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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 2017. 11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미술가 최선

통념 향해 세우는 예리하고 첨예한 각

2017. 11

최선 작가는 생과 사, 미와 추, 환영과 실제의 경계선이 과연 어디에 있고, 어떻게 작용하는가와 같은 예술의 문제들을 재료와 퍼포먼스를 연결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파격적이라거나,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라거나, 거칠다거나 하는 그의 작품에 붙는 여러 감상들도 실은 그 경계선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곧 사라질 환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냥 할 일을 한다는 듯 묵묵히, 겸손하게 작업해왔으므로. 글 김지승, 사진 최선

통념 향해 세우는 예리하고 첨예한 각 검은그림 blackpainting, 2005(2015 remaked)

얻은 모유를 발라 그린 〈동냥젖〉, 팽목항 바닷물에 캔버스를 담갔다가 건져내기를 수십 번 반복해 캔버스 위에 소금 결정을 만든 〈소금회화〉, 주위 온도가 상승하면 투명하게 변하는 돼지기름을 이용한 회화 〈흰 그림〉, 화장터에서 구한 뼛가루와 관객의 움직임이 만드는 〈실바람〉 등. 그는 세상이 터부시하는 것들을 질료로 겹겹의 의미를 만드는 데 능숙한 작가다.

홍익대 회화과 졸업, 2004년 첫 개인전 이후 특유의 미학적 탐구를 지속하고 있는 그의 작업 방식과 참가자들 또한 인상적이다. 일반 관객이 전시장에서 직접 작업에 참여하는 퍼포먼스 외에도 센다이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들, 안산시장의 외국인 노동자들, 여수 한센인촌 할머니들이 함께했다. 질료의 선택부터 작업 과정과 참여자, 전시 방식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역동적으로 흐르는 듯한 그의 작업은 여러 관점에서 강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캐비넷 아트 페어를 준비 중인 걸로 안다.

개인 작품 전시뿐 아니라 아트 페어 전체 디자인을 맡고 있어서 전시 공간 관련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올해 개인전 타이틀이기도 했던 〈멀미〉라는 작품을 비롯해 〈오수회화〉 등 그림 몇 점도 함께 전시할 계획이다. 대다수 한국 작가들이 그렇듯 나도 상업 갤러리에 속하지 못한 작가이고, 그런 작가들과 함께 만드는 아트 페어인 만큼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같은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선보이게 될 것 같다.

특별한 상상력, 작품 질료, 방식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바닥에 뿌린 뼛가루 위를 관람객들이 움직이면서 완성해가는 〈실바람〉의 경우, 멀리서 보면 그냥 먼지 같다. 그것이 뼛가루라는 것을 관객들은 제목이나 작품 설명을 통해 뒤늦게 인지하게 된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런 무관심, 무지, 스쳐 지나감을 작업에 역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현대를 살아가며 갖게 되는 내 고민들을 질료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거다. 미술 영역에서도 ‘세계화’는 인기 있는 구호이지만, 내 경우는 말하자면 내수용 작가라고 할까. 한국을 위한 작가. 조금 더 한국에 집중한 작품들, 내 모국어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색상이나 형태와 같은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로 나타내는 고민하고 생산한다. 한국적 재료들로 형이나 색채를 만들려는 시도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팽목항에서 작업한 〈소금회화〉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2014년 5월에 팽목항에 갔었는데 그릴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바다를 그려야 맞는 것인지, 하늘을 그려야 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배를 타고 나가 현장을 그려야 하는 건지. 뭘 그린다 한들 슬픔이라는 추상성에 부합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가지고 갔던 천을 바닷물에 넣었다 빼는 작업을 했다. 물이 품고 있는 것, 품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과 시간들이 묻어나길 바라면서 작업했다. 형태들이 드러나지 않은 채로 슬픔이랄까, 힘겨운 시간들이랄까, 분노 같은…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감정들이 영글어지도록. 보름 정도 머물며 시간이 흐를수록 멍하니 무심해지는 어떤 순간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게 정말 무서웠다.

