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예술과 예술가의 상생을 꿈꾸며
2017. 4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지원과 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경험하고 지역으로 돌아가 역량을 발휘하는 예술가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예술인 복지뉴스〉가 만난 황동윤(국악 전공), 신현재(마술 전공) 씨 역시 서울과 여타 지역에서의 작업 경험을 고향 울산에 어떻게 이식하고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글 김지승 / 사진 이현석
정치경제, 문화예술 전반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지역 문화는 필연적으로 소외되거나 예술의 장(場) 자체가 축소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역 내 예술가들의 작업은 이러한 예술적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데,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활동 범위가 넓어진 것도 그 영향 중 하나이다. 울산을 주 무대로 활동 중인 황동윤(이하 황), 신현재(이하 신) 씨는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제주도에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지역 문화예술이 갖는 제반적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하면서, 지역 예술가의 특별한 역할과 가능한 시도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술가가 작업이나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울산이란 지역이 가진 강점이나 단점이 있다면?황: 장단점이 공존한다. 광역시여서 경제 규모와 문화예술 인프라가 다른 일반 시도보다는 좋다. 반면, 인적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인적 인프라 부족에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기획과 시도를 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예술가들이나 지역 내에서 새롭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울산은 계속 문화예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신: 그렇다. 서울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공연을 통해 지역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내 강점이 될 수 있다.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할까? 그에 반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인구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공연을 해도 지인들이 안 온다. 전반적으로 문화적 소외를 겪으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서울과는 다른 것 같다. 대구나 부산까지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과 누가 공연을 하든 무관심한 사람들이 극과 극으로 존재한다.
황: 그런 면에서 관객 개발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문화 향유의 경험이 쌓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일찍부터 폭넓게 주어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문턱이 높게 느껴지고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문화 향유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몫인 만큼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신: 향유 기회가 부족하고 경험을 쌓기 어렵다는 데에 동의한다. 지내면서 확실히 느끼는 게, 맞다. 전시나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볼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울산에서의 작업이 자유로울 수 있다. 너무 전위적일 필요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섞어서 해보고 싶은 방향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지역 내 다른 예술가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있나?황: 사실 우리 두 사람이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으로 처음 만날 정도로 네트워킹이 잘 안 된다(웃음). 한편, 인적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좁다. 새로운 시도와 협업을 선호해서 청년 신진 예술가들과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데, 선택이나 운영의 폭이 넓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 검증된 팀이나 예술가를 초빙하는 경우가 많다. 5년 정도 지내면서 느낀 건, 지역에 있는 인프라를 육성하고 개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년, 재작년에 뮤지컬 제작을 하면서 젊은 신진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했고, 그들이 이 경험을 발판으로 다른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역할과 계기를 만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일단 지역 인재들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성이 있다.
마술 장르는 어떤가? 다른 장르와의 네트워킹이 더 잦을 것 같은데?신: 그렇다. 옛날에는 무대에 혼자 서서 관객과 호흡하는 장르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처음 연극 작업을 했을 때 다른 출연진과 호흡하는 게 어려웠지만. 협업 경험이 쌓이니 나아졌다. 협업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먼저 연극 속에서 마술 한 꼭지를 맡는 것, 이게 1단계다. 그다음에는 번갈아 두 분야의 비율을 맞춰가는 2단계가 있을 것이고, 가장 이상적인 3단계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 배우들의 이야기와 마술사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거다. 이곳에서는 아직 1, 2단계 정도로 협업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공연에서 다양한 장르가 호흡하며 연결되는 예술 공연을 하고 싶다.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황: 재단 출범 시기와 내가 울산으로 돌아온 시기가 맞아서 재단 사업의 혜택을 많이 받은 편이다. 초기에 창작준비금부터, 학습공동체 사업 등 재단 사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작년에 처음으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예술가가 자기 전공이나 역량을 발휘해서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과 사업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지원하게 되었다.
