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신청
|
최두수는 미술 작가이고 전시기획자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현재는 광주 비엔날레 전시부장으로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그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 〈듀플렉스 갤러리〉, 〈솔로문 아티스트 레지던시 & 갤러리〉 등 전시공간을 운영하기도 했다. 최두수는 작가로서 정점을 찍었을 때 오히려 그 틀을 깨고, 반복된 삶의 패턴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에 참여했던 예술로 사업은 예술가로서 최두수의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심어준 계기였다.
소공인특화지원센터는 소공인들의 기술력을 전승하고 지원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플랫폼입니다. 저는 문래동의 소공인특화지원센터와 함께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예술로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문래동은 본래 철공소 기술 단지였는데 월세가 낮다 보니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문래예술창작촌이 형성됐어요. 당시에 우연히 문래동에서 전시를 했는데,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문래동에 머물다가 지역 작가들과 친해지게 됐습니다. 전시를 하는 동안에 제가 작업실이 없어서 소공인들 공장 앞에서 작업을 했거든요. 그냥 그분들 공장 앞마당에서 작업하고, 저녁 먹을 때 같이 먹고 그랬어요. 그렇게 문래동 길 위에서 작업을 하면서 소공인분들 가까이에서 생산활동을 유심히 보니 예술활동과 차이가 없어 보였어요. 그러다가 동네를 산책하던 중에 소공인특화지원센터를 보게 되었고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진열된 팽이를 발견했습니다. 굉장히 정교한 금속 팽이들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센터에 물어보니 세계 팽이대회라는 게 있고, 진열된 팽이들은 경기용 팽이래요. 문래동 기술자들이 각자 팽이를 만들어서 명절에 팽이대회를 하면서 팽이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팽이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주로 경기용으로 남을 이기기 위한 팽이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미술하는 사람으로서 이걸 예쁘게 디자인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고, 그렇게 협업의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기술자분들을 만나서 팽이를 조금 더 예쁘게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팽이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동선이 너무 예뻐서 관찰하다가 팽이 끝에 잉크를 찍으면 어떨까 해서 묻혀봤더니 팽이가 움직이며 잉크가 퍼뜨려지고 그러면서 그림이 그려졌어요. 그 다음에는 잉크를 팽이 안에 넣어봤어요. 팽이를 돌리면 팽이 안에 있던 잉크가 밖으로 뿌려지면서 그림이 그려지는 〈그림팽이〉가 그렇게 개발됐고, 소공인분들과 함께 디자인하고 특허를 진행하면서 문래근린공원에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팽이놀이터를 만들었지요. 그러면서 초등학교 아이들과 팽이를 활용한 미술수업을 하고, 주민센터에서 주민들과 모여서 명절에 같이 그림 그리고 장터에서 팽이를 팔았어요. 그렇게 동네에서 ‘팽이 아저씨’가 되었죠. 2년 넘게 팽이 돌리고 다녔습니다.
ATM상상소는 아트(A), 테크(T), 문래(M)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문래동 소상공인 2세 경영자분들과 시작한 일종의 동아리입니다. 팽이를 성공시켜서 대박 날 꿈을 꾸면서 시작했어요. 기술, 아이디어, 디자인을 결합해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스페이스xx〉는 예술로 사업을 마친 뒤 만든 복합문화공간이에요. 당시에 통장에 500만원이 모였는데 그 돈으로 보증금을 내고 문래동 건물 지하에 스페이스xx를 만들었죠. 2017년 1월로 기억하는데, 처음 석 달은 월세를 못 냈어요. 그래도 지원사업 떨어진 작가들 전시하라고 대관료 안 받고 공간을 빌려줬어요. 작가는 전시를 하고, 주변 동료들이 인정해주고 그런 관계들이 중요합니다. 〈스페이스xx〉는 어떤 xx를 의미하는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당신은 xx에 무엇을 넣고 싶으냐고 되물어요. 〈스페이스xx〉는 미술전시만 하는 공간은 아니에요. 공간을, 전시를 무엇이라고 규정하지 않겠다, 경계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지금은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진 않아요. 그리고 〈유니온아트페어〉는 〈스페이스xx〉를 시작으로 시작된 아트페어입니다. 작품유통 시장을 활성화하고, 작품발표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작가들이 기회를 얻고, 미술관계자들에게 소개되는 계기를 만드는 페어예요.
