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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욱 변호사(사법연수원 34기)에겐 명함이 두 장 있다. 하나는 법무법인 감우의 파트너 변호사라는 직함이 적힌 변호사 명함, 다른 하나는 만화가 명함이다. 딱 봐도 본인 같은 캐릭터 옆에는 17종의 책을 냈다는 깨알 같은 홍보도 보인다.
“법학을 전공한 학창시절에도 만화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렸고, 졸업 후에도 애니메이션 회사, 광고회사에 다녔어요. 만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게 좋았는데 부모님 권유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17년째 매주 4컷 만화를 변협신문에 연재하고 있는데요. 힘들기도 하지만 만화는 제게 일종의 자아실현의 도구이기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법이라는 자신의 전문성을 만화에 담아내는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어려운 저작권 판례를 재미있는 만화로 풀어낸 『저작권 별별 이야기』는 2015년 초판이 나오고 최근 개정판을 내면서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6만부가 배포되었다. 2021년에는 WIPO(세계지식재산기구)의 저작권법 교육만화 『꿈을 그려가요』(8개 국어로 배포)를 그리기도 했다.
만화가이자 전문 변호사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일까. 그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재단)이 설립된 초기부터 예술인을 위한 법률 상담 컨설팅을 해오고 있다. 예술인들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에 집중해 지난해에는 『웹툰 계약 마스터』라는 책도 펴냈으며, 올해는 유튜브로 ‘표준계약서 파헤치기’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영욱 변호사를 만나 최근 예술계에 충격을 안겨준 ‘〈검정고무신〉 사건’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대화를 나눠보았다.
문제는 불공정 계약이죠. 현재 나와 있는 표준계약서의 경우, 그 종류가 분야별로 60여 종에 달합니다. 그래서 출판권 설정 계약 같은 많이 사용되는 계약이라면 이러한 표준계약서를 참고하면 되는데, 사업권 계약이라거나 어떤 프로젝트와 관련된 별도 계약과 같은, 작가들이 자주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계약들이 있을 수 있어요. 사업권의 범위가 너무 넓거나 계약 자체가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장하기 힘들게 되어 있는 것들이죠. 〈검정고무신〉 작가분이 처한 계약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고요. 이전에 가수 조용필 씨나 〈구름빵〉 백희나 작가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겪었고요. 이처럼 불공정한 계약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계약 체결 전에 법률적 조언을 거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갑의 위치인 출판사나 제작사가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개인 창작자가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런 부분은 법 개정이나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하고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계약의 당사자인 예술인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계약 전에 다양한 법률상담을 받아 사전에 대비하는 겁니다. 주위를 보면 다양한 법률상담의 통로가 있어요. 재단의 법률상담 및 컨설팅은 물론 문체부의 법률지원센터, 그리고 만화가나 웹툰작가들이라면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만화인헬프데스크가 마련되어 있어요. 이런 창구들을 이용해 계약 내용을 검토해보라고 권합니다.
확실히 계약서 관련 문의가 많습니다. 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겠지요? 계약 관련 문의 중에서는 권리가 누구에게 가고, 계약의 내용에 따라 그런 권리가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 ‘권리’ 부분을 특히 궁금해합니다. 더해서 제가 특히 신경 쓰시라고 조언 드리는 부분은 ‘기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약서에 자동 갱신이 아닌 자동 종료 조항을 권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3년이 계약기간이라고 하면 계약 만료 1개월 전에 상호 별다른 의사 표시가 없을 경우 같은 조건으로 갱신된다는 조항이 붙는데, 그게 자동 갱신 조항입니다. 그런데 그걸 놓쳐서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들이 생기거든요. 그런 걸 잘 챙기지 못할 거 같으면 처음부터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상호 의견이 없으면 종료된다. 그러나 1개월 전에 합의하여 갱신할 수 있다’라는 자동 완료 조항으로 하는 게 낫다는 거죠.
작년인가 상담 온 분이 인상에 남습니다. 게임 디자이너를 하다가 그림학원을 다니셨던 분이었는데요. 학원 원장이 자기가 캐릭터 사업을 하려는데 독점 5년으로 에이전시 계약을 제안했다고 해요. 괜찮겠느냐고 계약서를 첨부한 이메일 문의가 와서 한 번 살펴보니 계약금도 없고, 계약 조항들도 애매모호하고, 상대방은 아무 부담 없이 5년간 독점적 권리만 있어서 리스크가 크다고 설명을 드렸더니 상담료를 내더라도 제대로 얘길 듣고 싶다고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조항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상담을 해드렸고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제작사가 캐릭터 사업을 하면서 몇 억원의 돈을 투자할 것이니 작가에게 저작권의 반을 달라고 하는 상담 사례도 있었는데 이런 계약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를 한다는 것이지 그 돈을 작가에게 주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해당 사업이 잘되더라도 언제든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제가 강의할 때 많이 말씀드리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창에 본인이 체결하려는 계약서 이름을 치면 결과가 쭉 뜹니다. 두세 건 정도의 계약서를 뽑아놓고 본인이 쓰려는 계약서와 비교 검토해보는 것도 확인 차원에서 도움이 됩니다.
물론 예술가분들의 기질상 보통 사람들보다 법률적 용어를 어려워하고 계약을 힘들어하는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표준계약서가 있지만 강제는 아니니까 여전히 허술하게 계약서가 작성되는 경우도 있고요. 최근 급격히 성장한 웹툰처럼 업계가 빨리 변하면서 표준계약서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을 거고요. 현재 저도 만화 표준계약서 개정 작업에 참여 중인데, 현재 6종이었던 계약서가 10종 정도로 늘어나고 양도 대폭 늘어날 것 같습니다. 산업이 커지고 이전에 없었던 다양한 상황이 등장하면서 계약서의 보강은 계속 이뤄질 것 같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대한민국 민법의 원칙인 사적 자치에 따르면 개인이 법질서의 한계 안에서 자기 의사에 따라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표준계약서는 그동안 계약 당사자간의 힘의 차이를 보완하자는 역할이었고, 그렇기에 모두가 표준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표준계약서의 가장 좋은 사례는 연예인 전속계약서예요. 이전에는 동방신기의 사례를 비롯해 정말 분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 약관에서 출발해서 표준계약서가 되었고, 지금은 업계에 완전히 정착했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지금 재단 사이트에 보면 표준계약서가 5~60종 되는 것 같아요. 한 분야에 10개씩 있다 보니 너무 많아요. 사실, 저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굉장히 쉽게 쓴 거라고 하지만, 예술인들이 보기엔 그 내용이 어려울 수 있거든요. 요즘 유튜브 방송 많이 보잖아요. 그래서 한 번쯤 그 계약서를 알기 쉽게 읽어주기만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출판권으로 시작해 올해 안에 표준계약서 전체를 다 한 번 훑는 게 목표인데, 제게도 분명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저도 나름 작가니까 계약서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대체로 작가 측 입장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용되는 여러 계약서에 대한 작가들의 반응은 ‘이거 작가에게 너무 불리하다’가 다수예요. 심지어 저작권 양도를 아예 인정하면 안 된다는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법학 교수 같은 전문가들 중에는 저작권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가 너무 창작자 중심으로 치우쳐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저작권법을 보면,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와 함께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여 사회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데 저작권자 권리만 너무 생각하다 보면 그 ‘자유로운 이용’이라는 부분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죠. 실제로 유튜브 보면 인용이 정말 많은데, 저작권 보호만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불법이 되고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련 산업과 전체적인 사회의 문화 발전도 위축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면이 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