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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6 2018. 8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집중 기획 100세 시대를 사는 예술인

삶과 함께 계속되는 예술

2018. 8

살아있는 한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년을 거부하고 예술활동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여러 요인을 힘들게 극복하면서 예술인들은 존재해왔다. 그러나 더는 개인의 극복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빈곤의 구조화와 젠더 차별 등 전문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데, 현재 지원 중인 정책에서 주요한 방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직업전환 프로그램

예술 장르 중 무용은 비교적 은퇴 시기가 빠르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2017년 진행한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용수의 은퇴 시기는 30대 후반에서 40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실제 국내에는 40대 이상 무용수들이 거의 없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현직에 있으면서 은퇴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조사상으로도 39.2%만이 은퇴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직업 활동을 준비하는 이유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어서’라는 답변이 35.7%로 가장 많았다. 프리랜서 고용 형태가 42.3%로 안정적인 수입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2007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재단,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이런 상황에 있는 무용수들을 지원한다. 은퇴 이후 활동을 위한 직업전환 지원(학비와 각종 아카데미 지원), 공연 중 발생한 상해에 대한 예방과 치료비 지원, 무용단과 무용수를 연결해주는 공개오디션(댄서스잡마켓)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07년 연습 중 부상으로 은퇴한 후 이곳에서 직업전환 프로그램 이수를 받은 고일안 씨는 국립발레단 발레리노에서 무용수 재활트레이너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일반 스포츠 재활과는 다른 무용수 재활은 고 씨에게 무용수로서 경험한 시간을 잘 살릴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른 은퇴에 막막한 무용수들에게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큰 힘이 된다고 고 씨는 말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원로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 의료비 지원사업, 예술인 자녀돌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2015년부터 원로예술인을 위한 창작준비금을 따로 지원하고 있다.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만 70세 이상, 예술 경력이 20년 이상인 원로예술인이 지원을 받게 된다. 90세 가까이 살았던 미켈란젤로가 말년에 “내게 10년이나 15년을 더 준다면 조각을 온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는 일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원로예술인이라고 해서 예술을 향한 열정이 쉽게 식거나 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오랜 편견이다. 한 원로문학가의 말처럼 “세월이 가져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예술 활동을 지속하길 원하는 예술인의 건강을 위해 재단은 의료비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로 경제적 부담을 겪고 있는 예술활동증명 완료 예술인을 대상으로 중증질환을 우선 지원한다. 입원비, 수술비, 검사비, 약제비, 재활치료비 등 의료비 중에서 건강보험이나 민감보험이 부담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예술인 본인이 부담하게 되는 의료비를 1인 최대 500만 원까지 지원한다.

또한, 예술인 자녀돌봄을 지원함으로써 예술인의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여성 예술인의 경우 예술 활동이 단절되기 쉽다. 평일 저녁과 주말을 막론하고 자녀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시간제 돌봄시설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예술인들에게는 무척 절실하다. 예술인 자녀 돌봄센터는 현재 예술인 밀집 지역인 대학로와 망원동 두 곳에서 운영 중이다.

반디돌봄센터 예봄센터(예술인자녀돌봄센터)
이용료 기본 1시간 500원(식사비 1,500원, 간식비 1,000원)
대상 24개월~10세 예술인(예술활동증명 절차 완료자) 자녀
※ 긴급한 경우나 형제자매가 함께 이용하는 경우, 11~13세도 이용가능
※ 24~36개월 유아 이용 시 사전 전화예약 필수
위치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길 5번지
아남아파트 상가 301동 106, 107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도보 10분~15분 거리)
서울시 마포구 방울내로11길 15-4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 5번출구 도보 2분 거리)
규모 32평형 (방3, 주방1, 화장실1) 54평 (1~2층, 방3, 주방1, 화장실2, 학부모 공간)
전화 02-741-0347 02-3143-1919
온라인 cafe.daum.net/bandicare cafe.naver.com/yebomcenter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산재보험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해 실효성을 높인 특별조치로 예술인 산재보험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보험료의 50~90%를 지원하는 이 제도는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을 대상으로 직업 예술활동 중 불의의 사고나 질병, 재해를 당했을 때 치료비를 포함한 요양·휴업·장해급여 등을 지원한다. 예술활동 중 상해 사고 발생 비율은 결코 낮지 않고, 100세 시대에는 전보다 예술활동 기간이 길어질 것이 예상되지만 예술인 산재보험 가입률은 현재 26% 정도에 머물고 있다. 예술인 산재보험은 이런 상황에서 예술인들에게 복지 안전망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적 보험이기 때문에 일반 상해보험에 비해 공공성이 높고 보장 혜택이 포괄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지원 대상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
보험가입 신청일 현재 보수를 목적을 직업 예술활동을 수행히며 서면계약을 체결한 예술인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대중예술(방송·대중음악 등)·국악·사진·건축·만화 등의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창작/실연/기술지원 등)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예술인 산재보험에 가입하여 1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예술인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활동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업무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
지원 금액 보험료 50% 지원 (본인부담금 9,850원~35,480원) *실연예술인의 보험료 지원 금액
신규가입자 90% 지원 (본인부담금 1,980원. 1등급 선택 시 6개월간)
- 1등급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한 신규가입자에게 첫 6개월 동안의 월보험료 90% 지원
(본인부담금 1,980원), 이후 50% 지원(본인부담금 9,850)
지원 방법 보험료 납부사실 확인 후 납부보험료 환급지원
- 홀수달 2개월치 보험료 지원금 통장입금
예) 1월, 2월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 → 3월 말 보험료 환급 지원
- 1등급 가입자 보험료 90%지원은 가입자별 1회에 한함
문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산재보험 안내 02-3668-0200, 0268
예술인산재보험의 거의 모든것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www.kawf.kr) 자료실
예술인 산재보험 FAQ 자료집 『예술인 산재보험의 거의 모든 것』

