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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0 2019. 4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대화 예술인을 만나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망고서림〉팀

우리가 사랑했거나 사랑하는 것들

2018. 10

대화는 시종일관 즐거웠다. 퍼실리테이터와 다섯 명의 예술인들이 문화의 달을 맞아 한 시기에 좋아했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고 할 때 예상 가능한 분위기보다 한결 가벼웠다. 타 장르나 다른 예술인 앞에 ‘인생에서 가장 ○○한’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힘든 이유를 화제로 시작한 대화는 어떤 ‘척’이 없이 솔직하기도 했다. 우리는 강지윤 씨의 “한때 영향을 받고 좋아했던 무언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허점들을 드러낸다. 굉장히 좋아했던 작업들도 지금 가치관으로 보면 윤리적인 허점이 보인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완벽히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이를 앞으로 나눌 이야기의 기본 전제로 삼았다. 어떤 시절에 예술인의 세계와 근접하거나 완벽하게 그 세계를 구현한 듯 보였던 무엇이 지금은 옛사랑처럼 멀어진 상황은 흔했다. 그러므로 첫 질문부터 우문이었다. 다행히 〈망고서림〉팀의 답변은 질문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했고. 글 김지승 사진 이현석

대화 개인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장르와 예술인

이경미(문학/전시기획): 영화 〈그녀에게〉 속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카페 뮐러〉 공연 장면을 보고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신체 움직임을 통한 공감각적인 표현이 그동안 미술 장르에만 한정되었던 내 사고를 확장시키는 듯했다. 특히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라는 피나의 말은 예술작품 자체의 미적 요소 혹은 표현보다 이를 둘러싼 무수한 콘텍스트(context)와 관계들을 고려하는 시각을 던져줬다.

강지윤(미술): 최근에 동시대 한국 현대 소설가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잘 몰라서 단편집이나 수상작품집을 많이 읽었다. 유독 마음이 끌리는 건 젊은 여성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잔인할 정도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담담했다. 내가 하는 작업 역시 그들이 표현하는 심리나 감정에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더 울림이 컸던 것 같다. 정적인 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동적인 무언가를 동경하거나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상징적으로 덩어리 하나가 나오는 설치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문학처럼 내러티브가 있는 것들에 좀 더 끌리는 걸 수도 있겠다.

송주원(무용): 댄스 필름 작업을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코엔 형제의 〈파고〉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영화들 말이다. 블랙코미디 요소가 있다고 할까,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할까. 삶처럼 전조 없이 무방비로 당하는 상황과 극단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반면, 〈8월의 크리스마스〉, 최근 〈미스터 션사인〉 등 동화적이면서 유머가 있는 작품에 관심이 많다. 상반된 작품들 같지만 코엔 형제의 작품도 특유의 유머를 담고 있다. 또, 기형도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춤이란 매체가 가진 상징성은 많은 장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피나 바우쉬가 등장하는 영화 〈그녀에게〉를 보면서 영화적인 상상과 환상을 무대나 댄스 필름 안으로 어떻게 가져올 수 있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걸 봐도 그렇다.

정정호(사진):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op 131〉에는 인간의 복합적인 온갖 감정들이 다 들어있다.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그 감정들을 곡 안에서 자유롭게 다루는 태도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예술성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예술관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음악을 들으면서 자주 한다. 그 기준에서 나를 돌아봤을 때 종종 좌절도 하면서 음악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원호(시각예술): 다른 예술 장르는 깊게 잘 모른다. 언젠가 독일의 한 안무가의 안무를 보고 무용이라는 것에 대해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안무가와 협업을 해보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다른 장르보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건들에 오히려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작업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도 이게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나 무엇이 예술인가 정의하기의 불가능성에 대한 접점이다.

이창훈(시각예술): 그때그때 영향을 준 건 있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장시간 빠졌던 건 음악이다. 지금은 또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감을 받든 안 받든 시각예술을 하는 작가들 대부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지루함을 느낄 때가 많아서 음악에 의지하는 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작업을 하면서 클래식 음악에는 편안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다. 한 곡을 연주자들이 각각 어떻게 다르게 연주했나 그 차이를 느끼면서 듣다 보면 한 음악이 변주되는 양상이 작가 입장에서는 재미있다. 작품이 내 손을 떠났을 때 각자 느낌대로 해석이 가능해지며 알아서 굴러가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고 작업에서 지향하는 것과도 닮았다. 한 곡을 꼽자면 1942년 푸르트뱅글러 지휘로 히틀러 생일에 연주된 〈베토벤 교향곡 9번〉 실황 공연이다. 시대의 암울함과 맞물려 환희에 찬 듯하면서도 절망이 느껴진다.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곡이다.