신: 나 역시 참여 루트는 같다. 그동안 협업 활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사실 경제적 부분이었다.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협업에 대한 비용이나 시간을 예술가 개인이 감당하는 게 아니라 재단과 기업이 지원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평소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다. 또, 매칭을 재단에서 해준다는 것도 메리트다. 같은 마음으로 만나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인정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보통 참여자들이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나 욕망이 달라서 이 과정이 어렵고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마련인데 이 사업은 달랐다.”
울산이 아니라 제주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는?황: 작년 울산에서 한 기업이 사업 참여를 신청했다가 매칭이 안 됐다. 내가 재단 사람인 줄 알 정도로 주변에 재단 사업을 많이 홍보하는 편인데, 사람들을 만나보면 아무래도 보수적인 태도가 깔려 있다. 다른 기업에서 안 하는 걸 굳이 우리 기업에서 왜 하냐는 식이다. 예술가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사업 참여를 경남권에서 알아보았지만 쉽지 않았고 그러다가 제주도 쪽으로 제안을 받았다. 내가 경험을 해야 자료가 생기고, 기업이나 예술가를 설득하기 수월해지겠다는 생각에서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신: 마찬가지이다. 부산과 대구로 지원을 했는데 매칭이 안 되었다. 아무래도 지역에서는 쉽지 않다. 덕분에 비행기 많이 탔다(웃음).
두 분 모두 카페를 운영하는 기업에 파견되었는데, 작업은 어땠나?황: 퍼실리테이터 한 명과 나밖에 없어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내가 매칭을 원했던 곳도 아니고 내가 기업에서 원하는 예술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퍼실리테이터나 나나 진행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리서치 기간이 충분했고, 자체적으로 융통성 있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기업 대표의 사고도 유연했다. 이런 게 파견지원 사업의 좋은 점이기도 한 것 같다. 리서치와 고민 끝에 카페의 음악 부분을 컨설팅하기로 했다. 일반적인 카페 음악 말고, 관광지의 특수성에 맞춰서 전통과 잘 접목해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작업을 했다. 기념 CD를 만들고, 기업 홍보 차원에서 홍보 영상과 공연을 함께 진행했다.
신: 우리는 퍼실리테이터 한 명, 예술인 세 명으로 총 네 명이 함께 작업했다. 파트를 나누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작업에 대해 의견을 낸 후 파트대로 진행했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곳이어서 기존 고객들에게 선물을 전하듯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예술식당’이라는 메뉴를 개발해서 예약제로 운영했다. 테이블 하나만 놓고 마술 공연을 하며 직접 작곡한 음악, 스위치 작동에 따라 소리를 내는 기계, 식욕을 돋우는 색감이 보이는 모니터 등을 활용했다.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이라는 콘셉트였다. 3개월 정도 리서치를 하면서 여유 있게, 충분히 생각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카페에서 일하는 예술가들에게 간단한 마술을 가르쳐준다거나, 홈페이지 작업, 식사 메뉴 개발처럼 각자 개인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고민했다. 한 번 제주도에 가면 며칠은 있어야 하는데, 하루에 3~4시간 회의 후 제주도 계신 분들은 각자 돌아가시고 카페에 나만 남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무실이나 집이 가까이 있으면 작업 소재를 구하기 쉬울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여행자처럼 돌아다니면서 리서치를 할 여유가 생겼다.
파견지원 사업 참여가 기존 작업에 준 영향이 있나?황: 제주도라는 곳이 다른 지역과는 느낌이나 정서가 많이 다르다. 마지막에 단원들과 함께 공연을 하기 위해 움직이며 알아보니 게스트하우스 중에 공연을 해주면 숙식이 제공되는 곳이 있었다. 첫날 그곳에서 옛날 남사당패처럼 공연을 하고 숙식을 해결했다. 그곳 나름대로 새로운 이벤트가 되고, 우리도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색다른 시간을 보냈다. 기회가 되면 한 번씩 그런 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의 문화예술 시장이 열린 셈이라고 할까. 그런 차원에서 좋은 경험이었다.
