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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과 신진예술인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씨앗’은 예술인들이 예술 외적인 요인으로 예술활동을 중단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제 막 예술활동에 발을 뗀 신진예술인부터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며 자신의 예술활동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예술인들, 그리고 안전망이 부족한 장애·원로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인에게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창작준비금을 통해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자존감 회복을 느꼈다는 4인의 예술인을 만나본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며 많은 주목을 받은 정은혜 씨. 그는 드라마에서처럼 발달장애인이면서 동시에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캐리커처 작가이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창작준비금은 그에게 물감을 사고 캔버스를 살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인터뷰는 정은혜 작가의 어머니이자 만화가로 활동중인 장차현실 씨와 함께 진행했다.
정은혜: 안녕하세요. 저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입니다. 2016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장차현실: 안녕하세요. 저는 만화가 장차현실이고요. 은혜 씨의 엄마이자 보조입니다.
장차현실: 은혜 씨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13년 즈음인데요, 제가 작은 화실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은혜 씨에게 그림을 가르쳐줄 생각을 못 하고 있었어요. 장애가 있으니까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죠. 은혜 씨가 좋아하는 게 있고 그걸 잘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게 저의 큰 실수라고 생각하는데요. 다행히 은혜 씨 스스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아냈죠. 함께 화실에 나와 있는데 어느 날부터 빈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나무도 그리고 풀도 그리고 고양이도 그리고 개도 그리고. 사진을 보면서 연예인 얼굴도 그렸어요. 그걸 보고 주변 사람들이 자기 얼굴도 그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은혜 씨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주변에서 다 좋아해줬어요. 은혜 씨도 재미있어했고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다가 2016년 양평에서 열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에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되었어요. 첫해에만 1,000명 가까이 얼굴을 그렸고, 3년 동안 4,000명의 얼굴을 그렸어요.
장차현실: 발달장애인에게 예술활동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관계망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에요. 언어로 소통이 어려운 은혜 씨는 비언어적인 방식인 그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죠. 지금 은혜 씨는 12명의 동료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데, 그렇게 여럿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어요. 처음에 같이 그림을 그리던 발달장애인 친구가 있어요. 둘이 대화가 별로 없어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둘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웃으면서 엄청 즐거워하더라고요. 한번은 연필이 또르르 굴러서 딱 떨어지는데 둘이서 엄청 웃는 거예요. 너무너무 웃긴 걸 봤다는 듯이요. 저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거든요. 우리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건 비장애인 중심의 생각이구나 싶으면서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동료들이 은혜 씨에게도 필요하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그래서 여러 명이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20살부터 49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발달장애인이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함께 그림도 그리고, 전시도 하고, 우리의 예술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해달라는 목소리도 내고 있어요. 장애인에게 경제적 자립은 중요한데 발달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이 많지 않아요. 청소나 설거지, 커피 바리스타 같은 단순노동만 떠올리죠. 저는 은혜 씨와 동료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가, 예술인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조금 거창할 수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고, 단순히 개인의 변화를 넘어 발달장애인의 노동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요.
장차현실: 은혜 씨가 2019년, 2020년 서울문화재단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을 했는데 2021년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는 데 물감이나 캔버스 같은 재료들을 살 돈도 없고요. 은혜 아빠(지난 6월 23일 개봉한 정은혜 씨의 다큐멘터리 〈니얼굴〉 만든 서동일 감독)가 창작준비금을 받은 적이 있어서 정보를 얻고 신청을 했고 선정이 된 거죠. 덕분에 필요한 그림 재료들도 사고, 전시 준비도 할 수 있었죠. 비장애 예술가인 저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화나 삽화를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요. 발달장애 예술인에게 창작준비금이나 여타의 지원이 없다면 더더욱 창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장차현실: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이나 가족들이 은혜 씨를 종종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부르는데요, 저나 서 감독처럼 예술인 부모가 있다고 그렇게 불러요. 솔직히 저도 저희가 있어서 은혜 씨가 창작준비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 예술인이 혼자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을까요? 그 서류들을 혼자 어떻게 준비할까요. 대신 신청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고 해도 쉬운 일이었을까요. 가족이 예술인이 아니라면 이런 지원사업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거고, 준비도 어려웠을 거예요. 저도 은혜 씨의 아빠도 가난한 예술가라 어떤 지원사업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고 직접 지원도 해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재단 차원에서 은혜 씨처럼 직접 신청이 어려운 분들도 쉽게 신청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정은혜 작가(왼쪽). 6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니얼굴〉.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리며 성장하는 은혜 씨를 볼 수 있다.(오른쪽)
정은혜: 연기를 하는 게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잘 했던 것 같아요. 타고난 실력이 있었어요(웃음). 그동안 그림을 많이 못 그렸는데 이제 다시 열심히 그려야 해요. 제가 저희 집 가장이거든요.