통념 향해 세우는 예리하고 첨예한 각 (왼쪽부터) 동상 frostbite, 2017 / 흰그림_캡사이신 capcisin, 2016(2017 remaked) / 모국어회화, 2017 미술가란 이름이자 견지해야 할 태도 관련해 작가로서 견지하는 태도가 있다면?

미술가라는 이름이나 사회적 역할에 부합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 통념에서 벗어난 것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을 잘해야 미술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미술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고, 그랬으면 좋겠다. 미술계에서는 좀 더 대범하고 과감한 사람이고 싶고, 누구와 함께하는 자리라면 친절한 사람으로, 그러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지 않는, 진정한 작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싶다. 이게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일종의 소망으로 안고 있다.

나는 우선 미술가고, 미술을 하는 사람이고, 내가 하는 미술이 미술품이 되고, 사물이나 행위가 근거가 되어 그걸 통해서 단 한 명이라도 감정을 느끼고 의견을 줄 때 그게 예술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미술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에 그것이 예술품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회와 관계를 맺는 거다. 미술가로서 미술품을 온전히 내놓아야 할 때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것을 내놓기 위해 애를 써야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첨예하고, 예리한 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미술가란 어떤 이름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하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파견 작가로 어떤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지?

작년에는 퍼실리테이터로, 올해는 파견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푸르메직업재활센터에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 지체 장애를 가진 직원들과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그분들의 직업 능력을 조금 향상시킬 수 있는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나와 동료작가 둘, 퍼실리테이터 총 넷이서 함께 진행한다. 직원들이 그린 그림, 디자인으로 에코백을 만드는데 초기엔 물감 섞는 과정도 힘들었던 분들이 넉 달째 만나면서 훈련을 통해 재미있는 그림들을 많이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다. 정말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지, 혹시 우리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닌지 회의감도 있었다. 지금은 안 보면 보고 싶다. 나도 부상으로 재활을 오래 한 경험이 있어서 그 시간이 기억나기도 했다. 파견 작가들 모두 함께하는 분들과 서로 성장하는 데 무엇이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잘 조율하고 있다. 퍼실리테이터까지 모두 화가들이라 의견 조율이 수월하고 편하다.

파견 예술인들이 업무 과정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재단에 제출하는 보고서 내용 외에도 많은 일을 했다. 가령, 워크숍에서 예술인 한 명이 직원 둘을 담당하는데, 함께한 이들 외에 다른 직원들의 성향을 알지 못하니까 담당했던 직원들의 성향, 각자 느꼈던 점, 어려운 점 등을 짧은 보고서로 작성하고 서로 공유하고 있다. 직접 폼을 만들었고 벌써 108개 정도의 관찰일기가 쌓였다. 수업을 충실히 만들어 가기 위한 기록이다. 기록하면서 이 사업에 더 애착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왕에 하는 것 작가답게, 예술을 지향하는 문화인답게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훌륭한 동료 작가들과 사업 담당자를 만난 덕분이다.

개인 작업과는 갭이 큰 작업이지 않나?

파견 예술인으로 참여하면서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다’라는 단언이 정말인지 알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잘 모르겠다. 소위 미적 성취, 미적 체험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노력은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흡족하진 않다. 어쩌면 그분들은 내 예상과 다른 체험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불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개인 작업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런 건 뭐랄까, 내가 작가 이외에도 여러 이름을 갖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사회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고 있고, 예술인이나 화가, 작가라는 이름일 때는 거기에 맞게 살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존에 하지 않았던,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남들보다 더 과감하게 작업하고 싶어 한다. 물론 스스로 불만스러운 게 많다. 더 터지고 열리는 순간이 필요한데 여전히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예술인 가족으로 산다는 것 아버지가 원로 화가 최낙경 님이다. 작품 세계에 영향 받은 바가 있는지?

나는 거의 없다. 아버지에게 영향받아 그리는 분들이 있다. 아버지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나도 풍경화를 좋아하지만 내 경우 ‘그린다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말하자면 미술의 미술을 하는 셈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 유작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 작품에 대해 설명할 일이 있었다. 풍경화 한 작품 한 작품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의 선생님, 또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연결되는 한국 유화의 발전사, 기법상의 변화 등을 얘기할 수 있었다.

