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구휼 아닌 행복,
예술인이 정당한 대가 받는 환경 만들어야
2016. 11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4주년을 맞았다. 2014년 10월 재단 대표로 취임한 후 현재까지 정부의 복지 정책과 재단 사업을 연계하고 현실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 온 박계배 대표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취임 초기 재단 내 상황부터 예술행정가로서 박 대표가 실천해 온 경영 철학까지 4주년 특집 인터뷰로 들어본다. 글 김지승 / 사진 이현석
박계배 대표가 취임했을 당시 예술인복지재단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예술인들의 복지 수요에 비해 부족한 재원, 예술인 대상의 복지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등 여러 어려움이 막 자리를 잡아가는 2년차 재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내부 사정 역시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취임하셨을 당시 재단 상황은 어떠했고, 가장 시급한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전임 대표 사임 후 1년간 대표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확실한 지침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전문가들과 직원 하나하나를 구슬처럼 꿰어 보배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개개인의 역량을 하나의 줄에 꿰어 조직의 강점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단 정원 35명 중 실제 정규직 현원은 20명도 되지 않은 규모로, 우선은 이런 상황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면서 작지만 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았습니다.
샘터파랑새극장 극장장,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등 주요한 단체의 장을 지내셨습니다. 조직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무엇보다 사업 내용과 성격에 걸맞은 조직 구성이 중요합니다. 가령, 예술인복지를 종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재단에서는 조직 구조가 위계적인 것보다 사업별 팀제 운영이 효과적입니다. 현재 불공정 관행 개선하는 사업 1팀, 창작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사업 2팀, 직업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 3팀과 예술인복지지원센터, 경영지원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팀제는 수평적인 의사소통과 순발력이 가능한 장점이 있습니다. 또, 재단이 예술가와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비스 정신과 주인 의식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고, 그러한 자세로 ‘찾아가는 사업설명회’, ‘창작준비금 신청하는 날’ 등의 서비스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극 장르에 30년 넘게 종사하신 베테랑 연극인이시기도 합니다. 그 경험이 재단 운영에 도움이 되시는지요?샘터파랑새극장 극장장으로 20년, 예총에서 9년,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1년 4개월을 보냈으니 따져보면 30년이 넘도록 대학로를 하루도 떠나본 적이 없는 셈입니다. 평생 공연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었지만, 처음 재단 대표 제안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고사했습니다. 복지 전문가에게 더 적합한 자리가 아닌가 생각도 했고요. 결국 이 직무를 맡게 된 건 현장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직접 피부로 느끼고 알게 된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술인들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미력하나마 예술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오늘까지 오게 한 것 같습니다.
직접 경험하신 연극 분야의 상황은 어떤가요?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 분야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대학로에서만 하루에 150여 편의 공연이 올라가는데, 예술인복지법에서 규정한 ‘불공정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연들이 상당수되지요. 불공정 행위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예술인에게 불공정하나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행위, 예술인에게 적정한 수익배분을 거부·지연·제한하는 행위 등 법에서는 이 4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관련 기획, 제작 측과 약자인 예술인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최근에는 예술대학 교수들이 올리는 공연에 대가 없이 참여하는 졸업생들이 많습니다. 사제지간이라면 대가를 요구하기 더 힘들어지지요. 아직도 소위 열정페이가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인 셈이죠.
예술인 복지, 일반 복지와 구별되는 철학 필요예술인 복지 구현을 위해서는 일반 복지와는 구별되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술인 복지를 얘기할 때 사회적으로 아직 저항감이 적지 않고, 예술인들 내부에서도 물질적 욕망이나 풍요로움에 대한 부정적 통념이 자리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정책과 사업 운영자들의 철학이 더욱 중요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복지는 ‘구휼’이 아닌 ‘행복’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단은 예술활동을 하는 예술인을 지원합니다. 따라서 생활 자체보다 창작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예술과 예술인이 가치를 인정받고 그것이 복지로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단이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요.