장차현실: 은혜 동생이 18살이에요. 종방연에 같이 갔다가 왔는데 자고 있는 누나를 보면서 작은 소리로 “누나가 존경스러워”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안 하는 아이인데, 많은 상처가 있을 거예요. 친구들에게 누나의 모습을 말하지도 못했을 거고요. 그림 그리고 연기하는 활동들을 통해서 은혜 씨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누나가 된 거죠.
정은혜: 봄, 여름, 가을, 겨울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제가 그림을 그렸던 게 다 담겨 있어요. 많은 사람이 저를 알아봐주고 예쁘다고 말해줘서 행복해요.
장차현실: 그림을 그리는 은혜 씨의 일상이 주된 내용이에요. 3년 넘게 찍은 영상들이죠. 은혜 씨가 가지고 있는 위트와 매력, 당당함 등이 잘 담겨 있어요. 그림을 그리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정은혜: 개인전을 해요. 포옹전. 그동안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어요. 보고 싶었던 사람들, 반가운 사람들, 우리 마을 사람들 그렸어요. 오면 꼭 안아줄 거예요.
장차현실: 8월 23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에서 ‘포옹전’이란 전시를 하는데요, 그동안 찍은 은혜 씨 사진을 찾아보니까 안고 찍은 사진이 많은 거예요. 그 모습들을 모아 그림을 그렸어요.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없었던 그리운 몸짓이 포옹이 아닐까요. 그래서 전시장에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은혜 씨와 포옹을 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걱정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올 것 같다는 건데…(웃음).
정은혜: 적당히 부르자. 적당히. 제주도에서 전시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전시도 해요. 열심히 그림 그리고 전시 많이 해야 해요.
장차현실: 8월부터 12월까지 제주도 우도에서도 인물화 중심으로 전시를 하고요. 9월에는 양평 공장에서 장애인 친구들과 단체전도 해요.
정은혜: 그림 그리면 행복해요. 그림 많이 좋아해줘요.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모두 다 예뻐요.
장차현실: 예술은 은혜 씨의 삶이죠. 발달장애인으로 어디에 속하지 못했던, 주변인이었던 은혜 씨는 예술을 통해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자기 영역 안으로 초대하고 있어요. 홀로 외롭게 있었던 은혜 씨가 예술을 통해 사회적 존재가 된 것처럼 수많은 은혜가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박원빈은 Jazzbear라는 이름으로 일빌른즈(ILLVILLNS)와 플로우엑셀에서 활동하고 있는 15년차 비보이다. 매년 비보이, 비걸들의 축제인 일빌른즈 기념제를 열고 있으며, 축제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박원빈은 올해 JTBC의 브레이킹 서바이벌 〈쇼다운〉에 플로우엑셀 크루로 참가하기도 했다.
김수용 작가의 〈힙합〉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제 또래 댄서들을 보면 〈힙합〉 때문에 브레이킹에 관심갖게 되었단 얘기를 대부분 합니다. 춤은 독학으로 익혔고요. 그때만 해도 학원 같은 곳이 없으니까 청소년센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추다가 잘 안 되면 다른 동네 잘한다는 형들에게 찾아가 배우고요. 그렇게 15년이 되었습니다.