자료실 바로가기
산재보험 제도 홍보와 교육 함께 이뤄져야

세 살에 무용을 시작해서 대학까지 계속했다. 90학번이었는데 당시에는 무용수들이 부상을 당하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몸을 쓰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대한 이해나 교육이 부족했고, 심지어 사설학원에서는 몸의 쓰임을 잘못 가르치기도 했다.

부상을 당하면서 무용을 그만두게 되었다. 비교적 수월하게 예술경영 쪽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었던 건 평소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무용을 할 때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덕분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있는 한편 힘들게 재활을 하면서 무용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재활에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이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열정을 존중하지만 그들에게 만약 다른 가능성과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장르나 그 내부는 폐쇄적이겠지만 무용계도 그런 편이라서 학생들에게 기능적 실기 위주로만 교육한다. 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필요한 교육에는 무심하다. 산재보험이 뭔지, 특히 무용하는 사람에게 그 제도가 왜 절실한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채널에서는 산재보험 등 필요한 제도 홍보가 안 되고 있다. 이건 무용협회나 무용학과에서 즉, 관련 단체와 고등교육 영역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문화예술교육사 제도가 있지만 확실한 대안이 되진 않는다.

더불어 학생들에게 무용 이외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재단에서 정책 강조만이 아니라 예술 장르별, 세부적 전공별 복지 주력 부분이 달라야 함을 인지하고 예술인들의 정보 접근 기회를 다양화하길 바란다. 가령, 순수예술 무용 전공자는 신체에 대해 그나마 교육을 받지만, 비보이 같은 실용무용 전공자는 부상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는데다가 신체 교육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산재보험 제도를 알리고 정책으로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신체 기초 교육, 전공 외의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위한 타 직업군 대비 교육, 산재보험과 같은 사회적 제도 홍보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으로서의 보험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이 모든 게 함께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 송경희 아트크리에이티브 그룹 ‘행복한 상상’ 대표
    종로여성인력센터 문화기반 취창업 인력양성과정 교육기획 및 주강사
    서울시축제평가위원
    문화다양성 무지개다리사업 평가위원 및 컨설턴트

예술인이 원하는 다양한 정년을 살고, 정년 이후에도 행복할 수 있도록 센터나 재단의 지원이 한쪽을 든든히 받치고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예술인 개개인의 빛나는 의지가 있다. 100세 시대는 예술인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한편 예술인이 다른 일을 하는 제2의 삶을 상상하고 창조해낼 충분한 시간을 주기도 할 것이다. 또, 줄곧 다른 삶을 살다가 은퇴 후 예술인으로 새롭게 살아갈 선택 또한 가능할 수 있다. 늘어난 가능성과 선택지를 두고 스스로 원할 때 시작하고 원할 때 끝낼 예술인들에게 사회 단계별 연령 주기 같은 건 큰 의미가 없다. 예술을 시작하기 적절한 나이나 포기해야 할 나이도 따로 없다. 이 말이 늘 진실은 아닐지라도 진실에 가깝도록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일곱 번째 시집으로 변방의 불을 밝히다
  • 언어 이전의 별빛
시인 허만하(86) 씨가 시집 『언어 이전의 별빛』을 펴냈다. 시인 평생 일곱 번째 시집이다. 1957년 등단 후 경북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병리학 연구 의사와 시인으로 살았다. 1969년 첫 시집 『해조』를 출간하고 나서는 부산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혼자 썼다. 그는 평생 중앙인 서울과 거리를 두고 변방이라는 공간과 의식 속에 자신을 몰아넣고 늘 새롭고자 했다. 첫 시집 이후 33년 만에 펴낸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한국문단에서 명시집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살아온, 구순을 앞둔 시인의 시어는 명징하고 단호하다. “시인은 언어가 타고난 근원적인 고난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시인은 말하는 대신 자신의 시로 썼다. “쓰는 일이 운명에 대한 유일한 저항이 되는 한계까지” 쓰겠다는 시인의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퇴임 후 부부 동반 전시 열어 전시 사진 출처: 광주신세계갤러리