스스로 팬이라고 할 만한 작가와 작품

이경미(문학/전시기획): 무라카미 하루키와 민정기 선생님. 특히 직접 뵐 기회가 있었던 민정기 선생님의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성실하게 살고 있는 태도와 명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기 작업을 당연히 해야 하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 태도가 인상적이다.

강지윤(미술): 아이돌을 좋아한 적도 없다. 어릴 때도 그게 잘 안 됐다. 누가 너무 좋다가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나마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 음, 소피 칼(Sophie Calle)?

송주원(무용): 나는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내 작업에 출연하는 무용가들의 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앞서 안은미 선생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불도저나 전사처럼 자기 이야기를 해나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나가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 같다. 피나 바우쉬도 정말 좋아한다. 피나의 작품에는 삶과 감정, 상황에 대한 고민과 제안들이 많다. 그로테스크한 면이나 드라마적인 부분, 무대의 아름다움 모두에 진심으로 열광한다.

이창훈(시각예술): 좋은 작품들은 많은데 그 정도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작가는 드물다. 주변 작가들도 나름의 인생작들이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볼 때 최고 정점의 작품이라 할 만한 게 있다. 그러나 그런 작업이 계속 연달아 나오긴 어렵다. 예전에 공부할 때 유독 좋아했던 작가가 있었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중요시하던 시절에 공부해서이기도 할 거다. 특히 이우환 작가가 그런 물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이우환 작가의 조각작품이 주는 감동이 컸다. 국외 작가로는 독일의 팀 울리히스(Timm Ulrichs)가 있다. 특유의 논리적인 작업 방식에 지적 충격을 받았다.

이원호(시각예술): 좋아하는 작가로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us), 한스 하케(Hans Haacke)를 들 수 있다. 페인팅 전공인데 영역들을 벗어나 경계를 넘어서 시도할 수 있었던 데는 보이스가 한 인상적인 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캔버스를 짜는 순간 벌써 하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작업에 앞서 프레임을 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등 작업 방향에 큰 영향을 줬다. 한스 하케 같은 경우는 어떻게 정치를 예술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해 깊은 인상을 줬다. 한국에도 좋아하는 작가가 많다. 한 명만 꼽으라면 30대 중반에 만난 노순택이란 작가다. 그의 사유를 접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적 장르의 만남이 아니라 삶 속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만남이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타 장르 예술인과의 협업

이창훈(시각예술): 내 작업만으로는 할 수 없는, 못했던 작업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즐겁다. 협업이라는 방식은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도 일정 부분 자유롭다. 상상만 하고 남들 시선 때문에 시도해보지 못했던 걸 자유롭게 해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는 언젠가 예술인 개인에게 필요한 자세 같다. 내가 나를 전복시키거나 하고 싶었던 걸 하는 용기는 내 작업에서도 필요하다. 차마 내 작업에서는 내지 못했던 용기를 협업을 통해서 한 번쯤 저질러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 다시 내 작업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 경험들은 좋은 영향을 준다.

정정호(사진): 같은 곳에 있는데 현장을 바라보는 지점들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배울 수 있다. 함께하고 있는 안무가가 무언가 얘기할 때 신체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나, 시각예술 작가가 공간 자체를 보면서 비평의 여지가 들어갈 부분을 찾는 것 모두 도움이 된다. 그래서 파견지원 사업이 항상 즐겁다.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났다.

송주원(무용): 늘 협업을 하고 있고 주로 같은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이는 편이다. 설치미술 작가들과 작업을 하더라도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한다거나 그들이 만들고 싶은 것에 내가 피사체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다 열어놓고 이야기한다. 개념이라든지 각자 느끼고 생각하는 부분을 같은 선에서 나누는 게 재미있다. 어떤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생각이 확장되거나 시야가 달라진다. 늘 해왔던 협업인데도 올해 협업에서는 또 다른 기분을 느낀다. 작년, 재작년에도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했다. 그때는 그냥 내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어 좋다. 반갑고 좀 더 오래 하고 싶을 만큼 즐겁다. 활동 기간이 너무 짧다. 1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강지윤(미술): 같은 장르의 작가나 기획자들과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많이 했다. 처음 송주원 선생님을 만나고 미술계에는 없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몸을 쓰는 사람이 가진 태도랄까, 그게 시각예술 쪽 사람과는 굉장히 다르다. 놀랍기도 하고, 몸을 쓰는 사람의 에너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송주원(무용): 회의하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더니 “이건 어때요?”하고 묻는 건 나도 신기했다. 확실히 다르다. 보통 일 때문에 모이면 예상 가능한 대화들이 오가는데 여긴 예상 밖의 이야기들이 많고 그게 또 즐겁다.

