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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뉴스

집중 기획 예술인의 창작

지금 여기, 주목받는 창작 주제

2019. 4

창작이 모방이자 고통이고, 질문이며 사랑이라면 그 모방과 고통, 질문, 사랑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지금, 여기의 최전선은 어디에 그어졌고, 어떤 목소리가 작은 목소리이며, 가장 상하고 아픈 곳은 어디인가. 근래 주목받는 창작의 주제들은 바로 그런 질문들에 대한 예술인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 페미니즘, 생명과학, 난민 등 예술인은 당사자와 관련 문제 가까이에서 촉수를 펼치고 있다.

소수자의 문화를 예술로

2008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은 그림책 『나무들의 밤』(원제: The Night of Trees)은 인도의 한 독립출판사, ‘타라북스’를 세계에 알렸다. 이 책은 인도 곤드족에서 전해지는 나무에 대한 민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채우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등 성황리에 전시되기도 한 『나무들의 밤』 표지들은 나무의 색감과 모양이 각기 다르지만 나무의 정령을 믿는 곤드족의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타라북스는 직원 15명의 소규모 출판사로 1995년 창립했다. 2013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 최고의 아시아지역 출판사’로 선정되었고, 그림책 원화 전시로 세계 각국을 돌며 디즈니 동화 외에도 다양한 동화책이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있다. 타라북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책 자체와 콘텐츠의 아름다움, 그리고 아티스트이자 페미니스트, 사회활동가로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책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편집장인 브이 기타는 말한다.

타라북스는 소수민족의 종교의식이나 생활 풍습과 연결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묶으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사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책을 팔아 남은 이익을 지역 예술인들과 그들의 커뮤니티로 돌아가도록 지원한다.

젠더 문제의식, 작품으로 확산

2015년 이후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 이슈가 창작 주제로 자주 부상한 건 거의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창작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고 비평하는 시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영화·미술·공연·대중음악·웹툰·팟캐스트·SNS·게임 등 여러 장르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 비평 관련 교육도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아름다움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존재했고, 창작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신체 표현이 중요한 시기에 여성들은 예술학교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드 실습수업에서는 배제되었다. 이러한 차별과 불공평한 구조는 미국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1931~)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아주 간명한 답으로 드러난다.

문제의식은 공연계에도 공유되었다. 특히 2018년 초 미투 촉발로 젠더 감수성은 공연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뮤지컬 〈레드북〉, 연극 〈엘렉트라〉, 오페라 〈살로메〉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이 활약하거나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작품들이 크게 증가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더 페이버릿〉부터 〈더 와이프〉, 〈항거〉, 〈칠곡 가시나들〉, 〈캡틴 마블〉까지 여성들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분하고,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이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 페이버릿 외 영화 포스터 5종 주목받는 여성 서사들 예술에 접속한 생명과학

트랜스제닉 아트. 유전자변형 미술이라고도 하는 이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작가는 브라질 태생의 미국 작가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 1962~)이다. 그는 유전공학을 미술 작업에 본격 도입하면서 바이오 아트의 한 분과로 트랜스제닉 아트를 개척했다. 1999년 〈창세기(Genesis)〉라는 작품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2000년에는 유전자변형 토끼 〈GFP Bunny〉를 선보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자기 혈액의 DNA를 식물에 융합하여 〈에두니아(Edunia)〉라는 꽃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의학과 생물학의 발달, 타종의 게놈 DNA 서열 분석 등 시대적 상황이 바이오 아트라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한 셈이다. 칵은 이런 조류에 가장 먼저 올라타 관심을 끌었다. 유전자 이식술로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명윤리적 차원에서 이러한 생명 변형과 조작은 문제가 없는지, 생명의 가치는 어떻게 환기되는지 다각도의 사유와 비평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유전자 융합을 통한 위계 파괴와 경계 허물기가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러한 방법의 남용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우려가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과학기술과 결합한 미술의 방향은 짐작하기 어렵고, 적절한 비평이 개입하기에 과학기술까지 포함하는 지식을 갖기란 미술 비평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임을 생각할 때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겠다. 모든 생물이 수평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면, 생명과학과 예술의 접목 이후는 생명과학 전문가들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 에두아르도 칵, 형광토끼 이미지 에두아르도 칵,  2000
  • 에두아르도 칵, 에두니아 이미지 에두아르도 칵,  2003-2008
상상된 경계로서의 난민

경계 없는 세계에 대한 낙관이 공기 중에 떠돌던 1990년대를 지나 이제는 이주민도, 난민도 전 세계적으로 몸을 세울 땅 한 평 없이 외면당하며 무지와 두려움 속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타자를 향한 이 같은 왜곡된 시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예술에서 가장 민감하게 이루어지는 중이다.

작년 말 〈난민, 그들의 삶과 터〉 전시에서는 레바논 작가의 회화와 한국 작가의 작업을 함께 소개했다. 박성경 작가는 레바논 어린이와 가족들의 얼굴에 그들의 이야기와 삶에 대한 희망과 가치관을 담았다. 허단비 작가는 레바논의 폐가 건물 위로 내리는 햇빛, 풍경 등을 통해 내면 심리를 드러내는 회화를 선보였다. ‘인간을 위한 예술’이라는 수식이 새삼스럽지만, 그 새삼스러움이 자꾸 요청되는 상황을 예술인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 설계에 참여했던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 1957~)도 몇 달 동안 그리스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과 함께 지내며 현장 증언에 힘쓰고 난민들 아픔을 알리는 설치·행위 예술을 선보였다. SNS에 난민촌의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그들의 고단한 일상을 알리고 난민들이 착용했던 구명조끼 1만 4천 여 개로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기둥을 뒤덮는 설치미술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작품에 피난 바닷길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난민들을 향한 추모와 헌정의 의미를 담았다. 국내외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행보는 ‘현대미술이 권력에 대항하는 법’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 박성경, <이브라힘>, 2018 박성경, 〈이브라힘〉,  2018
  • 허단비, <빛내음>, 2018 허단비, 〈빛내음〉,  2018
  • 아이웨이웨이, <구명조끼 기둥>,  2016 아이웨이웨이, 〈구명조끼 기둥〉,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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