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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2017. 5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유에서 유』에 담은 시인 오은의 청년 세대를 향한 시선

“지속 가능한 삶이 먼저다”

2017. 5

소년의 말놀이로 주목을 받았던 첫 번째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이후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에 이르기까지 시인 오은도 여러 겹의 시간을 통과해왔다. 특유의 말놀이는 여전하지만, 놀이가 끝난 후의 쓸쓸함과 한층 어두워진 현실의 명암이 느껴지는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와 함께 그를 만났다. 글·사진 김지승   장소협찬 카페 파스텔, 위트 앤 시니컬

시인오은

그는 바쁘다. 작년 10월 직장을 그만두고 얼마간 쉴 계획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차례차례 큰 덩어리부터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해준다. 현재 그는 ‘스쿨 파스텔’의 대표이자, 수석 기획자다. 파스텔 뮤직에서 운영하는 스쿨 파스텔의 전체 기획부터 사실상 파스텔 뮤직과 관계되는 모든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지역 상권, 소상공인들과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과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과 연계해 진행하는 작가들과의 협업은 그가 가장 마음을 쓰는 일이다. 직장 다닐 때 들인 습관 그대로 시는 일요일마다 쓴다. 『유에서 유』도 일요일들의 시로 채웠다.

『유에서 유』를 읽었다. 어른이 된 것 같다(웃음)

그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첫 시집의 경우 유년기, 청소년기 화자가 많이 등장하고 실제로 그때 경험들에 비추어 시를 썼다. 두 번째 시집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의 경험이 담겨 있다. 늘 처해 있는 상황이 중요했던 것 같다. 『유에서 유』에 들어간 시를 쓸 때는 직장인 정체성이 굉장히 컸지만 마주해야 할 시대적 비극들이 연속적으로 찾아온 시기였다. 자연스레 주변 청년 세대들을 바라보게 됐다. 그동안은 관통한 시기이거나 관통하고 있는 시기를 담았다면, 세 번째 시집에는 관통하고 있는 시기에 더해 주변에서 이 시기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시선이 담긴 셈이다.

어려운 시기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청년 세대의 초상을 주로 어디에서 보고 느끼게 되나?

가깝게는 지인들이나 후배들의 삶에서 느낀다. 또 카페나 어떤 장소에서 그 세대들의 대화를 듣게 되기도 한다. 취업과 졸업 등의 이야기 끝은 늘 삭막하고 암울해진다. 유행처럼 번졌던,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그런 현실을 반영한다고 느꼈다. 한 명이 살아남는 이면에는 탈락되고, 잊히는 사람들이 다수다. 경쟁, 취업과 같은 현실과도 연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건 그런 느낌이었다.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럴 때 삶은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삶이 지탱되어야 다른 잉여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데 현재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삶에 활기를 넣어줄 수 있는 부분들이 아예 막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정서가 뒤덮고 있다.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가 아니야
떨어지다지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군가는 떨어졌다는 것이다
- 오은, ‘서바이벌’ 중에서

그래서인지 『유에서 유』 속 말놀이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이전 시집보다 어두웠다.

슬픈 걸 슬프게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말놀이는 놀이니까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지만 즐겁게 한바탕 웃고 나니 뭔가 짠한 거, 이상하게 뭔가 올라오는 거… 이런 게 더 슬프다.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몸짓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슬픔을 말하기 위해 요동치는 움직임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런 감정과 현실이 딱 맞아떨어진 게 이번 시집이 아닐까 한다. 대입하는 현실이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즐거운 말놀이 이후에 남는 것들은 슬플 수밖에 없다.

  • 시인오은
곁에서 본 청년 예술가들, 특히 글을 쓰는 청년들의 현실은 어떤가?

다들 힘들어한다. 일단 대학 졸업 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들이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회 자체가 없다. 문학 자체가 밥벌이까지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야 한다. 시인,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플러스알파는 될 수 있어도, 플러스알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 베이스가 되는 삶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상태에서 플러스알파는 힘이 되기 어렵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거나, 시를 쓰고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베이스가 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의 능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유용하지 않은 재주로 비춰진다. 워낙 상황이 어려우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밥이나 술 사주는 정도뿐이니까.

예술 강좌를 기획하며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느낀다. 데뷔하고 첫 책을 내기 전까지가 작가들에게는 굉장히 힘든 시기다. 청탁부터 독자들에게 노출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다. 내 경우, 청소년 캠프를 기획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젊은 예술가들을 청소년 멘토로 추천할 수 있다. 그런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가령, ‘위트 앤 시니컬’에서 시집이 아직 나오지 않은 시인 세 명의 시 낭독회와 합동 시집 발간을 한 적이 있다. 데뷔하고 처음 자신이 정말 시인처럼 느껴졌다는 말을 들었다. 갓 등단한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낭독회, 문학기행, 청소년 멘토링 등이 많아지면 그들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가능성을 갖게 된다. 문제는 그런 기회가 적고, 기회를 만드는 일은 개인이 하기 어렵다는 거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안 될 걸 알면서도 하는 일이란
몸과 마음을 다 주어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 오은, ‘졸업시즌’ 중에서

유에서 유 시인오은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이런 시선이 칼럼에 반영되기도 하나?