그렇죠. 개인적으로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업입니다. 단순한 생계 지원이 아닌, 창작 기회와 영역 확대를 통해 예술과 예술인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예술 활동 역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노동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6개월 동안 함께 작업을 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 이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형태의 새로운 작업 환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참여 기업이나 단체가 정식으로 예술인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요. 장기적으로 여러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단이 하는 일의 성격상 가시적인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오기 어려울 텐데요, 그런 면에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다른 문화예술기관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예술의 거리인 대학로에 위치하고,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실제 업무는 예술적인 것과 상당히 거리가 있지요. 사회보험, 의료비, 노무, 법률… 어떻게 보면 예술이나 예술인과 가장 거리가 먼 듯한 일들을 맡아서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업무를 포장할 수도, 눈에 띄는 결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성격의 일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런데 그게 복지 정책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당장 나타나는 효과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인식과 구조를 바꾸고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되면 주체가 되는 예술인들의 애정도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적·구조적 지원과 인식 전환 함께 이뤄져야 예술인 복지 정책이 지금보다 더 실효를 거두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요?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불공정 관행입니다. 재단의 예술인 신문고에 접수된 건만 해도 약 290건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수 미지급 문제에요. 290건은 빙산의 일각일 겁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술인복지법 개정 후 서면계약서를 의무화하고, 불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피해자가 소송을 원하면 변호사 비용과 소송 관련 지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고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일단 선행되어야 할 것이 예술인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는 게 당연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방법을 많이 고민하셨을 텐데요.악덕 사업주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와 피해자 법적 보호, 전반적인 인식 변화 등이 같이 가야 합니다. 과태료나 민사 소송이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덕 사업주를 문화·예술계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고요, 근로기준법에 의해 근로자의 임금이 우선 보호받듯, 제작사가 파산해도 출연자의 임금 채권을 우선 확보할 수 있는 입법도 필요합니다. 또, 예술단체가 국·공립에서 받는 예술활동 보조금이나 프로젝트 지원금 정산 시 인건비를 우선 지급 정산하도록 조건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술인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는 게 당연한 환경은 이러한 법적·구조적 지원과 함께 내부적으로 예술인의 인식, 문화·예술 제작업자의 인식, 그리고 국민의 전반적인 인식이 변화할 때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재단 사업의 수혜자들이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창작지원금뿐 아니라 재단의 거의 모든 사업이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예술활동증명을 마친,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인들의 78%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재단 업무는 모든 예술인들을 같은 정책과 조건으로 대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혜 대상이 수도권에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의 수가 수도권에 많은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지요. ‘찾아가는 서비스’를 확대하고, 지방자치 단체 및 지역의 문화예술 기관과 연계해 지역 예술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사업 계획과 내년에 중점을 둘 사업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것입니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예술인 산재보험과 서면계약서 의무화에 이어서 예술인 모두가 염원하는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의 도입을 위한 고용보험법령 개정안이 지난 달 발의되었습니다. 또 사업신청 시, 제출 서류 간소화를 위해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도 발의되어 있습니다.
통과가 된다면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소득과 재산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많은 서류들이 생략되어 사업신청이 간편해집니다. 또한 불공정관행 개선을 위한 추가 입법건의 등 공정한 예술생태계 조성을 위한 법적 제도화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재단 사업을 확장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 100% 만족을 하진 못합니다. 그건 복지 대상이 되는 예술인이나, 아직 관련 인식이 부족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재단이 생긴 지 이제 4년으로, 말하자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익히기 시작한 신생 조직이라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제도는 개선 및 보완하며 발전하기 마련이고, 특정 목적을 가진 재단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장의 완벽함을 바라기보다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완해가고자 하는 노력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재단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 사라져도 좋은 세상이 예술인들에게는 이상적일 텐데,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결과가 아닙니다. 차근차근 긴 호흡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의 응원과 지지 덕분에 4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도 예술인 곁에서 함께 호흡하고 발전해나가는 재단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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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대진대에서 공연영상학 석사, 상명대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샘터파랑새극장 극장장,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2012년부터 호원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교수로 적을 두고 있다.
주요 연출작으로는 〈리타 길들이기〉, 〈상화와 상화〉, 〈아, 이상!〉, 〈끽다거〉, 〈진짜 신파극〉, 〈윤동주〉, 〈블루룸〉, 〈천년제국 1623년〉, 〈왕은 돌아오지 않았다〉 등이 있다.
예총예술문화상 대상(2008), 서울시문화상(2010), 대한민국연극대상 특별상(2013)을 수상했다.
1957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