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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2017. 4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칼럼 성악가 허성은

유럽 클래식 현장 속의 한국음악인

2017. 4
유럽 클래식 현장 속의 한국음악인

1999년 12월, 세기말에 한국을 떠나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곳 스위스에 정착하게 되었다. 클래식의 본토인 유럽에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온 내가 이루어야 할 첫 번째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러 국립음대에 입학해 학생이라는 신분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이런 언급이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외국인인 내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체류를 위한 합법적 신분 획득이었다.

유럽의 학제는 미국의 대학제도를 따르고 있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모든 대학이 국립대학으로, 교육비를 전액 국가가 부담하고 있으며 학생은 전혀 학비를 내지 않거나 한 학기에 100만 원도 못 미치는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 상당 부분 대학생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기업 형태의 한국대학이나 미국대학은 학생 한 명 한 명이 그들의 교육 콘텐츠를 사는 소비자와 같다면, 유럽대학에서 학생은 전적으로 국가가 투자하여 생산해내는 상품, 즉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한 학생당 투자되는 세금이 1년에 2만 유로에 육박한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투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 분위기는 미국이나 한국과는 사뭇 달라진다. 한국이 인구 5천만에 60개가 훌쩍 넘는 음악대학당 매년 적게는 50명, 많게는 약 200명의 신입생을 뽑는 데 반해 인구 8천만의 독일은 전국 22개의 음악대학이 있고, 오스트리아는 4개, 스위스는 11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전공에 따라 많게는 7~8명 적게는 1명을 선발하거나 아예 뽑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생 한 명당 엄청난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 유럽의 교육상황에서는 그만큼 선발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 입시 과정에 들어가 보면 전쟁을 방불케 한다. 2000년 당시 내가 독일에서 입시를 치렀을 때 성악과만 250명 이상의 지원자가 있었고 그중에 200명 이상이 한국인이었으며, 합격자는 석사 2명에 학사 5명이었다. 합격자 중 한국인은 3명이었고, 석사시험 합격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대부분 한국에서 학사를 졸업한 대졸자들이 지원자인 것을 감안하면 석사 입시는 거의 100:1의 경쟁률이었다. 최장 2년인 어학 비자로 독일로 들어온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그 안에 이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매년 약 300명 이상의 한국 성악도들은 독일 전국 22개의 대학을 순회하며 입시 전쟁을 치르게 되고 합격자가 많지 않다보니 그나마도 3분의 2 이상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자신을 받아줄 다른 나라, 다른 대학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잔인한 현실은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유학생들의 최종 목표는 크게 두 갈래도 나누어진다. 하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이나 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하기 위한 자격조건으로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고, 또 다른 부류는 현지에서 공부하고 유럽 클래식 현장에 발붙여 음악인으로서 정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현지에서 취직과 체류, 그 어느 것도 보장된 바가 없기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갈 때를 대비해 전자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높은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를 몸으로 부딪치며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학위 취득이라는 목표를 이룬 유학생들은 한국으로 귀향하게 되고, 나머지 유럽에 남고자 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합법적 체류, 즉 비자문제 해결을 위한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외국인으로서 프리랜서 연주자 활동으로는 비자 해결뿐 아니라 생계유지가 거의 불가능하다보니 이것이 해결되는 오페라 극장이나 방송합창단,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위한 오디션이라는 두 번째 전쟁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일 년 내내 오페라를 비롯한 무대예술만 공연되는 국립극장들은 클래식 최대의 고용시장이다. 이러한 상설 오페라 극장들이 독일에는 100개가 넘을 만큼 압도적으로 많고, 오스트리아에 약 12개, 스위스에는 약 6개가 있다.

오페라 극장들은 하나의 기업과 같아서 주역가수뿐 아니라 합창단, 오케스트라, 무용단, 지휘자를 비롯한 음악감독, 무대장치, 의상, 조명 등을 담당하는 기술자들까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한 인력들로 고용되어 1년 내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또 몇몇 계약직을 제외한 인력들에게는 체류허가는 물론 평생고용과 연금이 보장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앞서 박수갈채를 받고 빛나는 위치에 서 있는 오페라 가수는 정규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페라 가수나 솔로 연주자가 직업으로 각광받았다면 지금은 평생고용이 보장되는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를 더 선호한다.

오페라 극장들이 고용보장의 기업 형태로 일 년 내내 돌아가고 있다고는 하나, 이 독일어권 클래식 시장의 미래가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오페라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많은 인력과 무대장치, 의상 등을 뒷받침할 엄청난 재정이 필요한데 관객들의 입장료로 이를 채우기는 턱없이 부족해서 국가의 문화 육성을 위한 재정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유지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작년까지 적지 않은 숫자의 독일 소도시 오페라 극장들이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았고, 앞으로 문을 닫을 예정인 극장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무대를 간소화하고 솔로가수들의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며, 갓 클래식 시장에 나와 임금이 낮은 젊은 성악가들을 2년 계약직으로 고용해 조역으로 출연시키고, 2년이 지난 후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또 새로운 젊은 가수들을 찾는 냉혹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숙련되고 무대경험이 많은 오페라가수들조차 재계약이 되지 않아 또다시 인력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티켓파워를 가진 몇몇 주연급 성악가들만 오페라 공연당 높은 출연료를 보장받으며 전 유럽과 세계를 돌며 연주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의 현실이 이러하니 한국과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소득 불균형과 상위 1% 승자 독식은 어느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에 상응하는 더 높은 수준의 기능과 예술성을 갖추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예술인들의 노력만을 요구하기에는 좁고 상업성을 잃은 클래식 시장의 현실은 암담하다. 찰나의 감정과 말초적인 대중음악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에게 지겹고 어려워진, 대중성을 잃은 난해한 마니아의 음악으로 낙인찍힌 클래식은 상위 1%의 전문성을 가지고도 생계를 해결하기 힘든 장르가 되었다. 이러다 시장성을 잃은 과거의 유산으로 남게 되는 건 아닐지 때때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비정한 현실을 뚫고 한국의 음악인들은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 오페라 극장에 포진하여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유럽 극장 무대에서 한국 음악인을 최소 한 명, 많게는 기십 명을 찾아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한국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수출했다면, 지금은 음악가를 수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클래식은 말 그대로 ‘고전’이다. 고전은 끊어지거나 소멸되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다. 그만큼 시대를 초월해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어느 시대든 어느 누군가에 의해 사랑받고 보존될 것이라는 뜻이다. 나 또한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비정한 시장경제 속에서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대중성을 확보하고, 클래식 음악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피땀과 인생을 바친 클래식 연주자들이 설 무대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절실하게 질문하게 된다.

  • 허성은(성악가)
  • 허성은(성악가) 2004 독일 Essen Folkwang Hochschule Musik Theater Diplom
    2008 오스트리아 Kunst Uni. Graz Master Konzertgesang, Master Gesang
    현재 스위스 베른 거주
    Vokal Ensemble BeCant 단원
    콘서트 솔리스트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