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신청
|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영화인 중 열에 여덟이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가 〈영화스태프 등 단속적 노동자의 건강검진 지원제도 마련을 위한 연구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제도로 보장받고 있지만 건강검진 수검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단속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해당 연구에 참여했던 홍태화 영화노조 사무국장을 만나 영화인들의 건강권*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된 이유를 들어보았다.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제35조에 규정된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이며, 좁은 의미로 병에 걸렸을 때 차별 없이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2005년 노동조합이 생기고 임금체불,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영화산업 노사 단체협약’과 2012년 4월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을 통해 표준근로계약 도입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면서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고 주 70~8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 해오던 업계가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최대 52시간제의 적용을 받는 등 변화가 만들어졌죠. 이런 제반 여건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과 안전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중점을 두고 고용노동부 단체지원사업과 연계하여 2019년부터 연구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2019년에는 〈영화산업 산업안전보건실태조사 및 가이드북 제작사업(이하 산업안전보건실태조사)〉을 진행했고, 2020년에는 〈영화 스태프 등 단속적 노동자의 건강검진 지원제도 마련을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했고요.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앞서 진행했던 〈산업안전보건실태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영화 현장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영화는 폭파, 화재, 자동차 전복 등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여 관객에게 간접체험을 하게 만드는 예술장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현장이 안전한가에 대한 관리 감독이 되지 않고 있어요. 두 번째는 제가 영화현장에 몸담은 지 20년 가까이 되는데 현장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건강검진은 중증질환을 예방하고 만성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에서 장려하는 건강관리사업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거기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현장에서 스태프가 지병 등으로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예방은 물론 영화인들의 건강권 보장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4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직장건강검진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설문에 응답한 영화 스태프 중 12%만이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답했어요. 2018년 기준 국민들의 77%가 건강검진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수검률이 매우 낮습니다. 영화인들이 건강검진의 일종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응답이죠.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의 영화인들이 한 작품당 평균 4.8개월을 일하는 단속적 노동자(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휴게·대기 시간이 많은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는 거예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1월을 기준으로 건강검진 대상자를 파악하는데, 작품에 참여하는 영화 스태프는 당연히 4대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11월에 직장가입자일 수도 있고, 지역가입자일 수도 있게 됩니다. 보통 직장사업주에게 검진대상자가 일괄 안내되는 시점에 영화 스태프처럼 반복적 단기 계약 근로자는 고용관계가 종료되어 현재 고용 스태프와 대부분 일치하지 않게 되어 버려요. 그렇게 건강검진의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회사에서 해당 스태프에게 검진을 받으라고 알려주면 좋겠지만, 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니 굳이 알릴 필요도 못 느끼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건강검진제도의 취지에 맞춰 영화 스태프와 같은 단속적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쉽게는 직장건강검진의 고지의 방식을 바꾸는 방식이 있습니다. 지역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안내는 집으로 통지서가 오잖아요. 그런데 직장건강검진은 회사로 일괄 안내가 되거든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직장건강검진 대상자에게도 집으로도 안내문을 보내주면, 검진 대상자인지도 몰라서 건강검진을 놓치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고지 방식의 변화는 비록 작지만 의미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플랫폼 노동이 생기면서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 파편화된 각각의 노동에 맞춰 각각의 법을 만들 수는 없거든요. 그보다는 보편적인 기준을 만들어서 단시간 노동, 단속적 노동을 하는 이들도 사회복지, 사회보장제도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번 연구사업 결과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도 전달하고, 시행령 개정을 위한 인식 개선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소음, 분자,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되거나 야간작업 근무 노동자는 특수건강검진을 받도록 되어 있어요. 예견된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일을 하게 될 노동자가 과연 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지 사전에 검진(특수건강검진)을 통해 확인하자는 취지라고 보시면 되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조사된 2020년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보니, 스태프들은 촬영을 전제로 일주일에 평균 5.3일(일평균노동시간 11.6시간)을 일하고, 주당 평균노동시간 61시간, 주당 평균 야간노동 시간 29.6시간(1주 평균 노동일수 2.28일, 1일 평균 야간노동시간 13시간)에 달하는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영화 스태프 중 약 45%가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 대상(밤 12시~오전 5시까지의 시간을 포함하여 계속되는 8시간 작업을 월 평균 4회 이상 수행하는 경우, 6개월 동안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의 시간 중 작업을 월 평균 60시간 이행하는 경우)에 해당했습니다. 야간노동만 월 단위로 환산하면 월 128시간이니까, 특수검진대상의 조건인 60시간을 2배 이상 훌쩍 넘기더라고요. 영화보다 장시간 노동을 하는 방송계는 아마 상황이 더할 것 같고요.
