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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뉴스

집중 기획 예술인의 창작

창작은 ○○이다

2019. 4

창작은 예술인이 가진 미의식의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인 활동이다. 이 활동을 통해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데, 그 본질에 대한 예술인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작품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들에 의하면 창작은 모방이고, 고통이며, 질문이자, 사랑이고 또 그 밖의 무엇이고 무엇이 아니기도 하다.

  • 모방
창작은 모방이다

예술의 본질을 자연 또는 현실 모방이라고 보는 태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리스부터 긴 시간 서양 예술사를 지배해왔다. 창작이 일어나는 원인을 ‘모방 충동’으로 가정하기도 했다. 예술창작이 현실과 세계를 바탕으로 넓은 의미의 모사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사전에 창조의 반대말이 모방과 답습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 이 점을 당연하게 여기는 건 예술인들만인 것도 같다.

창작이 모방이라는 명제는 창작 본질상의 모방설과 자연스럽게 만나긴 하지만 표현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며, 상상에 의한 자유로운 미적 창조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모방설과는 바로 그 점에서 갈라진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하긴 해도 제대로 모방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인성 소설가 작품을 흉내 내면서 소설을 시작했다는 김중혁 소설가는 “나쁘게 말하면 도둑질, 좋게 말하면 영향을 받은 거”라고 말하며 모방과 답습을 거쳐 창조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가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음악에서 파란색과 녹색을 느끼고 스트라빈스키(Igor Fyodorovich Stravinsky, 1882~1971) 음악에서 17세기 중국을 상상하는, 그 공감각적 상상력이 말 그대로 힘이자 창작의 열쇠인 셈이다.

모방은 그 상상력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할지 모른다. 모방 이전에 원본에 대한 공감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러한 공감에는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모방은 단지 시작 단계에 불과하고,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경험을 종합하는 과정이 바로 창작이 되는 것이다. 즉 경험은 대부분 모방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새롭게 종합하는 과정으로 예술인은 자신의 창조성을 빛낸다.

  • 고통
창작은 고통이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차를 끌고 두부를 사러 나간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 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힘들게 창작한 자기 작품이 형편없게 느껴지는 건 물론이고, 자신을 하찮은 작곡가라고 비하하게 된다고 하면서 창작의 고통을 ‘벌레가 되는 것’에 비유했다. 그렇다. 창작은 고통스럽다. 우선 긴 호흡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바로 자신을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간은 현실 세계의 이미지를 자기 뇌 속에 가지고 있다. 자기 식대로 특징만을 유추하여 조합한 이미지다. 예술인은 뇌 속에 있는 이미지 속에서 세계의 특질을 찾아내 재현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 실패와 결핍, 좌절로 점철된 발견과 재현의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그냥 고통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뼈를 깎는 고통, 작여삭골(作如削骨)이라는 창작을 그렇다면 왜 하는 걸까? 쉽게 생각하면, 고통을 넘어서는 희열이 있지 않을까?

창작이 고통이라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며 큰 이의가 없는 듯한데 희열에 대해서는 예술인들의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고통 후 짧은 희열을 포기할 수 없다는 예술인이 있고, 고통 자체에 희열이 섞여 있다는 이들도 있다. 드물게는 고통이나 희열 없이 지극히 이성적인 동기로 창작을 이어가는 예술인도 있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는 “창작 의욕은 좋은 조건에서도 나쁜 조건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통과 희열은 정반대의 감정인 것 같아도 둘 다 창작을 거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 질문
창작은 질문이다

창작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하며, 예술인은 작품을 통해 우리 삶에 질문을 던진다. 예술인은 그 질문을 비밀스러운 사유와 감각들을 동원해, 창작 과정에서 내내 끌어안고 확장하거나 면밀히 세공한다. 창작에 대해 쓴 수많은 책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단 하나, 창작이 오직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무엇보다 창작을 위한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그건 바로 호기심과 질문을 생성하는 능력일 거라고 정리하는데, 말하자면 예술인은 그 능력을 이용해 애초에 누구도 가르칠 수 없는 예술을 독자적으로 배워나간다.

프랑스 극작가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09~1994)는 예술의 본질이 세상에 직면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고 하면서 「발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작품은 일련의 대답이 아니라 일련의 질문이다. 작품은 설명이 아니고 설명의 요구이며 해명의 요구이다. 시인은 남들이 문제를 보지 못하는 곳에서 문제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창작은 세계와 인간 조건에 대해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시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창작한다. 그 질문을 세상을 향해 증폭시키기 위해서. 한편, 전문가들은 4차 산업 혁명 이후 답은 컴퓨터가 하게 되고 인간은 질문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질문을 생성하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인들의 질문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다.

  • 사랑
창작은 사랑이다

창작 기술은 뛰어나지만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면 우리는 창작자에게 질문할 수 있다. 당신은 창작 대상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무엇인가를 많이 사랑하지 않고서 창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 한해서만 깊이 이야기할 수 있다.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속도의 세상에서는 안타깝게도 깊이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Eros)는 사랑의 신이면서 창작의 열정을 옮기는 존재였다. 에로스 자체가 훌륭한 시인이며 모든 예술에서 뛰어난 창작자였던 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모든 창조와 창작의 과정에는 에로스의 손길이 닿았다. 그 사랑과 욕구에 힘입어 인류는 존속해왔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이요당(李尧棠, 1904~2005) 시인은 일찍이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문학 창작을 할 수 있는 것은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다.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나라와 이웃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다.”라고 했다. 창작이 사랑이라는 건 역설적이게도 창작이 고통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고서는 그 고통을 끈기 있게 버텨내기 힘들지 않을까. 사랑이 곧 창작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건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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