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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1

202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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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예술만을 위해 고립되지 않는 삶을 위하여
남궁인(글 쓰는 의사)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12년째 의사로 일하고 있다. 사회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응급실에서 보냈다. 이곳은 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 평균 150여 명의 환자가 보호자 두세 명과 함께 방문한다. 치료를 위한 다양한 직종의 의료진 또한 2교대나 3교대로 쉴 새 없이 출퇴근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사에겐 절대적으로 대단히 많은 업무가 주어진다. 환자 하나하나 차트를 열어서 오더를 넣거나 결과를 확인하고 의학적으로 분석한 뒤 환자와 보호자를 불러 소견을 설명하고 입원이나 퇴원을 지시하는 등의 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서로 끝없이 전화를 걸거나 받고 직접 대면해가면서 업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기에 인사와 안부를 묻는 일은 기본이고, 가끔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할지도 모르는 직장, 그러나 동료가 있다

응급실 일은 끔찍한 편이다. 어쩌면 세상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직장 중에서 가장 끔찍할지도 모른다. 크게 다친 사람, 슬픈 사람, 죽은 사람이 모두 넘친다. 괴성을 지르는 사람은 언제나 있을 정도다. 그곳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정신의 안위를 염려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물론 건강하다고 답하지는 못했고 실제로 그리 정신적으로 건강하지는 않았다. 나는 상당히 우울한 성정의 사람이었으며,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정서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응급실 업무 중에 정신적으로 힘겨움을 느낀 적은 많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끝없는 일이 부단하게 주어지고 육체적인 피로가 우선적으로 찾아온다. 하루 걸러 하룻밤을 새우는 피로 속에서 끝없이 누군가와 질문하고 답변하며 책임을 짊어지고 차트를 기록하는 와중에 우울함까지 찾아내기는 벅차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정신없이 잠이 들거나 술을 마시고 생각을 흩어버리기에 바쁜 삶이었다. 다음으로는 같은 처지의 많은 동료들이 곁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지식 세계를 공유하고 공통의 목적으로 동일한 일을 견디면서 힘겨워하는 소중한 동료였다. 우리는 매일 직장에서 근황을 털어놓거나 농담을 주고받았고 힘든 일을 나누면서 서로의 경조사를 챙겼다. 일은 육체적으로 힘겨웠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되는 존재가 항상 곁에 있었다. 우리가 같은 팀으로 묶여 있지 않았으면 하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이것들은 끔찍한 직장을 견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성적으로 피로했던 레지던트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후 나는 공중보건의가 되어 응급실을 떠났다. 3년간 지방 도시에서 살면서 소방재난본부로 출퇴근했다. 새로운 직장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업무는 주로 사무실에 앉아 유선상으로만 이루어졌다. 난생처음으로 여유가 생기자 이전까지는 취미에 불과했던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부러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매일 읽고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좋게 책을 발간하고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한 직업의 세계에서 다른 직업의 세계로 건너간 셈이었다.
지면과 분량과 마감일자를 받고 정해진 기일 내에 원고를 제출한 뒤 고료를 받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프로 작가의 세계였다. 반복된 퇴고를 마치고 원고가 인쇄되면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잡문을 기록하거나 미리 다른 원고들을 써두면서 문학적으로 다른 시도를 해야 했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일상 또한 기록해두어야 했다. 언젠가부터 마감이 없는 날은 거의 없었고 써야 할 글이 없는 날은 아예 없었다. 기록하는 강박과 동시에 감정을 활자로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나는 점차 ‘예술’의 세계로 몰입하고 있었다.

정신의 열상을 남기는, 외롭고 고된 예술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워졌다. 작업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하얀 백지에서 글자가 채워진 원고를 만들기까지 필요한 것은 오직 나 혼자였다. 독자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하자 글에 모든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슬픈 대목에서는 실제로 울었고, 우울한 대목에서는 일부러 위험한 경지를 오갔다. 나는 어디에 있든 줄곧 글감을 구상하며 읽고 썼으며 대체로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대신 평소 같았으면 피하거나 잊어버렸을 감정의 지점을 정면으로 맞상대해서 써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우울한 성정이었지만 이전까지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직접적으로 위태로움을 느낄 정도로 정신이 연약해졌다. 나약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잊지 않고 마주하는 일이 육체적인 품이 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조금씩 무엇인가를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이었다면 털어버렸을 정신의 열상이 회복되지 않고 영원히 남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더욱 극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마음의 건강은 신체의 건강과 직결된다. 우울 삽화나 공황장애가 찾아오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응급실에 찾아와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수많은 환자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무렵 응급실로 돌아왔다. 그곳은 여전히 살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시 환자를 마주하고 동료들과 하루 종일 대화하며 육체를 소모했다. 업무의 험난함과는 반대로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일은 편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들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괴로운 생각이 줄어들었다. 오래도록 불면에 시달리던 나는 퇴근 후에 돌아와서 즉시 깊게 잠들었다. 잠에서 깨면 개운하고 약간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예술을 위해 고립되지 말 것, 동료 예술인과 함께할 것

지금 나는 대학병원에 출근하면서 두 가지의 직업을 병행해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업 예술의 위험성을 배웠다. 둘 다 감정적 소모가 커다란 직업이지만, 육체적인 활동과 곁에서 지탱해줄 사람들의 존재는 결정적이다. 게다가 의업은 정해진 일을 규정 내에서 수행하는 방식에 가깝지만, 글쓰기는 예술의 영역이기에 항상 독창적이거나 변화하거나 향상된 모습이 요구된다. 글을 한 편 완성하기까지는 무한한 고뇌와 끝없는 수정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환자는 한 명씩 만날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많은 익명의 독자를 동시에 만난다. 훨씬 더 다양한 반응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날선 반응은 유약한 정신을 공격한다. 지금도 너무 지나치게 글에 몰입하다 보면, 응급실에 출근해 정신을 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반대쪽 일이 없었더라면 글쓰기 또한 오래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대화를 확장시키고 이어나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예술적 고립은 경탄할 만한 작품을 낳기도 하지만 거꾸로 본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내게는 다수의 의료계와 예술계 지인이 있다. 정신적 부침을 고백한 사람의 비율로는 당연히 예술계 지인이 압도적이며, 아무래도 작업의 특수성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의로 고립을 추구하거나 타의로 고립된 예술가들은 상당수지만,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적당한 환기와 적절한 육체적 활동, 지지하는 주변 사람들이 필요하다. 본인이 원할 때 손을 뻗을 수 있는 동료나 네트워크는 예술가를 보호할 것이다. 또한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해서는 적절한 육체적 활동과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는 환기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해서 나는 이렇게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