▲ 《자석집》(스페이스xx, 2023.10.14~28) 참여작가 장세희, 최재용, 김판선, 신영준
예술로 사업으로 팽이를 만들기 전에 작가로서는 5년의 공백이 있었어요. 어느 날 지금 내 상태의 틀을 깨지 못하면 나는 멈추겠구나 싶어서 삶의 패턴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렇게 5년의 공백이 있었어요. 그 뒤에 우연히 문래동에서 전시를 하면서 소공인분들을 보게 되었고 영감을 받았어요. 예술가라는 핑계로 늦게 일어나고, 밤을 새우기도 하고, 불규칙적으로 살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으로 노동하고 생산하는 소공인분들을 보면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팽이로 수업을 열고, 놀이터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협업하기도 했고요. 예술활동은 영감에 의한 창작활동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옆에서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고 생각이 아니라 실행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시점의 변화가 생기면서 이전에 제가 하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예술작업을 하게 됐고, 현대미술 안에서 어려운 담론을 다루는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로서 예술을 해보고 접점을 만들고 그 점들을 연결해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세상에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예술인들은 예술로 사업을 통해 약 6개월 동안 기업과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마주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편 여기에서 나아가 사업 종료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예술인이 있다. 바로 이성준이다. 이성준은 클래식 기타 연주자 겸 클래식 공연 기획자로, 전문 공연장, 문화소외지역 등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가 예술로 사업에 참여한 건 2017년이 처음이다. 그때 인연이 된 롯데월드와 지금까지 〈소아암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은 프로 연주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던 초반기여서 조금 막막하던 차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예술로 사업을 알게 됐고, 롯데월드와 매칭이 됐어요. 당시 롯데월드는 작곡, 음악교육, 음원 발매, 공연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에 대한 협업 계획이 뚜렷했습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소아암인식개선 캠페인〉으로 소아암 환자들과 노래를 만들어서 음원을 발매하고, 롯데월드에서 공연까지 올리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클래식음악을 전공한 저와 보컬 트레이닝, 편곡, 작곡이 가능한 음악가분들이 함께 참여했고요. 소아들끼리만 공연을 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서 롯데월드의 직원분들이 샤롯데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자로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아무래도 기업과 예술가들이 소통하려니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절차적인 부분과 언어가 다르다 보니 리더예술인의 역할이 중요했어요. 중간조율자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했는데 제가 그 역할을 하게 됐어요. 예술작업의 과정에 대해서 기업에서는 잘 모르다 보니 녹음이 끝나면 수정이 불가능한데 음악을 모르는 분들은 쉽게 수정이 된다고 생각하실 수밖에 없고, 그런 요구가 들어올 때 기업의 담당자분께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드리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리더예술인으로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면서 저도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대기업의 일처리 과정이나 방법, 절차, 조직문화는 어떤지 예술가인 저 또한 배우게 됐죠. 사업에 처음 참여했던 때에는 퍼실리테이터라는 개념도 몰랐는데 일을 해나가면서 기업과 예술가가 일을 할 때는 꼭 중간조율자가 필요하구나, 라는 것을 몸으로 계속 배우게 되었습니다.
▲ (위)아이들과 임직원 합창단 보컬 녹음현장(2017.10.21), (아래)롯데월드 가든스테이지에서 진행된 합창단 공연 발표현장(2017.11.19)
2017, 2018년은 예술로 사업으로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캠페인은 중지됐고요. 팬데믹이 진정되고 캠페인을 재개하기 위해 롯데월드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 연락을 해왔고, 재단에서 연결시켜주어 〈소아암인식개선 캠페인〉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이 예술인과 기업의 매개 역할을 해준 거죠. 제안을 받고 예전 예술로 사업을 함께했던 동료예술인들과의 작업이 너무 좋았던 터라 롯데월드 측에 전에 함께 했던 작가들도 같이 참여해도 되는지 물어봤고, 수락하셔서 그때 그 팀 그대로 캠페인을 다시 시작하여 올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롯데월드 무대에 아이들이 등장하고 공연이 시작되면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감동적이죠. 그래서 무조건 공연을 보러 갑니다. 무대를 같이 만든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매번 느끼게 돼요. 특히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고맙기도 하고, 연습할 때 열의를 갖고 함께 해주는 모습을 보면 이 캠페인이 단순히 공연이라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더 기분이 좋습니다.
온전히 연주자로서만 지내오다가 다른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요. 조율자로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조직이라는 집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야 자체가 넓어진 느낌입니다. 클래식 분야를 벗어나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억이고요. 프로젝트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혼자 작업할 때는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됐어요. 지금은 제 기획 활동을 할 때도 이 사람이라면 어떤 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할까, 뭐가 필요할지 계속 생각해요. 클래식 연주자로서 따로 또 팀을 꾸려서 활동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팀원들의 입장을 조금 더 배려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공공기관과 소통할 기회가 많은데 그분들의 언어, 작업, 일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그분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게 되어 일을 하면서 전반적으로 많이 수월해졌습니다. 예술로 사업의 협업 과정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소위 예술가의 사회화가 이뤄졌달까요. 다른 분야의 예술가를 이해하는 계기, 예술가가 아닌 기관, 조직을 이해하는 방법을 경험했습니다.