시선이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칼럼은 어렵게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학적 분석이나(그는 사회학 전공자다) 전문 지식을 활용하는 글은 나 말고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써 본 결과, 지금처럼 썼을 때 파급력이 제일 좋았다. 예전에 ‘나 좀 똑똑한 사람이야’ 느낌의 칼럼을 실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되니 나중에 와서 설명을 해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그렇다면 잘못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칼럼 눈높이는 어머니에게 맞춘다. 칼럼은 내용의 관련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쉬운 용어로, 불가피하면 용어 설명을 덧붙여서 쓴다. 시는 여러 개의 겹이 있는 글이라서 읽을 때마다 자극이 달라질 수 있는 장르라면, 칼럼은 읽자마자 메시지가 가닿아야 하는 글이다.

시로 쓸 것과 칼럼으로 쓸 것들을 미리 구분하는 편인가?

몇 년째 일요일을 글 쓰는 날로 정해놓고 쓰는데, 평소 메모해놓은 것들을 그날 보고 이게 시에 어울릴지, 칼럼에 더 잘 맞을지 결정한다. 단초가 될 만한 것, 말 한마디 같은 건 칼럼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시는 단어 하나, 장면 하나가 확장되는 식이다. 기록할 수 없었던,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상한 장면 같은 것들이 시가 된다. 그러니까 잡힐 듯 말 듯 한 것은 시로, 한 장의 사진이나 한 문장으로 붙박을 수 있는 건 칼럼으로 쓰는 것 같다. 요즘은 ‘사람’ 연작시를 쓰고 있다.

글을 쓸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나?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글 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게 된 것 같다. 대학교 때 단편영화를 만들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는데 직장 다니며 영화관을 두 번인가 가봤다. 글도 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야근도 해야 하니까.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가장 먼저 포기한 게 영화나 공연 보러 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가끔 이런저런 걸 왜 안 하고 사냐고 물어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 그건 핑계라고 하는데 정말 나처럼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하는 일도 많고, 다 잘하고 싶다 보니 스스로를 갉아먹는 존재로 혼자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웃음)

예술 강좌를 기획하면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

두 가지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하나가 ‘N명에게는 N개의 욕망이 있다’이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명의 욕망이 다 다르다. 그들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강의를 다양하게 늘리고 싶다. 매번 실험을 하고 있다. 다른 외부 강좌에는 없는 노랫말 쓰기 같은 경우도 그중 하나다. 쓴 노랫말을 가지고 뮤지션들과 협업해 싱글로 발매도 한다. 공간을 확장하면 더 많은 강좌들을 시작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건강한 강좌’다. 계약서에 성폭력, 차별 금지 조항이 있고,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갑과 을(갑은 ‘파랑’, 을은 ‘노랑’이라고 명시했다)이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강좌는 크게 ‘쓰고 만들고 그리고 누리다’로 이루어진다. 쓰고 만들고 그리는 일이 하나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강좌를 통해 내가 내 힘으로 유형 혹은 무형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모든 강좌의 목표다.

시인으로 살아오며 느낀 예술, 예술인을 보는 사회적 시선은 어땠나?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작가라고 하면 기인이거나 생활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퍼져있는 것 같다. 특히 시인에 대해서는. 시인으로서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 밝고 명랑한 시인도 있다는 것 즉, 다양한 시인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히려 악착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생활인이 된 다음에야 시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내일 내가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가 잘 써질 리 없다. 그런 절박함이 옛날에는 시를 쓰는 동력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생활이,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부러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시 쓰기기 때문에 더 값질 수 있다. 시간이 나서 하는 일은 취미고, 시간을 꾸역꾸역 내서 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거야말로 절박한 일이며 내게 그건 시 쓰기다.

끝으로, 예술인 복지와 관련해 생각하는 바나 예술인복지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예술 장르든 지속되려면 향유자들이 많아야 한다. 향유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면 좋겠지만 이 또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청년층에게는 열려 있지 않다. 스쿨 파스텔의 주 수강층도 삶이 비교적 안정적인 30대 직장인이다. 20대 청년들에게 여러 예술 강좌 수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 말했다시피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캠프 등을 기획하는 것도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다.

가장 낮게는 ‘개인의 건강한 상태’, 가장 높게는 ‘안락한 생활’을 아우르는 개념이 복지라고 본다. 사실 굉장히 넓은 개념이다. 일회성 도움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이 1년에 국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항상성 있는 제도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근본적으로 예술인 복지 창구가 많지 않고 혜택의 폭이 좁다는 데 있다. 한 번 지원금을 받으면 향후 몇 년은 지원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시스템으로는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가 없다. 몇 년간 유지되는 지원 제도가 있어서 예술가들이 책 한 권, 한 작품을 마음 놓고 완성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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