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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6 2018. 8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칼럼 안태호 작가·기획자

공동체, 노년, 창의성, 그리고 예술

2018. 6
공동체, 노년, 창의성, 그리고 예술

우리는 공동체가 발휘한 슬기와 지혜의 리스트들을 여럿 가지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한 수많은 전통사회에 대한 상찬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언젠가 안동 인근의 한 마을에서 마을조사를 하다 기우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이 마을의 기우제는 세 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첫 번째는 마을 인근의 산 위에 올라가 연기를 피우는 것이다. 대기를 자극하여 비가 오게 만든다는 전략이니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동안 비가 안 오면 두 번째 의례가 펼쳐진다. 마을의 여성들이 모두 인근의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간다. 산 위에 있는 너럭바위에 가져간 닭의 머리를 쳐서 피를 쏟는다. 이때, 특히 달거리하는 여성은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늘이 피를 보고 노하셔서 비를 내린다는 취지라는데, 지금의 관점으로는 좀 불쾌할 이야기다. 그 후에도 비가 안 오면 마지막으로 기우제가 열린다. 마을 인근 낙동강 상류에서 가장 깊은 소에 배를 띄우고 용 모양의 떡을 빠뜨리는 거다. 떡은 푸른색으로 칠을 하고, 배 위에서는 풍물을 치고 물가에는 집 모형을 만들어 둔다. 물을 관장하는 용신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소원의 표현이다. 감탄은 여기부터였다. 이야기하던 마을 어르신은 슬쩍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근데, 그쯤 하면 비가 안 올 수가 없어…”

아… 심오한 깨달음의 순간이다. 비가 올 때까지 진행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우제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공동체가 함께 고통을 견디며 예술을 활용하는 방식을 나는 그날 배웠다. 사실은 인류의 존재 자체가 인류의 창의성을 증명하는 것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동물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사람의 상황대응과 일머리는 유독 빼어났고, 그것은 인류문명이란 거대한 현재를 일궈내는 데 이르렀다.

물론, 우리가 지금 노년의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이 ‘창의’는, 초기 인류가 간난신고를 겪던 시절 상황을 돌파하던 그 창의와는 맥락과 상황이 무척 다르다. 노년은 자신의 존재증명을 요구받고 있다. 은퇴자들, 노인들은 평생 자신들을 지탱해 온 가치와 관계가 흔들리는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새로운 가치와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란 문제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노년은 축복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평균·기대수명이 짧은 세계에서 다른 이보다 운 좋게 오래 살아남았다는 개인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노인은 시간을 건너 공동체의 지혜를 담지한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노인에게서 공동체가 위기를 극복한 노하우들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통찰력에 기대어 새로운 문제들의 해법을 찾아 나가곤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은 갔다. 비교적 작은 사회 안에서 만들어진 공동체의 창의성은 복잡해진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지식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문자로, 영상으로, 시스템으로 학습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노년은 이제 생산성에 보탬이 되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존재, 젊은이들에게 짐이 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모종의 서류를 검토하다 놀라운 통계를 발견했다. 100세 이상 노인의 숫자가 1만 7천 명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100살 넘는 사람은 기네스북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고령화가 어떤 수치보다 부쩍 눈앞에 육박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제 40대 초반인 나는 사고를 당하거나 몸을 혹사시켜 몹쓸 병을 얻지 않는 이상 100세 언저리까지는 무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때, 내 삶에는 어떤 보람과 즐거움이 남아있을까. 생각하면 아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0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게 직간접적으로 확인되는 요즘이지만, 생이 길어진다는 것이 마냥 축복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건강과 빈곤이 가장 근본요인으로 잠복해 있다.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은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처럼 언젠가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기도 한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순간(이게 저 유명한 특이점, singularity다. 커즈와일은 2045년을 특이점에 도달하는 시기로 특정한다) 이후에는 문자 그대로의 ‘영생’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그는 그 시점까지 살아있기 위해 하루 100알의 영양제를 먹고 있다.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캐너, 광학문자 인식기(OCR), 신디사이저 등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이자 미래학자로, 창의라는 말에 가장 바짝 다가선 인간 중 한 명이다.

창의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상황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이야기한다면, 예술 역시 창의의 단짝 개념이 될 것이다. 옥인 콜렉티브(Okin Collective: 2009년 서울 종로구 옥인아파트 철거를 계기로 결성된 작가 그룹)의 2017년 작 ‘황금의 집(Casa d’Or)’은 제주 원도심의 까사돌이라는 한 커피숍과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운영자인 이용희 원장은 제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던 제주도립병원의 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사람이다. 그가 은퇴 이후를 고민하며 소일거리로 찾은 것이 예술이었다.

몸이 약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할 수 있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육체적 부담은 덜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예술밖엔 없더라고 그는 술회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80을 바라보는 그의 ‘젊은 정신’과 태도에 감탄하게 된다. 까사돌은 그가 사람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영화 등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낡아가는 도시와 함께 세월을 통과해 온 사람들이 예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를 꾸려가는 모습은 늙음에 대해 다양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창의적 노년과 예술이라고 하면,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떠오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꼽히는 그는 한 기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카잘스 선생님,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95세 나이임에도 여전히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답변. “왜냐하면 내 연주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노동과 육체노동을 구분하지 않았던 그다운 대답이다. 그는 스스로 육체노동자임을 자처한다.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그가 94세의 나이에 유엔 총회에서 공연하며 했다는 말도 인구에 회자된다. 카탈로니아 민요를 첼로에 맞춰 편곡한 ‘새의 노래’를 연주하며, “카탈로니아 새들은 ‘피스(Peace), 피스(Peace)’하고 웁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파시즘 독재에 항거해 고향을 떠나 한동안 연주 활동마저 중단할 만큼 불의에 맞서는 자유정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어떤 지평은 노년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울림을 남긴다. 예술가 이전에 육체의 가능성과 몸을 사용하는 노동을 존중하는 사람, 정치적 불의를 회피하지 않는 시민, 거장이라는 칭호에 안주하지 않는 깨어있는 정신. 예술이 그렇듯, 늙음도 결국 하나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안태호 작가·기획자
  • 안태호 작가·기획자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을 포기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메일 redanth22@gmail.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taeho.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