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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야말로 가장 트렌디해야 된다며 ‘전통’이라는 단어의 재해석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국악계의 놀 줄 아는 이가 있다. ‘경기민요’라는 국한된 장르를 초월해 다양하게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시대의 멀티플레이어, 이희문 이수자를 만났다. 그 앞에 붙은 숱한 닉네임 중 가장 애정한다는 ‘B급 소리꾼’으로 지칭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통소리, 경기민요의 그 맛과 멋을 그릴 줄 아는 트렌디한 그와 함께해보자.
이희문X프렐류드X놈놈 〈한국남자〉
수식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고, 한편으론 부담스럽다. 누가 시키고 등을 떠밀어서 해온 활동이 아니다. 그저 내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고 발버둥 쳐온 시간 속에 붙여진 별칭인데,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B급은 A급보다 두려움 없이 놀 수 있잖은가, 거침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B급, 그래서 좋다.
무대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즐겁고 신나야 그 에너지가 대중에게 전달되고, 그런 대중이 받은 에너지를 내가 돌려받는 과정이 되풀이되어야 한다. 한 공연이나 무대에서 서로가 클라이맥스로 가길 원하기에 대중,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공연자나 연주자 혼자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 공감의 힘이 열광으로 표출되는 거 같다.
외형적으로 치장하고 무대에서 흥에 취해 놀아도 소리만은 올곧게 낸다. 레게, 락, 재즈 등 다른 장르와 합주를 해도 민요를 부르는 내 소리만은 제대로 하고 있다.
경기민요는 경기소리의 여러 장르 중 하나다. 텍스트가 시어(詩語)로 되어 있어서 ‘곱씹을수록 좋아진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기소리의 음악적 성향은 화려하고 경쾌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애절하고 슬픈 내용이 많아서 아픔과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표현해놓은 유니크한 음악이다.
〈깊은舍廊(사랑)〉
글쎄, 전통음악 하시는 분들의 위상은 격상된 것 같다. 하지만 격상되었다는 것은 어려워졌다는 것이기도 해서, 그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이 된 듯하다. 지금은 보기 힘든 처마 밑 제비처럼 민요도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요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던 쉬운 음악이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통이란 단어의 개념은, 일반인들과 다른 거 같다. 내게는 ‘현재진행형’이고 동시대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통이라 불리는 것은 과거의 현재에 가장 힙하거나 트렌디하거나 유행했던 것일 텐데, 그것이 지금 현재에도 문화를 선도하는 것이 되었을 때 미래에도 살아남아서 전통으로 불릴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힙하거나 트렌디하게 동시대성을 갖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뒤늦은 감은 있었으나 전통음악의 기본소양을 충실히 갈고 닦은 시간을 깔고, 전통이라는 무기를 이용하여 동시대를 살면서 함께 누렸던 다양한 음악들과 친해 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융합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감동은 그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깊은사랑(舍廊) 中 민요삼천리〉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까지 받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과 어울려야 하다 보니, 쉽지 않은 일들도 많지만 받아들여야 할 몫인 거 같다.
민요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결핍을 느끼며 살았던 거 같은데 지금의 소리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동료나 친구들에 비해 오히려 환경적 자산이자 혜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주위 전통예술 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을 보면 안녕하지 못하다. 그래도 열심히들 한다. 여러 콘텐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연주하고 공연하며 살아간다.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창구,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대중의 호응과 무대가 있다면 좀 더 안정적이고 안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