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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5

202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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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면계약서는 상충이 아닌
상생을 위한
자기 주도 설명서
김대현 문학평론가

예술과 노동의 개념 구획이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유감

한 소설가가 문학상 수상요건으로 저작권을 양도하는 조건을 거부하며 절필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종의 기시감이다. 해당 조건이 당해에 신설된 것이 아니라 기존부터 수상동의서에 명시적으로 기재되어 있었음에도 왜 그동안 항의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동의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또 다른 소설가의 대답은 문학계에 오래전부터 떠돌던 속설, 다시 말해 문학은 돈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믿음을 떠올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1967년, 김수영은 「이 거룩한 속물들」이라는 산문에서 “나는 지금 매문(賣文)을 하고 있다. 매문은 속물이 하는 짓이다.”라며 자신의 문학이 금전으로 환산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바가 있다. 김수영보다 이른 시기의 박영희 또한 “원고료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적면(赤面)’, 즉 얼굴을 붉혔다.”1) 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매문에 대한 인식, 다시 말해 작품을 금전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계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작가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지식인의 부를 경계하는 한국 특유의 청빈사상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분명히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근대 미학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인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지금도 치열히 다투고 있는 예술과 노동의 개념을 구획하는 매우 복잡하고 유서 깊은 주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본격적으로 예술과 노동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제한된 지면에서 적절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다. 단지 근대 이후 예술가로서의 작가와 계약서는 애초부터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부연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예술인 스스로의 권익 위해 계약서 세부조항에 유의해야

문제는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오도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계약서에 저작권 양도조항을 삽입한 후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고료를 기재하지 않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는 작품에 대한 저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심한 경우 작품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는 괴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작가들이 작품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술활동과 임금노동을 엄밀히 구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바꾸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논의의 층위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작가의 ‘창작행위’와 자본시장의 상품으로서 물성을 가진 작가의 ‘도서 유통’을 구분하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창작 이후의 생활, 다시 말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계약서의 세부조항에 유의하여야 한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이른바 매절계약이라고 불리는 저작권 양도계약이다. 『구름빵』 사안에서 보듯이 저작권 양도계약은 출판 및 배타적발행뿐만 아니라 저작물에 기초한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까지 포괄적으로 넘기는 것으로 실현소득이 기대소득을 크게 넘어서는 경우 작가에게 상당히 불리한 계약이다. 주로 신인작가, 공모전 수상자, 저작자의 특정성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전집류의 계약에서 종종 나타나는데 가급적이면 체결하지 않는 것이 좋고 어쩔 수 없이 체결해야 한다면 양도기한을 정하거나 이른바 ‘러닝 개런티’처럼 일정 금액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였을 경우 추가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첨부하는 것이 좋다. 고액의 소득이 발생할 것을 전제로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면계약서는 상충 아닌 상생을 위한 자기 주도 설명서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작품을 도서의 형태로 출간하는 ‘출판권’과 도서 이외의 형식, 예컨대 전자책, 오디오북 등의 형태로 발행하는 ‘배타적발행권 설정계약’, 그리고 작품을 각색 등을 통해 영화, 연극, 방송 등으로 활용되는 ‘2차 저작물 사용계약’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체결해야 한다. 현장에서 운영의 편의상 세 개의 권리는 보통 하나의 계약에서 동시에 체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각각 별개의 권리라는 것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계약기간(대체로 5년)과 자동갱신조항(별도의 의사표시가 없을 경우, 이전과 동일한 조건으로 갱신), 계약 종료 후 재고도서 처리 방안(기증, 파기 등)이나 계약당사자 사이에 성폭력 등 계약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을 경우의 해제 및 해지 조항 등을 살펴보는 것도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불이익에 대비할 수 있다.

계약체결과정에서 가장 좋은 것은 작가들이 계약서의 내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후 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예술행위의 특수성으로 인해 계약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설령 계약내용을 숙지한다 하더라도 출판사에 비해 비교적 열악한 지위로 인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상기한 주의사항들이 명문화 되어 있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거나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법령에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를 오도하는 일부 출판사의 잘못된 행태를 예비하는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는 적대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상생하는 관계이다. 그리고 그 신뢰가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기 위해서는 계약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이 진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1) 한만수 「‘탕진’, 독점 그리고 문학적 공유경제의 모색-원고료로 본 한국근대문학 100년」, 『내일을 여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