신: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카페에서 우리가 개발한 메뉴와 작업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이어가도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장르의 예술가들과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좋았다. 이전에는 주로 공연하는 분들과 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작가, 작곡가 등 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작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하면서 내내 즐거웠다. 그런 감정적 경험이 다음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들었다. 만약 울산 내기업에 파견된다면 제주와는 분위기가 다를 텐데, 생각하는 바가 있나?황: 기업이 많은 게 울산의 장점이지만 좀 경직된 분위기가 있다. 아무래도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울산 내에서 기업과 매칭이 성사된 적이 아직 없기 때문에 첫 단추가 굉장히 중요할 거다. 퍼실리테이터가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예술가의 역량을 적절하게 조합해 표본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러 예시나 사례들을 가지고 이 지역에 맞는 방향성을 처음부터 잘 잡아주어야 한다.
지역에서 이 사업을 단기간에 육성하거나 예술가 참여를 늘릴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황: 올해 예술가들의 신청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걱정은 퍼실리테이터 부분이다. 예술가들은 외부 작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퍼실리테이터는 힘들다. 기업이 10개, 예술가가 10명이어도 퍼실리테이터가 5명이면 매칭이 안 되는 시스템이다. 퍼실리테이터가 매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내에 그런 경험자가 거의 없다. 퍼실리테이터가 자생하기 전까지 경험자들이 외부에서 파견을 와도 좋을 것 같다. 참여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협업 경험을 쌓은 이들을 퍼실리테이터로 전환하는 프로그램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신: 참여 예술인으로 3회 정도 참여한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권유하는 방법도 있다. 협업을 해본 예술가라면 사업 참여만으로도 감이 올 거다. 퍼실리테이터가 왜 중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전반적으로 예술가 참여율을 높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도 지인들에게 사업 홍보를 하지만 두려움이나 번거로움 등 여러 이유로 주저한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그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 곧 홍보라고 생각한다.
황: 예술가들은 참여할 기업보다 작업을 위한 이동거리를 우선 고려한다. 그 거리와 시간을 상쇄할 만한 메리트가 기업에 있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싶어 한다. 이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신: 맞다. 예술가들은 주어진 기업을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활동 지역이 서울이라거나 대기업이라는 게 큰 메리트로 다가오지 않는다.
끝으로, 사업과 관련한 평소 생각이나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황: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취지는 굉장히 좋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다만, 선정 후에 기업과 예술가를 매칭하는 사업이다 보니 기업과 예술가의 욕구가 서로 어긋나서 매칭이 안 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수요와 공급이 딱 맞아서 서로 만족스럽게 매칭이 되는 걸 텐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건 제도적인 한계이기도 하고 전국적인 사업이 갖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사업이 지속되고 계속 발전해간다면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시도를 해도 좋겠다.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매칭을 시도할 경우 효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재단 측에서 홍보를 통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신: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홍보를 하고 있겠지만, 인터넷을 잘 못 다루는 분들이나 소외된 지역에 있는 분들이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힘을 써주었으면 한다. 전국 구석구석에서 여러 예술가들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협업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물론 시간이 필요한 일이란 걸 알고 있다. 참여 예술인들이 매년 조금씩 늘고,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또 주변 예술인들에게 권하는 식으로 사업이 몇 해 더 지속되면 예술인의 참여뿐 아니라 예술인들끼리의 교류와 작업 기회도 많아질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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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5년 전 울산으로 돌아와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활동 중이다. 연주 활동과 지역 콘텐츠로 작품 개발에 힘쓰며 다른 장르화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 예술인. 제주 카페 ‘메이비’ 작업
국악 전공. 대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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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활동하다가 2016년 3월 울산으로 돌아와 마술, 마임 공연 등을 통해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지인들과 난타, 마술, 마임, 무용을 한 무대에 올리는 공연을 준비 중이다.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 예술인. 제주 카페 ‘더오이’ 작업
마술 전공. 마술사, 무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