예술인 가족으로 살아오며 남달리 경험한 게 있을 것 같다.

미술 작품을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그것으로 생계가 가능한 작가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겪게 되는 심리적 궁핍이 굉장히 크다. 돈과 관련해 모욕감을 많이 경험했다. 금전 문제로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가장이 예술인이면 여러 종류의 궁핍으로 내몰리기 쉽고 건강 문제, 심리적 위축감, 자존감 저하 등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아버지 같은 원로화가들은 젊은 나보다 더 어렵다. 흔쾌히 불러주는 전시장도 없을뿐더러 전시를 한다고 해도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는다. 재단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창작지원금과 의료비 지원을 받았다. 재단의 복지 개념은 예술인의 최소한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 지원들 덕분에 아버지 역시 그것들을 지킬 수 있었다.

예술인 복지, 예술인들의 기가 살아야 복지 정책이나 지원 사업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부 지원금으로 작업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이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을 즐기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생산해내는 창작자가 아니라 예술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자 같은 느낌이 있다. 보고서 작성해야 되고, 영수증 처리해야 되고. 그런 부수적인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갖게 되는 불안감이 그들에게 누적된다. 그런 사회제도적인 일들을 좀 더 가볍게 만드는 동시에 어떻게 예술적 성취들을 높여갈 수 있을까가 관건인 것 같다. 공적 자본의 엄격함이 잘못된 방향으로 예술인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도 조금 더 좋아지려면 작가의 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 나가야 한다. 그걸 이해하는 공무원을 만나긴 쉽지 않다. 재단이 그 다리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 작가들 기가 살아야 한다. 작가들이 정치가보다 말이 많고, 의견을 막 낼 수 있게. 그렇게 될 때 사회에 새로운 생산의 원동력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지난 6월, 인사동 한복판에서 작가 160명이 작품 천 점을 전시한 적이 있다. 젊은 작가들이 기획한 것으로, 모두가 놀랐다. 작가들이 모여서 뭔가 해보자고 의견을 모으고 그것을 자유롭게 펼쳐 보일 수 있게 되면 엄청나고 놀라운 걸 만들어낸다. 그런데 공공정책이나 기획이 점점 작가들에게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어떤 정책을 실행하더라도 작가들의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역작용이 일어날 거다.

예술인들의 부담 경감 외에 제안하고 싶은 복지안은?

재단에 좋은 정책들이 많다. 법률 자문, 심리 상담 등은 진일보한 복지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술인을 향한 사회적 멸시나 예술인이 느껴야 하는 모멸감이 옅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예술인들이 자기 예술 세계를 자신감 있게 보여주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본적인 존중과 응원의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사회에 바라는 일이긴 한데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해 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다.

또, 제도적으로 작가 안식년이 마련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지원을 받아서 두어 달 그냥 문화예술에 푹 빠져서 살아본 적이 있는데 뼛속까지 문화인으로 사는 게 참 행복한 일이고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았다. 그전까지 잠재해 있던 내 피해의식도 자각하게 되었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는 그 시간이 굉장히 특별했다. 분명 누구에게나 값진 경험이 될 거다. 예술인 안식년 제도, 비현실적 소망이라도 좋지 않나.

  • 최선 미술가
  • 최선 미술가 200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17 〈멀미 sickness〉, 씨알 복합문화공간, 서울, 한국
    2016 〈무게와 깊이〉, 스페이스 xx, 서울, 한국
    2015 〈메아리〉, 송은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3 〈두 세상〉, 뱀부커튼 스튜디오, 타이베이, 대만
    2013 〈매와 허공〉, 뱅크아트 Studio NYK, 요코하마, 일본
    2011 〈실바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뱅크아트 LIFE3 프로젝트, 요코하마, 일본
    2010 〈가쁜 숨〉, 코너 갤러리, 서울, 한국
    2004 〈벌거벗겨진 회화 Naked Painting〉, MIA 미술관, 서울,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