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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3 2016. 6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만화가 김보통 인터뷰

‘보통’들이 만드는 세상

2016. 6

젊은 암 환자의 투병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과 슬픔을 대면하게 한 〈아만자〉. 탈영병을 잡는 헌병 이야기로 군대 내 일상화된 폭력을 전면에 다룬 〈D.P: 개의 날〉. 누군가에게는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그 다른 누군가, 만화가 김보통을 만났다. 글 김지승 / 사진 이현석

  • 인터뷰 이미지

책상 세 개가 ㄷ자 모양으로 놓인 작업실, 두 어시스턴트가 휴식 시간에 맞춰 막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보통 작가는 얼마 전 어시스턴트를 한 명 더 채용해 두 명의 어시스턴트와 작업 중이다. SNS에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정규직 채용, 4대 보험과 퇴직금 제공, 명절 인센티브와 판권 판매 시 인센티브 제공 등 어시스턴트 채용 및 근무 조건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관련 질문을 뒤로 미루고 작가의 근황부터 물었다. 외주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하면서 다음 연재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인복지뉴스에 연재 중인 ‘예술인 고민상담’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예술인복지재단 담당자의 제안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 멋대로 고민상담〉 스타일을 제안했는데, 주인공이 혼자 나와서 이야기를 끌어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재단이 진행하는 예술인 복지 관련 사업을 이왕이면 재미있게, 널리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상의 예술인복지재단 캐릭터를 만들어 둘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방식으로 풀기로 했다. 관심을 갖고 보니 알리고 싶은 복지 제도와 재단 사업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처음 얘기가 된 분량보다 많은 분량을 그리고, 영상물로도 작업한다.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예술이나 예술가에 대한 그릇된 인식 탓인지, 부당한 처우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나?

부당한 조건으로 일한 경험은 없다. 부당하다 싶을 때는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성격이다. 하지만 부당한 처우가 많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내게도 그런 조건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예술인복지재단과 일을 하면서 그런 경우 예술가를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만큼이나 유용한 제도들을 널리 알리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예술인 고민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시스턴트 정규직 채용에 관해 SNS에 쓴 글이 화제가 되었다. 오래 고민해 온 문제인지?

줄곧 어시스턴트와 함께 일을 해오면서 어시스턴트의 노동 조건이나 대우에 대해 늘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구두 합의, 저임금, 단기 아르바이트식 채용 문제 등을 사정이 나아지면 반드시 바꾸고 싶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 좀 나아졌으니 그들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대단한 게 아니다. 정규직 근로계약서를 쓰고, 월차와 학원 수강료 등을 지원하는 정도다. 물론, 그럼에도 부담감이 크다. 급여를 더 올려야 하는데 근무 시간은 늘리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처음 약속과 조건을 꼭 지키고 싶다.

우려나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들었다.

비판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오해다. 만화가들이 받는 고료의 편차가 크다. 나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정식으로 어시스턴트를 채용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부족한 대우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처럼 알면서도 못하는 상황의 만화가나 혹은 이미 충분히 좋은 대우를 제공하고 있는 만화가가 있는데, 내가 쓴 글로 마치 나만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을 거다. 이 점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공개적으로 글을 쓴 이유는 나처럼 인지도가 별로 없고 상황이 그리 풍족하지 않은 사람도 어시스턴트에게 이 정도 보장해준다는 걸 알림으로써 적어도 나보다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어시스턴트에게 나보다는 나은 근로 조건을 제공하기 바라서였다. 내가 부정적 반응을 받게 되더라도 어시스턴트 처우가 개선된다면 업계 전반적으로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지금은 그냥 나나 잘할 걸, 괜한 글을 쓴 건가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

현재는 나와 어시스턴트 두 사람이 함께하는 소규모 작업실이긴 하지만 나름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 어시스턴트에게 안정적인 급여를 주고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 수 있다. 만화가와 어시스턴트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회사를 만들어나가는 창업 멤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더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내 이익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SNS에 채용 조건을 올리면서 다른 면에서 부담도 있었을 텐데?

