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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어느덧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년,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고 뒤이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담론들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면, 올해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예술계에서는 누적되는 피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구를 모색하며 견뎌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인 복지와 관련해서는 주목할 만한 행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먼저 2020년 12월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본격 시행되었고, 2021년 11월 기준 보험가입 예술인은 9만 명을 넘어섰다. 아직까지 예술인 고용보험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있기는 하나 그간 프로젝트 단위 고용으로 일반 고용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존재했던 예술인들이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보호장치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둘째, 작년에 이어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 예산이 확대되어 총 2만4,000명의 예술인이 창작준비금을 지원받았고1), 특히 경력이 없는 신진예술인들에게 진입장벽이 높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예술경력 2년 이하의 신진예술인들 또한 생애 1회, 1인당 창작준비금 200만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시중 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예술인을 위한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융자도 확대되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예술인들이 긴급생활자금 융자로써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예술인 복지정책의 확대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버팀목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장 큰 변화는 2019년 4월 20대 국회에서 최초 발의되었으나 폐기되고, 2020년 다시 수정발의되었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2021년 9월 24일 제정된 것이다. 2015년부터 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블랙리스트 사태와 2018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미투 운동의 결과물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 보호,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의 신장,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과 조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의 신설과 예술인보호관의 지정, 예술인권리침해 등에 대한 구제 관련 조항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제정은 예술인에 대한 지원정책의 방향이 ‘낮은 소득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예술인의 구제와 복지 지원’을 넘어서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와 지위의 보호 및 보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의 중요한 행보는 「예술인복지법」 제4조의2에 근거한 법정계획인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복지정책의 필요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예술인복지법」 제정(2011년)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2012년)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인복지정책이 추진된 지 10년이 흘렀다.
그 10년 동안 예술인복지정책 예산은 2012년 3억 6천만원에서 2021년 약 1098억원으로 급격하게 증대되었고, 정책의 영역 또한 예술인 긴급복지지원, 사회보험료 지원, 공정생태계 조성 등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직업인으로서 예술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토대로 한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 보장의 관점보다는 협의의 복지정책 프레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나, 정책대상으로서 예술인의 정의와 기준에 대한 논란, 예술활동의 복합적 특성과 다양한 형태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점, 재정기반이나 타 분야와의 협력체계의 취약성, 지역분권에 대한 미흡한 준비와 사회적 지지기반의 취약성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이러한 한계는 예술인 복지정책이 중장기적인 비전과 로드맵에 따라 추진되기보다는 급변하는 시류 속에 그때마다 불거지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사업이 신설되거나 변화되어왔다는 점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양적 팽창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 안목과 전략에 기초한 방향성의 설정, 실효성 있는 추진체계와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되어 왔다. 특히 그러한 측면에서 중장기계획 수립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은 2022년~2026년까지 향후 5년간 예술인 복지정책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와 지방차지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예술인 복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법정 기본계획이다. 특히 이번 기본계획은 첫 번째 기본계획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기존 사업의 재배치를 넘어 향후 5년에 걸쳐 진행될 예술인 복지정책의 새로운 틀(framework)의 구축이 필요하며, 일방적인 하향식 결정이 아니라 예술현장 관계자들의 참여와 예술계 내부에서의 논의와 소통을 통해 상향적(bottom-up)이고 참여적 수립과정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수립 연구』가 진행되었다.
2021년 2월~8월까지 약 7개월 동안 그간 우리나라 예술인 복지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예술인 복지정책을 둘러싼 환경변화 분석을 수행하였다. 또한 현장 예술인의 예술인 복지정책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예술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현장예술인 및 관련 전문가, 관계기관으로 6개의 분과위원회(38명)를 구성하고 약 27차례의 분과회의와 현장 예술인 간담회, 전문가 자문을 거쳐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에 담겨야 할 비전과 방향, 목표, 주요추진전략과 정책과제(안)를 도출하였다.2) 이후 관계 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2022년 상반기에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이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2022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3월에는 제20대 대통령선거, 6월에는 제8회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변동은 또 다시 예술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그간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던 발자국을 지워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 9월 시행 예정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상징적 수사에 멈추지 않고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권리보호 기구의 구성, 규정된 조사,조정, 시정조치 등에 대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의 제정, 제도변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의 확대가 지금부터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정치적 지형과 권력의 재편에 의해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2022년부터 시행될 제1회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의 수립과 발표, 그리고 이를 제대로 집행하고 실천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가올 2022년이 예술인 복지의 새로운 원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