전무했죠. 이번에 설문조사를 병행하며 영화 〈압구정 리포트〉의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일반 직장건강검진,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한 게 첫 사례일 것 같습니다. 원래 200명 이상 시범사업으로 건강검진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여의치 못했어요. 앞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특수건강검진에 영화종사자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입법 활동도 촉구하기 위해 여야 의원실을 접촉하고 있는 중이에요.
‘제작사에 대한 국가 건강검진에 대한 법적 책임 강화’(45%)가 1순위였어요. 당연히 누려야 할 직장건강검진을 몰라서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회사 측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것이고요. 그 다음으로 ‘영화발전기금으로 건강검진에 대한 일정 지원을 하자’(27%)가 있었고, ‘단속적 노동자들의 검진 사각지대 제도적 개선’(12%), 국가의 검진 관련 교육 및 홍보 강화(8%), 건강검진시간 유급화(5%), 제작사의 안전 보건 인력강화(3%) 순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제가 촬영을 맡았던 영화를 떠올려봐도 위험한 사고들이 여러 번 있었어요. 영화 〈리베라 메〉의 화재 장면에서는 머리가 탈 정도였고, 〈안녕 형아〉에서는 자동차 지나가는 장면을 찍다가 자동차가 제 발을 밟고 지나가 한 달 넘게 일을 못하기도 했고, 〈마이 뉴 파트너〉에서는 50미터 높이의 롤러코스터 장면을 위해 안전장비 없이 올라가 촬영했었고, 수조에 몸을 담고 촬영을 한 영화 〈해운대〉 때는 감전의 위험과 피부병으로 오래 고생했죠. 이건 제가 겪은 1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촬영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여전히 많은 영화 스태프들이 위험을 감내하며 일을 하는데, 제작사의 노동안전에 대한 인식은 옛날에 머물러 있죠.
▲영화 〈해운대〉(2009)의 촬영 장면과 영화 〈베테랑〉(2015)의 야간 촬영 현장.
일단, 일하기 전에 산업안전보건교육, 성희롱예방교육을 비롯하여 다양한 법정의무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도 영화노조가 오랜 법정공방을 통해 영화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것을 대법원 판례로 인정(2019년 감독 이하 스태프, 2020년 감독 스태프)받았기에 가능해진 건데요. 그런데도 법정의무교육도 하지 않고 촬영을 하는 경우가 여전히 있어요. 최근에 관련하여 해당 회사에 공문을 보냈더니 “촬영 다 끝내고 교육하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평균 4~5개월 내에 영화를 완성하면서, 그 기간 안에 스태프들의 안전을 위한 산업안전보건교육 단 1시간의 교육시간도 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문화예술단위에도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로감독관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현행법상 상시 노동자 수가 최소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담당자(사업장에 안전 및 보건에 관하여 사업주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지도·조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를 두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문화예술 쪽은 이런 상시노동자의 수를 충족하기 어렵거든요. 최근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산업재해 예방활동에 대한 참여와 지원을 촉진하기 위하여 근로자, 근로자단체, 사업주단체 및 산업재해 예방 관련 전문단체에 소속된 사람 중에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위촉받은 사람)을 두도록 하고 있어요. 이미 2016년에 영화노조에서 문화예술계에 계약 및 임금체불을 위한 명예 근로감독관과 문화예술계의 안전을 위한 명예산업안전보건감독관을 두자고 제안을 한 바 있고요. 국가가 아니더라도 지자체, 예술인들이 있는 지역의 지역문화재단 등을 통해 안전 등이 취약한 사업장을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미 수많은 통계상으로도 경제적으로 전혀 풍요롭지 못한 게 문화예술계인데요.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하는 예술활동이라도 활동하는 환경이 안전해야 하고, 국가의 건강검진제도 취지에 맞춰서 예술인의 건강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죠. ‘건강한 상태에서 예술활동을 해야 한다’라는 자신의 건강을 우선하는 인식 전환이 중요합니다. 법조항을 그저 일괄해서 읊어주는 교육이 아니라, 각 문화예술의 장르별 특성에 맞춰 건강권 인식전환 교육과 안전보건교육, 성희롱 예방교육 등이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의료비 지원 같은, 건강을 해치고 나서 사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도 물론 필요하지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지원제도가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건강 관련 교육, 건강검진 등으로 예방하고 또 예술인고용보험과 같이 예술인산재보험도 의무가입토록 하여 산업재해로부터 안전과 더불어 예술인의 건강을 지키는 그런 선순환이 이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