조각가 손연자 씨, 서양화가 최영훈 씨가 지난 4월 11년 만에 동반전시를 열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올해 일흔 둘을 맞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온 부부의 동반 전시 제목은 〈동행〉. 교육자 자리에서 퇴임 후 부부는 작업실 겸 야외 전시장인 ‘훈석원’을 마련해 매일 집과 그곳을 오가면서 소소한 전원생활을 누리는 한편 각자 작업을 해왔다. 인간 군상을 조각으로 만드는 손 작가는 전보다 다채로운 색상을 선보이는 10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정년 후 참 열심히 그렸다고 소감을 밝힌 최 작가는 감각적인 색채로 꽃과 나무, 다채로운 풍경 위주의 회화작품 18점을 내놓았다. 이번 전시는 부부가 생업을 그만두고 온전히 예술인으로서만 작업에 임하면서 그동안 이룬 예술적 성장을 세상 앞에 내보이는 의미가 있었다. 생업 은퇴와 동시에 본격화된 부부의 작업이 앞으로 얼마나 더 깊고 빛나게 될지, 아직 그들 앞에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뭉쳤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뭉쳤다 제공: 나우프로젝트

2016년 싱어송라이터 이한철 씨, ㈜한국 에자이, 우리마포복지관이 협력해 나우프로젝트 시니어밴드 오디션 ‘노년반격’을 진행했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은퇴 노인 모집에 총 30팀이 지원해 2팀이 선정되었는데 밴드 ‘바야흐로’는 그중 하나였다. 기타와 색소폰으로 이루어진 남성 듀오 밴드로, 색소폰을 연주해온 진효근 씨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오며 간간이 혼자 음악적 열정을 키워온 김철모 씨가 만났다. 진효근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색소폰을 연주하고 마산 관현악단을 거친 베테랑이지만 김철모 씨는 명예퇴직 후 꿈을 키우다 오디션에 참여한 케이스다. 둘은 앨범에 실릴 곡 창작을 위해 워크숍도 열었고, 앨범 출시까지 고박 4개월을 매달렸다. 음반 발매, 뮤직비디오 촬영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바야흐로’. 꿈과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어 행복하다는 그들은 예술로 인생 2막을 열고 자기 마음에 와닿는 걸 열정적으로 찾는 중이다.

경력 50년이 품은 연극영화의 발자취 한국 연극영화 발자취를 추억하는 모노드라마 출처: 성남아트센터

배우 권병길(72) 씨는 연극영화의 길에 들어선 지 50년이다. 1969년 데뷔해 꾸준히 활동한 노배우의 가슴엔 겹겹이 쌓여온 세월과 아름다운 추억이 숨 쉬고 있다. 연기 인생을 통해 한국 연극영화 발자취를 추억하는 작품 〈푸른 별의 노래〉는 올해 12월 15일, 16일 공연을 앞두고 있다. 폐허가 된 어느 극장의 분장실을 노배우가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극은, 다락방 정리를 하다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 것처럼 잊지 못할 사건들로 이뤄진다. 100년 세월을 넘나들며, 무성영화 변사부터 이해랑과 황철, 악극 전성기 시절의 배우가 등장,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배우들과의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예정이다.

이 외에도 평균 연령 70이 넘는 한국 재즈 1세대 신관웅(피아노), 임헌수(드럼), 김수열(색소폰), 최선배(트럼펫), 전성식(베이스), 김준(보컬) 씨가 매주 대학로에서 공연을 이어가는 등 정년을 훌쩍 넘겨 활동하는 예술인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노인’의 개념과 기준이 달라지고 있듯이, 100세가 넘어서까지 작업을 이어가는 예술인들을 더 자연스럽게 볼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더불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예술인으로 살아갈 꿈을 꾸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예술의 가능성은 더 오래, 더 길게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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