일빌른즈는 ‘나쁜 녀석들’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요. 2012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10년이 됩니다. 저와 Milhouse(최정우), Shinobi(신태종), Jada(이정건), Kimflo(김옥구) 이렇게 5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매해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 ‘ILLVILLNS Anniversary’를 열고 있습니다. ‘ILLVILLNS Anniversary’는 해를 거듭하며 발전하여 국내 비보이, 비걸들의 선의의 경쟁과 단합을 담아내는 축제에서 이제는 해외에서 자비를 내고 참여하는 댄서들도 많은, 규모 있는 큰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매년 열심히 준비하지만 ‘ILLVILLNS Anniversary’는 지자체나 기업의 후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됩니다. 그래서 운영이 쉽지 않아요.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저희가 직접 해요.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대부분 적자였어요. 그래도 정말 많은 팀이 찾는 멋진 행사를 매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행사가 불가능해졌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창작준비금을 받게 되면서, 행사를 머천다이즈 제작과 온라인 콘텐츠로 전환했어요. 그래픽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제작된 아트워크와 그 아트워크를 이용하여 제품을 제작하고 브레이킹 연습할 때 필요한 믹스테이프도 제작하였습니다. 창작준비금이 없었더라면 이런 전환을 모색하는 게 수월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전에도 매년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을 신청했는데 가족 구성원들의 소득인정액 때문에 늘 안됐어요. 제도가 개선되면서 2020년에 처음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죠.
따로 직업이 있진 않아요. 다만 일빌른즈 행사를 하면서 행사나 이벤트 기획 등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래픽도 조금 다룰 수 있어서 행사 포스터, 티셔츠와 같은 굿즈 등의 디자인과 제작을 합니다. 일종의 사이드잡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렇게 예술활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코로나도 끝나가고 연말에는 활동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10주년 ‘ILLVILLNS Anniversary’ 행사도 그렇고, JTBC 〈쇼다운〉이 계기가 되어 공연도 활발해질 것 같은데요. 많은 분이 브레이킹 댄스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고요.
창작준비금 관련해서는, 뭐든 해보려고 아등바등했던 저의 20대 초중반에 이런 창작준비금이 있었더라면 ‘숨통’이 트였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숨통’이라고 말한 이유는 외적인 요인으로 주춤하게 될 때 ‘아, 조금 더 해봐도 되겠다’, ‘더 해도 된다’라는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에요. 주변의 댄서들이 그런 경험을 누리길 바랍니다.
한국 디지털아트계의 독보적 작가인 오진국 화가(73)는 한국미술진흥원 선정 한국을 빛낸 대표작가 40인(2021), 문화예술 혁신공로상(경향신문) 등 수많은 수상 경력과 다수의 전시회를 연 원로예술인이다. 또한 그는 20년 넘게 매일 11시간 이상 작업으로 5,400여 점의 작품을 만든 성실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디지털아트를 넘어 디지로그(Digilog,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 그리고 NFT아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 노예술가는 오늘도 컴퓨터와 붓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디지털아트를 했습니다. 제 나이 오십에 디지털아트를 시작하여 20년 넘게 풍경화, 정물화, 추상화, 인물화, 반추상화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제 작품이 총 5,400점인데, 그 중 70%가 디지털이에요. 또 디지로그 작업을 합니다. 이 단어를 만든 고 이어령 전 장관께서 제게 앞으로 세계 미술시장의 가장 큰 무기는 이 디지로그가 될 거라고 하셨어요. 일종의 크로스오버 미술인데, 아날로그로 작업한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디지털화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주로 아날로그 작업에 더 매진하고 있는데요. 일종의 혼합미술을 추구합니다. 캔버스 위로 나무와 한지, 철제 링 등 다양한 오브제를 적극 도입해 작업을 하고 있어요.
15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선보인 작품 중 ‘머나먼 여정 NFT’가 대표적이죠. 이 작품은 제가 20년간 작업한 5,400여 점을 모두 집대성한 작품이에요. NFT아트라는 것은 일종의 신미술 시장입니다. 미술작품을 데이터 분할을 해서 온라인에서 사고파는 거죠. 데이터가 곧 원본인 디지털아트의 속성 때문에 유일한 정품의 예술품을 구입한다는 게 일종의 매력처럼 여겨졌지요. 그러나 NFT아트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많아요. 실제 작품을 판매한 성공사례에 비해 NFT아트를 취급하겠다는 거래 플랫폼들만 투자를 받고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지요. 좀 더 검증이 되어야 해요.
