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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

20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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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통예술인 해외 진출,
성공처럼 보이는 그 이면

송혜진 교수

퓨전과 융합의 시대를 맞아 전통예술이 여러 장르와 협업하며 트렌디하고 모던하게 창작되어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예전과 달리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그런데 왜 국내보다 해외에서 그 진가를 알아보는 걸까. 전통예술인들의 ‘해외 진출’이라는 반가운 현상 속 이면, 궁금하게 다가온다.

그룹 잠비나이 3집 음반 〈온다〉를 듣는다.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장르는 아니지만 ‘잠비나이’음악이니까 경청한다. 그들의 새 음반 소식도 반갑고 어디서 어떤 공연을 하는지, 이들의 현재 생각은 무엇인지도 늘 궁금하다. 잠비나이는 전통예술 해외 진출을 거론할 때 첫손 꼽히는 그룹이다. 팀 전원이 전업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음악 정체성을 유지해오고 있으며, 해외 음반사와 기획사와 연계되어 1년의 4분의 1 정도 이상을 해외 무대에 선다. 경제적 보상을 포함한 현실의 어려움이 결코 적지 않으나 여전히 계속되는 이들의 활동은 참 대단하다. 그동안 이들은 다 열거하기 어려운 성과들을 내왔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이어온 전통예술인들의 활동

주변으로부터 “요즘 전통예술도 꽤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 이면에는 잠비나이가 우뚝 서 있다. 이례적인 이들의 성과에 대한 언론 보도 덕분이다. ‘글래스톤베리, 로스킬데, 헬페스트’ 같은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서 조명을 받았다거나, 세계 최고의 인디레이블 중의 하나인 Bella Union과 계약하고 활동한다는 소식들이다. 이들 말고도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말로 추켜세울 음악가와 그룹들이 더 있었고, 지금도 있다. 블랙스트링은 독일음반사에서 음반을 내고, 월드뮤직 분야의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미국 NPR 뮤직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소개되어 수많은 팬을 확보한 ‘씽씽밴드’도 큰 화제를 모았으며, 이자람의 활동도 언론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공명’은 그룹의 성격에 맞는 국내외 무대에 지속적으로 초청받으면서 20년 넘게 안정적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러나 일반의 시선처럼 “전통예술계가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해야 할 얘기가 정말 많지만, ‘해외 진출’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말하자면 아직 멀었고, 준비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전통예술인의 해외 진출

지난 10여 년 동안, 전통예술 분야의 해외 진출은 주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저니 투 코리아(Journey to korea)’ 프로그램을 통해 성사되었다. 체계적인 선발과 지원, 사후관리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전통예술인들의 해외 진출 양상이 달라졌다. 우선 많은 예술인들이 이 기회를 통해 세계 시장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일부 해외 음악 기획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된 듯하다. 10년 전에는 전혀 상상해 볼 수 없었던 큰 변화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해외 기획자들은 대체로 한국 측의 지원조건에 맞춰 ‘팔릴 말한 콘텐츠’를 접촉하고, 이들을 비교적 안전한 시장인 ‘축제’에 연계했다. 티켓 파워를 담보한 극장과 비교하면 중저가 시장이라 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음악가들에게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해외의 한국문화원이나 관계 기관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초대받는 기회가 더 늘어나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이들의 활동을 지속하게 할 동력은 작동되지 않았다. ‘한국음악창작연구회’, ‘한국현대음악앙상블, 바람곶, 비빙’같이 연주 실력이나 컨셉이 분명했던 이들은 물론, 꿈을 안고 뛰어든 신진들도 5년 넘게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통예술의 부흥을 위한 국내 음악 시장의 활성화 필요

전통분야의 세계 진출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지금,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생각해본다. 월드뮤직 시장 및 축제 무대 외로 진출 범위가 다양해질 수 있다. 전통음악 연주 실력과 창작 의식, 열정을 가진 음악가들이 너무 한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넓게 돌아보면 전통예술이 진출할 수 있는 해외 음악계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실험적인 현대음악 무대, 성격이 다양한 여러 유형의 축제, 세계 유수의 극장프로그램까지 그야말로 세계는 넓고 가고 깊은 곳은 많다. 정보와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주어지는 기회에 따라 진출 전략이 다를 것이고, 이에 따른 기획과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대중의 지지가 적더라도 아카데믹 영역에서 전통예술을 깊이 있게 확산시킬 수 있는 기회, 한 곳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활동을 펼쳐나갈 기회 등, 현재 주목받고 있는 팀들과 다른 성격의 통로를 함께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또 지금보다 더 나은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실력뿐만 아니라 이를 해외 청중들에게 전해주는 매개자, 즉 기획자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연주 실력만 가지고도 안 되고, 예술인을 존중하지 않는 기획자 마인드만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예술인과 기획자가 비전을 공유하며 상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고는 지속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그동안 생생하게 목격했다. 예술인 지원 못지않게 기획자 육성, 지원이 시급하다.

잠비나이의 3집 〈온다〉에는 ‘그대가 지내온 아픔들이 빛나는 축복의 별이 되어’라는 긴 제목의 곡이 있다. 어려운 현실, 앞이 보이지 않는 예술인으로서의 불안한 미래, 그래도 ‘온다’에 희망을 거는 마음들을 담은 곡이라고 한다. 뭉클하다. 잠비나이, 잠비나이의 동료, 선후배 아티스트들이 기다리는 ‘축복의 별’을 그들끼리 기다리게 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