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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

20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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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이희문 경기민요 이수자

경기민요 하는 전통예술인,
Call me by ‘B급 소리꾼’

이희문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전통이야말로 가장 트렌디해야 된다며 ‘전통’이라는 단어의 재해석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국악계의 놀 줄 아는 이가 있다. ‘경기민요’라는 국한된 장르를 초월해 다양하게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시대의 멀티플레이어, 이희문 이수자를 만났다. 그 앞에 붙은 숱한 닉네임 중 가장 애정한다는 ‘B급 소리꾼’으로 지칭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통소리, 경기민요의 그 맛과 멋을 그릴 줄 아는 트렌디한 그와 함께해보자.

이희문X프렐류드X놈놈 〈한국남자〉

범상치 않은 차림새, 갈래가 모호한 목소리, 익살스러운 표정…, 한 인물에게서 풍겨 나오는 다양성은 우리 전통예술계로서는 큰 밑천이자 자랑이지 않을까. 연말인 데다 공연을 앞둔 터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희문 이수자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이희문컴퍼니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른다.

국악계 이단아, B급 소리꾼, 조선 아이돌, 국악 천재, 세계적인 난봉꾼 등 많은 수식어가 있다. 이중 ‘B급 소리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식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고, 한편으론 부담스럽다. 누가 시키고 등을 떠밀어서 해온 활동이 아니다. 그저 내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고 발버둥 쳐온 시간 속에 붙여진 별칭인데,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B급은 A급보다 두려움 없이 놀 수 있잖은가, 거침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B급, 그래서 좋다.

B급의 느낌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미국 방송 영상을 통해서였다. 외국인과 대중이 당신의 음악과 공연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무대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즐겁고 신나야 그 에너지가 대중에게 전달되고, 그런 대중이 받은 에너지를 내가 돌려받는 과정이 되풀이되어야 한다. 한 공연이나 무대에서 서로가 클라이맥스로 가길 원하기에 대중,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공연자나 연주자 혼자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 공감의 힘이 열광으로 표출되는 거 같다.

소리꾼 이희문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알려진 계기는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Tiny Desk Concert’에 출연한 영상 때문. 그가 결성한 민요록밴드 씽씽(Ssing Ssing)의 공연 영상 조회수가 250만(현재 427만) 뷰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펑키한 헤어와 도발적인 비주얼의 인물에 관심이 쏠렸고 그 주인공이 바로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이었다. 다양한 장르와 합주하며 자유롭게 선을 넘나들지만 그에게는 그만이 지키는 선이 있다.

경기민요 하는 소리꾼이지만 여러 장르와 협업하고 있다. 선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느낌이 드는데, 경기민요 이수자로서 지키는 것이 있는가?

외형적으로 치장하고 무대에서 흥에 취해 놀아도 소리만은 올곧게 낸다. 레게, 락, 재즈 등 다른 장르와 합주를 해도 민요를 부르는 내 소리만은 제대로 하고 있다.

다양성 속에 올곧게 지켜내고자 하는 경기민요 이수자로서의 정체성이 느껴진다. 그런 경기민요의 가장 큰 매력과 특징이라면 무엇인가?

경기민요는 경기소리의 여러 장르 중 하나다. 텍스트가 시어(詩語)로 되어 있어서 ‘곱씹을수록 좋아진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기소리의 음악적 성향은 화려하고 경쾌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애절하고 슬픈 내용이 많아서 아픔과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표현해놓은 유니크한 음악이다.

〈깊은舍廊(사랑)〉

그가 말하는 독특한 음악, 경기민요를 하게 된 원천은 자신보다 먼저 이 길을 걷고 있는 어머니 고주랑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리하는 걸 반대했고 어린 시절 결핍의 실체가 어머니라고 고백하지만 그 누구보다 어머니가 부르는 ‘노들강변’을 좋아한단다. “노들~강변에 봄버들 휘 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잊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어머니가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개인적으로 전통음악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예전엔 어떤 음악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전통음악 하시는 분들의 위상은 격상된 것 같다. 하지만 격상되었다는 것은 어려워졌다는 것이기도 해서, 그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이 된 듯하다. 지금은 보기 힘든 처마 밑 제비처럼 민요도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요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던 쉬운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기민요를 하는 전통예술인이자 무대 위 감각적인 아티스트로서 당신이 생각하는 전통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전통이란 단어의 개념은, 일반인들과 다른 거 같다. 내게는 ‘현재진행형’이고 동시대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통이라 불리는 것은 과거의 현재에 가장 힙하거나 트렌디하거나 유행했던 것일 텐데, 그것이 지금 현재에도 문화를 선도하는 것이 되었을 때 미래에도 살아남아서 전통으로 불릴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힙하거나 트렌디하게 동시대성을 갖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인터뷰에서 “나의 행보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대중의 사랑이 덤으로 따라왔다”고 했다. 재즈, 락, 레게 등 다양한 대중음악과 융합하는 이유도 정체성 찾기의 연장선인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뒤늦은 감은 있었으나 전통음악의 기본소양을 충실히 갈고 닦은 시간을 깔고, 전통이라는 무기를 이용하여 동시대를 살면서 함께 누렸던 다양한 음악들과 친해 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융합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감동은 그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깊은사랑(舍廊) 中 민요삼천리〉

27세,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경기민요는 명창 이춘희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고, 현대무용가 안은미 선생과 함께는 흥과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무대를 경험했다. 경계 없이 다양한 음악을 펼치는 프로젝트 밴드 ‘씽씽’의 멤버로 활동했으며 꾸준히 전통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온 이희문. 갓과 도포를 벗으면 가발에 하이힐을 신고 무대를 장악하는 핫한 국악인이다.

소위 핫한 전통예술인이지만 음악적 고민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까지 받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과 어울려야 하다 보니, 쉽지 않은 일들도 많지만 받아들여야 할 몫인 거 같다.

예술활동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자신을 비롯해 전통예술 하는 친구나 동료들의 예술활동이나 삶이 안녕하다고 생각하는가?

민요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결핍을 느끼며 살았던 거 같은데 지금의 소리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동료나 친구들에 비해 오히려 환경적 자산이자 혜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주위 전통예술 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을 보면 안녕하지 못하다. 그래도 열심히들 한다. 여러 콘텐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연주하고 공연하며 살아간다.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창구,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대중의 호응과 무대가 있다면 좀 더 안정적이고 안녕하지 않을까.

경기민요 소리꾼으로, 이희문컴퍼니 대표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그에게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일까. 책임감이자 자신을 지켜내는 굳건한 버팀목이 아닐까. 다양한 장르와 자유롭게 합주하면서도 강단 있고 올곧은 정체성을 갖춘 B급 소리꾼, 가장 트렌디한 전통을 이어갈 줄 아는 이희문은 우리 시대 전통예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