저는 그것을 자기원류(自己原流)로 봅니다. 연어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강으로 회귀하는 본능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원류를 갖고 있다고 봐요. 자신만이 해야 하는 일, 소명 같은 게 있는 거예요. 사람이란 존재는 하기 싫은 일을 하면 굉장히 피로도가 커집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런 게 없어요. 저더러 컴퓨터로 엑셀 작업을 하라고 하면 하루에 4시간도 못할 거예요. 그러나 작업을 위해서라면 하루 12시간도 안 힘듭니다. 명절 같은 공휴일에도 작업실에 나오는 게 즐겁습니다. 머릿속에 작업 생각밖에 없으니까요.
화가는 그림을 팔아야 먹고 삽니다. 쉽지 않죠. 전시회 한 번 열려면 1,000만 원이 넘게 듭니다. 또 재료비도 만만치 않아요. 생활비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즈갤러리라는 회사를 내고 아트마케팅을 합니다. 하나는 렌털 사업이에요. 소정의 비용을 내면 디지털 그림을 액자에 넣어 렌털을 해주되 3개월마다 그림을 교체해줍니다. 제 작품만이 아니라 여러 작가를 회원으로 모집해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 2008~2012년 기획재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동의대학교와 산학협동의 일환으로 섬유디자인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프린트하여 원단을 만들고 의류, 스카프, 우산 등 패션상품을 만들 수 있게 협회와 기관과의 협업을 시도하려 합니다.
100호짜리 작품을 하나 작업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 여러모로 창작준비금이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갤러리들이 문을 많이 닫고 미술시장도 극도로 위축되던 시기에 이런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예술인들에게는 작업할 힘이 나게 만들거든요. 앞으로도 재단이 예술인에 대한 이런 뜻깊은 지원에 앞장서주었으면 합니다.
사실, 저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런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고 또 신청도 간편하게 했지만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원로들이라면 지원사업 신청도 문턱이 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직접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요. 이런 부분에 좀 더 도움이 있다면 더 좋을 거라 생각되고요. 한 가지 더, 원로라고 무조건 주는 것보다는 정교한 지원을 했으면 해요. 한 달에 그림을 채 10시간도 안 그리는, 취미 삼아 하는 사람도 작가라고 지원하기보다는 정말 열심히 하는 작가들에게 지원이 갔으면 합니다.
김연정 씨는 독립 애니메이션 〈트루러브〉, 〈먼 곳까지 찾으러 갔으나 여기에 있었다〉를 제작한 감독이자 독립출판물 《모스크바 여행기》, 《김웃의 세계여행 컬러링북》을 펴낸 작가다. 최근에는 NFT 기반의 디지털아트 〈광화문광장〉을 선보이며 장르와 형식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작년 하반기 신진예술인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씨앗)에 선정되어 예술활동에 더욱더 힘을 얻었다고 말하는 7년차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났다.
여행과 일상에서 발견한 행복을 만화나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등 이야기가 있는 다양한 작업으로 선보이는 스토리텔러 김연정입니다. 작업 형식보다는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한 사람이고,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해졌다는 말을 들을 때 저 또한 행복해지게 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창작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대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막막하더라고요. 예술계에 첫발을 내딛었던 당시에는 학원 강사나 외주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어요. 작업을 위한 시간도 돈도 너무 부족했던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도 제 작업을 응원해주는 분들 덕분에 힘을 얻어서 꾸준히 작업할 수 있었어요. 예술인을 돕는 기관 지원사업 등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는 작업을 하는 저에게 코로나19는 타격이 컸어요. 강의나 외주 작업 의뢰도 줄어서 생활비 마련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당시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대신 함께 여행을 이야기하는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비용이 없었어요. 고민하던 중에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선정되어서 2021년 9월, 복합문화공간 하우스 서울에서
▲〈DIVE, 잃어버린 여행을 찾아서〉 전시에 선보인 작품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게 해준 원동력이죠. 창작준비금으로 머릿속에 그리던 작업을 구체화하면서 ‘내가 능력이 없어서 못했던 게 아니었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작품에 대한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 호주 여행기를 주제로 한 실험적인 전시를 구상중인데요. 작년에 진행한 전시도 잘 마쳤으니 다음 전시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해요. 창작준비금이 이런 긍정적 마음을 갖게 해줬죠.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못하던 신진예술인들에게 창작준비금은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주고,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펼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요. 창작준비금으로 경험한 작은 성공이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거든요. 그렇게 한 걸음씩 꾸준히 하고 싶은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자신을 응원하는 팬도 만나고 스스로도 예술인으로서 긍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지원사업에 도전해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