이경미(문학/전시기획): 매칭된 기관이 뚜렷한 목적으로 명확한 골을 요구한 게 아니라 완전히 열린 상태로 기관과 함께 찾아가는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 동네 서점과 우사단길이라는 환경을 살려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조율하고 맞춰가는 방식이 재미있고 함께하면서 많이 웃고 있다. 지역, 기관, 예술인의 관계와 조율의 과정이 나에게는 협업에서 가장 중요했다.

이원호(시각예술): 협업은 많이 하고 있다. 여기 와서도 협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각자 경험의 수평적 확장 또는 형식의 확장이 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로가 가진 개념, 시각들이 모여 용해되어서 수직적인 발전이 되길 바란다. 개념 자체가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처음부터 형식적인 결합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시각을 이해하는 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면이 좋다.

이경미(문학/전시기획): 향후 첫 번째 협업은 송주원 작가님과 우사단을 배경으로 한 댄스필름 시나리오 작업이 될 것 같다. 5월부터 리서치한 지역에 대한 자료와 인상, 추가적인 주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남은 사업 기간 동안 함께 만들어볼 생각이다.

2018년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향후 계획

이창훈(시각예술): 10월 31일에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망고서림 대표의 추상적인 니즈에서 시작된 것인데, 우사단길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분위기와 독특한 느낌 등이 사라지기 전에 예술인들이 경험하고 그것들을 기록해서 보여주는 작업을 하길 바랐다. 시각적이고 역사적인 기록만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직접 감각하길 원했다. 그동안 예술인들이 보고 느끼고 조사하고 모은 결과물들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확정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남아 있지만 망고서림 대표가 거리를 소재로 한 짧은 글을 쓰고, 그 글을 모티프 삼아 참여 예술인들이 작업하고, 망고서림 외에도 우사단길의 다른 상점들이 적절한 시공간을 제공해줄 계획이다.

대화

문화의 달을 맞아 〈망고서림〉 팀이 추천한다


이경미(문학/전시기획): 짐 자무쉬의 〈패터슨〉. 생활 안에서 예술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버스 기사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해 시를 쓰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닿아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그 안에서 나오는, 의사이면서 시를 쓴 실존 인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 시인을 찾아보고 감동을 받았다.
“어떤 예술인에 대한 동경이나 무조건적인 애호를 기억하기보다 한 시절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집중해서 파고들었던 자신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 같다.”

송주원(무용): 봄, 5월에는 현대무용축제(Modern Dance Festival)가 있고 가을에는 항상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가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도 좋은 공연이 많기 때문에 꼭 보면 좋겠다. 안은미 선생님 얘기를 한 번 더 해야겠는데, 20대 초반에 선생님의 무덤 시리즈 등을 봤고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와 최근에 ‘북한춤’ 작업에 이르기까지 믿고 보는 공연으로 추천한다.
“쉽게 사랑에 빠지지만 흔한 감정은 아니다. 대상마다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강지윤(미술)·이창훈(시각예술): 박이소 작가 전시를 추천한다. 아직 못 본 전시라 우리가 보고 싶은 전시이기도 하다. 기존 박이소 작가 전시보다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더란 말을 들었다. 꼭 보고 싶은 전시다.
“예전에 감흥을 주던 것들을 다시 볼 때 복잡한 생각이 든다. 어떤 것들은 지나치고 어떤 것들은 부족하다. 어떤 것도 완벽하게 좋아지진 않는다.” 강지윤

정정호(사진): 〈메이플쏘프(Mapplethorpe)〉 영화를 꼽고 싶다. 흥행도 안 되었고, 외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선정적이지만 영화를 보게 되는 순간 어떤 선정성은 미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편견을 지울 수도 있고 예술가의 욕망과 치열한 작업도 같이 같이 볼 수 있다.
“좋아하는 클래식 LP 초판을 수집하는데, 60~70년대 찍힌 LP 판의 카탈로그나 라벨 인쇄 등을 보면 옛 기술의 우수함을 느낄 수 있다.”

이원호(시각예술)·송주원(무용): 아! 김중업 건축가 전시,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도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더라.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무엇이 예술인가 혹은 예술이 아닌가는 곧 예술과 일상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계속 질문하고 계속 고민 중이다.” 이원호

대화 박이소 전시. 김중업 건축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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