사실 쓰지 않는 편이 내게는 이득이다. 소위 업계 관행에 따라 일을 시켜도 내게는 불이익이 없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진행되는 건들이 많고, 어시스턴트들도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굳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린 건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처음 한 생각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선언을 했는데 내 이익만 챙긴다면 머지 않아 비판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거다. 내 의지와 마음을 제약하는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조직을 키워나가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확장시키기 위해 어차피 지나야 할 과정이다. 내 욕심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 일이다.

다른 만화가들의 반응은 어떤가? 비슷한 고민과 실천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나?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만화가가 별로 없어서 공유해본 적은 없지만 마음은 다들 나와 같을 것이다. 여유가 된다면 어시스턴트에게 충분한 급여를 주고 싶을 것이고 또, 어시스턴트라도 고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거다. 후자의 경우, 개인의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원고료의 최저선이 정해지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인기가 있고 소득이 늘면 어시스턴트를 고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개인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업계 측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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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조건이나 고료 등과 관련해 만화 업계 사정은 어떤가?

많이 좋아졌다. 최근 몇 년 동안 웹툰 시장 자체가 굉장히 커지고, 업체 쪽 인식도 변하고 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론화되고 있다. 웹툰 연재 만화가들이 연대할 수 있는 창구도 많이 생겼다. 오래 일을 해 온 만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요즘 같은 호시절이 없었다고 할 만큼 대우를 받고 있다. 운 좋게 이런 시절에 끼게 되어서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더욱 어시스턴트와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성찰이나 실천보다 큰 틀에서 구조를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동의하는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 대부분은 구조의 문제다. 구조의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개인적인 노력을 그만둘 수도 없다.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되,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도 해야만 한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만화가 ‘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에는 어시스턴트를 5명으로 늘려서 법인 등록을 할 예정이다. 어시스턴트들과 지분을 나누고 같이 일을 하는 공동체로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그렇게 또 다른 구조를 만드는 거다. 이 구조가 확장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사회 구조의 힘이 다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메꿔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노력을 하면서 구조의 문제를 지적해야 정당성도 생기지 않겠나. 물론 구조가 개선되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내 멋대로 인생상담’을 통해 받는 질문들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는지?

위의 얘기와 연결되는데,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을 자기 책임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사는 동안 사회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네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까 그게 정말 자기 문제인 것 같고, 자기 책임인 것 같고, 자신만 없어지면 될 것 같고, 스스로 패배자나 낙오자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이다. 물론 이 말이 위로는 될지언정 해법이 될 수 없다. 답변하면서 내내 마음이 무겁다.
입시든 취업이든 관련 문제들을 개인이 사회에 물을 필요가 있다. 사회에 묻지 않고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존엄을 깎고 비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분노의 화살이 구조로 향했으면 한다.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구조의 문제는 견고해진다.

왜 김‘보통’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럼 안 하겠다.

해도 된다(웃음). 나와 같은 생각이 보통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좋은 직장에 다녀야만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사회는 정상적인가?’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었으면 해서 지은 이름이다.
또한, 보편적 삶을 벗어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보통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 좋은 대학, 취업 잘 되는 과에 가고 싶어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100명을 세워놓고 공부만 하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꼴등이 생기는데 꼴등도 공부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꼴등이 차별이나 고통을 받지 않고, 낙오자 취급을 받지 않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나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예술가가 되고 또 다른 삶을 상상하는 사람은 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 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인터뷰 이미지 그런 인식 전환이 가능해지려면 결국 다시 사회 안전망, 복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맞다. 인식 전환이란 건 말장난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으로는 복지제도가 중요하다. 『빈곤에 맞서다』란 책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그물망이 없는 사회’란 말이 있다. 이 사회가 그렇다. 실수가 용인되지 않고, 줄에서 한 번 벗어나면 끝장이다. 나 역시 이러저러한 사람이 보통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위에 서있다.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고, 어떻게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물망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거꾸로 그런 사람들이 보통이 되면, 구조적으로 나아지는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현실이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냥 나 개인이 ‘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지고 실천할 뿐이다.

  • 만화가 김보통 ·2013년 〈아만자〉로 데뷔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D.P: 개의 날〉, 〈내 멋대로 인생상담〉 등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엔씨소프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일러스트 작업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