란 한 번 만들기는 어려워도 사라지는 건 순간이다.
6) 우리나라 사회보장 체계는 근로자 중심주의로 설계되어 있다. 때문에 근로형태가 불안정한 예술인은 배제되는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7) 예를 들어 자산조사 규정에 부합해야 지원이 가능해 사실상 예술인 스스로 가난함을 증명하여야 하는 구조였던 ‘창작준비금’의 경우 소득 및 자산 중심의 선발방식을 개선해 예술활동 내용을 심사기준에 반영, 강화하고 선정 기준 내에서 ‘소득인정액을 통한 선발’과 ‘예술활동 내용 심사 등을 통한 선발’로 구분해 전문예술인들에 대한 혜택을 보다 견고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나아가 급여상향을 비롯해 장애예술인 쿼터제 시행 및 심사위원으로 장애예술인을 포함시키는 것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8) 건강한 예술 환경을 가로막는 요소에는 행정이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문화예술행정은 일반행정의 방식과 거의 같다. 대체로 예술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전문성 부재로 예술의 깊이를 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행정기관은 예산이라는 권력을 쥔 채 예술가들을 관리하고, 담당자들은 민원 없는 안전성을 추구한 나머지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저해하기 일쑤다. 더구나 일방적이고 지나치게 세세하며 경직된 행정절차는 예술가를 익숙한 방법론에 길들이는 원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실패했더라도 책임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능동적 사고를 지닌다.
9)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야말로 ‘복지’가 필요한 기관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예산과 상당한 양의 업무 대비 상근인원이라야 고작 40여명을 웃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일부 지자체 광역문화재단과 비교할 때 최대 1/5 수준이다.
10) 예술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기준을 새롭게 적용하려면 ‘특수성’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기재부나 행안부를 이해시키는 것부터 녹록치 않은 관문이다.
11) 솔직히 말하자면 예술계 내에서의 논의란 것도 때론 형식적 수사에 지나지 않으며 명목상의 자부심만을 상승시킨다. 한마디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필자는 곧잘 느낀다. 누군가는 그럴 때마다 쓴소리를 하지만 기관은 곧잘 고치거나 수정하는 대신 배척을 택한다.
12) 예술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한낱 이상이라는 것이다.
13)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가 평론 《근대 생활의 화가》(1863)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현재의 특수성에 대한 고조된 감수성, 미래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믿음 등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