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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

20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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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결국, 문제는 법이다
- 공생(예술 공공성과 예술인 생존권의 조화)을 위하여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 前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

“예술인도 노동자다!” 이 구호를 외쳤던 10년 전만 해도 ‘예술과 노동’이라는 조합이 낯설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어 다행이다. 이렇게 강산은 변했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인 현실은 거의 그대로다. 음악과 영화를 비롯하여 한국 문화산업의 성장으로 매출액과 수출액이 천문학적 수치로 커져 왔지만, 그 환경 아래서 일해온 예술 노동자들의 가슴 속 소리 없는 아우성 또한 커져 왔다.

상당수 문화예술계 종사자와 예술인들이 본업과 무관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작가와 예술인, 노동자에게 불공정계약과 부당행위 그리고 열정 착취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종 디자인처럼 예술로도, 노동으로도 정당하게 인정받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작업도 있다.

한편에선 대기업 자본이 문화예술계를 접수하고 있다. 대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다른 산업계와 마찬가지로 폐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회공헌활동과 문화마케팅을 연계하여 기업선전과 상품광고 효과를 노리는 기법은 오래되었고, 중소규모 기존활동과 ‘조인’하는 방식이라든가 공헌시설 운영과 같은 역할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자본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익이 작아지면 철수한다. 자금 부족과 편중에 시달려온 문화예술동네에 자본 유입은 당장 유용한 해법으로 보이겠지만 어느 분야건 대기업 자본으로 문제가 해결된 사례는 없다.

정치는 어떠할까.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이 발표하는 문화예술정책공약은 한류산업·문화강국과 같은 시장 이데올로기를 반영해왔으며, 예술인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미루거나 과감하게 생략해버린다. 사업자 중심의 지원 계획과 향유자 대상의 정책 수립이 일반화되었다. 시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문화예술은 결과이고 창작·생산 환경 조성이 전제임에도 말이다. 결국 우리나라 문화정책들에는 공통점이 생겼다. 모두를 위한 정책을 만들려다 누구를 위한 정책도 아니게 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실마리가 나온다

문화산업계는 아직도 장르별로 존재하는 ‘나쁜 관습’이 만든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낙후된 문화산업의 제반 조건들이 완비되어야 예술노동의 여건도 완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낙후된 것이다. 그럼에도 수년 전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 병합심사 중에 “계약서 제출 요구는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거나 “표준계약서 사용 강제는 자유로운 예술 활동 저해 및 사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비판적 소지가 있으며, 계약 당사자 간 다양한 계약 형태를 반영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1)는 의견을 무려 전문위원이 제기하는 현실이다.

신분과 처우 그리고 복지 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생산(자)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산업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동직종별 세대화의 진행으로 생산직 등이 중년 이상의 노동자로 고착된 반면, 청년세대 중 상당수는 문화산업 등으로 진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산업 내에도 내부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으며, 체계화되지 못한 전근대적 잔재들이 가득하다. 해법은 고용불안과 불명확한 노동관계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임금 체불의 일상화를 깨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비정규 불안정노동과 간접고용, 특수고용 문제의 관건들이다. 다시 말해 예술노동은 비정규불안정 노동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해결을 위해선 노동문제를 풀어야 하며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실마리가 나온다.

물론 예술인은 보다 특수한 상황에 있기도 하다. 한국적 상황 때문인지, 예술인 복지와 지원 그리고 투자를 뒤섞는 경우가 많다. 혼동해선 안 된다. 복지는 모든 구성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안전망이지 봉사와 기여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또 재원을 투입한 만큼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 또한 복지와 구별되어야 한다. 여러 개정안을 심의하여 개정한 『예술인 복지법』 역시 예술인 권익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긴 했으나-재단설립과 운영에 관한 것에 집중되고-노동자 의제(예술 노동자로서의 권익)를 건너뜀으로써 근본문제를 놓친 면이 있다.

구체적인 해법은 현실에 맞는 단서조항들을 기존 법체계 안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산재보험으로만 좁혀서 예를 들면, 건설일용노동자에게는 산업특성상 부분적인 산재보험료를 징수하면서 전면적인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있고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보험모집인, 골프장경기보조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산재보험특례가입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보장체계 포섭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 역시 노동자성 인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예술을 말하며 산업을, 예술을 말하며 노동을

‘일하는 예술가’란 말은 여전히 생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일하지 않고 어떻게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하지 않고 자동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신통력의 소유자들이라도 있는가? 더구나 예술적 산물은 사회자산이다. 자신과 벌이만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는 물론, 자기 사후의 시대와 세대를 위한 생산에 몰두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그들에게 수혜 입지 않은 자가 있는가?

예술인, 문화산업 종사자에게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산업의 안정 또한 가능하지 않다. 문화산업의 광범위한 후진성과 반노동성의 교정, 종사자들의 각성과 조직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예술인복지체계의 확립과 노동자성의 강조를 통한 『예술인 복지법』의 개선은 ‘을(乙)을 위한 제도의 개선’과 ‘청년일자리 확충’ 그리고 ‘복지의 확대’라는 시대의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고용이 최선·최종의 목표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는 과정으로 복지를 사고하는 생산성 중심의 사회투자국가 개념보다는, 구조적 문제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성원을 위한 사회안전망 제공이 국가의 책무라는 사회복지국가 개념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이상이 예술을 말하며 산업을, 예술을 말하며 노동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1)국회사무처, 2013년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 관련 법안심사 녹취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