김지애는 밴드 다브다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한다.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브다는 2010년 결성되어 올해 14년차로, 그 시간만큼이나 뼈가 굵은 사운드를 연주하는 밴드다. 김지애는 지금껏 음악가로만 활동하다가 2019년 예술로 사업을 통해 만난 나들목바하밥집에서 처음으로 음악 외의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다. 나들목바하밥집 내에서 고립 은둔 청년의 자립을 도운 것을 시작으로 2022년 (사)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가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자립준비청년, 고립 은둔 청년을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예술인들이 리커버리예술단을 만들며 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큰 역할을 했으며, 김지애와의 인연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자립준비청년, 고립 은둔 청년과 같이 사회적으로 고립 위기에 놓인 청년들의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여기고, 공동체를 경험하여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공생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저는 센터와 협업해 회복, 되찾음을 위한 창조적인 쉼을 만들어가는 창작예술놀이 협업단체 리커버리예술단에 참여하고 있어요. 리커버리예술단에서 올해 진행한 프로그램은 크루 멤버를 모집하기 전에 진행된 워밍업 프로그램 〈드림그림〉부터 시작해서 코로나19로 인해 생겨난 신조어 ‘코로나블루’에 영감을 받은 시각예술놀이 〈나의 블루 이미지〉, 주변의 이미지를 수집해 나만의 지도를 만드는 예술 탐험 놀이 〈나의 길 나의 맵〉 프로젝트, 각자가 바라는 쉼에 대한 레시피를 공유한 〈릴레이 바캉스〉, 크루들이 영화감독, 배우와 함께 직접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만들고 실제 영화관을 빌려 상영했던 결과전 〈몽상망상 영상전〉 등이 있습니다. 저는 매년 센터를 주제로 곡을 하나씩 만들고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은 2020년에 만든 〈진짜의 진짜 마음〉입니다. 크루 멤버들을 한 명씩 인터뷰해서 노래 안에 그 내용을 넣었는데, 그 속마음을 들으며 센터가 갖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죠.
▲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나의 블루 이미지〉, 〈릴레이 바캉스〉, 〈웰컴파티 오픈쌀롱〉, 〈몽상망상 영상전〉
정서적으로나 신체적 또는 사회적인 다양한 원인으로 은둔형 외톨이 형태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하고 이로 인한 관계단절의 심화를 겪고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등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을 고립 은둔 청년이라고 불러요. 저도 예술로 사업을 통해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만나면서 알게 된 개념이에요. 센터의 모태는 민간인 단체 무료 급식소 ‘나들목바하밥집’이라는 곳이었고, 배식 현장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을 마주했다고 해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친구들의 자립을 도우며 청년 자립기관으로 발전해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가 2022년에 만들어진 거죠.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은둔 청년들이 센터로 직접 연락을 하거나 서울시 등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어와요.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 정도 은둔하다가 세상에 나온 분들이 센터를 찾으셨는데 지금은 은둔의 기간이 그보다는 짧아지고 있어요.
2019년에 처음 참여했는데, 당시 회사에서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예요. 당장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음악놀이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참여했습니다. 이후엔 계속 참여하면서 고립 은둔 청년들을 만나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일들을 경험했어요. 멤버들이 등을 대고 게임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자신의 등을 남에게 대는 것도 미안해하는 청년이 있었어요.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거죠.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나니 몸이 닿는 것도 미안해하던 친구가 MC를 하겠다고 나서는 거예요. 그런 변화가 신기했어요. 저도 공연할 때 긴장을 많이 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되려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지금은 크루 멤버를 모집할 때가 되면 올해는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기대가 돼요. 고립 은둔 청년들을 만나며 드는 생각은 예술가랑 은둔 청년이랑 닮은 부분이 많다는 거예요. 예술가도 작업을 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가 많고, 자발적으로 은둔할 때도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같진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처음 사업에 참여할 때는 워크숍이 뭐야? 협업이 뭐야? 처음 듣는 말들이 많았어요. 저는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친구들만 만나고 지금껏 밴드만 했으니까 음악 외에는 내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 예술인들을 보면서 연극계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작업하는구나, 미술 하는 사람은 이렇게 작업하는구나를 알게 되었고, 그들과 협업하는 방법을 배웠고, 나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어서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제가 외부에 나가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볼 수 있는 능력치를 얻은 것 같아요. 〈릴레이 바캉스〉 프로그램은 일반인들 대상으로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와 협업하면서도 그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리커버리예술단이 존재할 수 있는지 모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