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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 2017. 11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기획 예술과 기업, 혁신과 창조적 가치

예술가와 기업의 창조적 협업,
본질적 방향성과 잠재적 가능성 구현

2017. 11
예술가와 기업의 창조적 협업, 본질적 방향성과 잠재적 가능성 구현

예술가와 기업·기관 간의 새로운 협업을 탐색하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본질과 잠재적 가능성의 구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세미나가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주관으로 9월 22일(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예술을 통한 혁신적 가치 창출’을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는 예술과 기업 간 협업의 가능성과 방향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기초 모델인 예술적 개입 이론의 대표적 연구자인 지오바니 쉬우마 교수(바실리카타대, 前 런던예술대학 혁신 인사이트 허브 센터장)의 기조 발제와 전수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예술경영 전공), 김석진 팀장(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3팀)의 주제 발제, 그리고 패널 토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지오바니 쉬우마 교수의 저서 『기업을 위한 예술의 가치(The Value of Arts for Business)』와 국제세미나 발표문 「성공적인 창조적 파트너십의 형성(Shaping successful creative partnerships)」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예술가와 기업의 창조적 협업의 본질적 방향성과 잠재적 가능성 구현’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 내용을 살펴본다.

패널 토론은 박신의 교수(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경희대학교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소장), 심상용 교수(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오세형 차장(장애인문화예술진흥원, 이음센터)이 준비한 토론문을 순서대로 발표하고 논의할 문제를 제기하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예술의 혁신이 선행조건
  • 박신의 교수 박신의 교수

박신의 교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실제로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이에 따른 ‘예술의 사회 통합적 기능’의 실천이라는 구도에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교수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 실현 그리고 사회의 여러 문제와 갈등에 예술이 개입함으로써 예술의 역할을 가시화하는 명제는 문화민주주의의 이념에 기반을 두며,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전개된 이러한 사업이 갖는 의미는 예술의 다른 면모 즉 새로운 시도 속에서 가능한 예술가의 새로운 유형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장르 구분이 명확한 모더니즘적 개념, 엘리트 예술로서 창작 중심의 활동을 펼치고 그 결과물을 극장이나 미술관, 콘서트홀 등에서 한정된 관객을 대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넘어서는 예술이어야 하고, 사회적 맥락과 공공 공간에서 모든 이를 대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방식을 자신의 창작 정체성으로 삼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예술 자체의 혁신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박신의 교수의 설명이다. 예술창작과 배급, 향유의 과정을 모더니즘적 기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 영역으로 열어가고 개입해 감으로써 결과물로서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예술 개념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개념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하며, 퍼실리테이터의 역할 자체가 예술 활동일 수 있고 창작 결과물이 아니라 참여자와의 대화에서부터 실행 단계의 모든 과정을 작업으로 간주할 수 있는 예술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 직무유형별(조직문화개선, 홍보마케팅, 제품기획, 교육훈련, 복리후생, 사회공헌)로 기업의 요구에 맞춘다는 시도 또한 자칫 기능적이고도 효용주의적인 접근이 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접근은 이미 중소기업청이나 여타 유사사업에서도 시도한 것이고, 또 메세나와 관련한 사업 혹은 일반적인 기업문화마케팅과 특별한 변별점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신의 교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이 사업의 플랫폼이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며, 다양한 예술단체들이 현재 이 사업을 통해 역량을 닦은 후 스스로 기업과의 협력 사업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전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기업도 이러한 사업을 통해 인식을 바꾸게 되면서 추후 스스로 예산 편성을 통해 예술인과의 협업사업을 진행하는 변화도 당연히 전망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과 예술의 창조적인 협력 가능성
  • 심상용 교수 심상용 교수

다음으로 심상용 교수는 쉬우마 교수의 이제까지의 연구와 오늘 강연은 예술의 어떤 고유한 특성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혁신의 출처가 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예술의 영감, 가치, 감성, 혁신성 등에서 비롯되는 에너지가 기업 조직을 쇄신하거나 경영방식 개선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양질의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기업은 예술적 경험에서 오는 창의적인 인지적 가능성과 통찰력을 수용하고 활용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쉬우마 교수의 설명에 대해 심 교수는 기업이 예술을 협력 파트너로 불러들이는 궁극적인 취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브랜드 마케팅 분야의 중요한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인 노스웨스턴대학의 장 노엘 캐퍼러(Jean Noel Kapferer) 교수가 확인한 바 있으며, 기업 핵심가치인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예술 가치를 도구적으로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이와 관련된 상당히 고무적으로 보이는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예를 들어, 루이뷔통, 슈에무라, 지샥 같은 브랜드가 일본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타카시(Murakami Takashi)와의 협업을 통해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경우다. 무라카미 이미지가 새겨진 루이뷔통 가방은 이 회사의 비슷한 디자인 제품보다 3배나 비싼 가격(한화로 약 400만 원 정도)임에도 순식간에 모두 팔렸고, 지샥의 300대 한정판 시계도 완판되었다. 이 밖에도 실로 다양한 유형의 협력 사례들은 기업이 예술의 고유한 에너지를 수용하고 활용함으로써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사회에 한결같은 선의를 베푸는 우호적인 후원자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 심 교수의 주장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들어 ‘작은 정부’라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선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은 공공성의 기반이 점차, 하지만 매우 급진적으로 약화된 ‘기업국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업국가는 기업의 치열한 경쟁체계가 사회의 모든 기관과 조직, 개인으로 전이된 사회며, ‘공공성의 부재’를 넘어 공공성이 대대적으로 공격받는 사회이다. 교육, 예술, 문화, 심지어 가정에조차 수익창출 논리가 촉구되고 해당 영역의 공공성과 자발성은 심각하게 훼손된 사회이며, 이는 작금의 한국사회에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빈곤 격차(poverty gap)** 중위계층과 빈곤층의 평균소득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수. 가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한국사회에서 상위 1%의 평균 소득은 중위소득에 비해서도 22.6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어떻든 기업과 예술의 협력에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성과는 어느 정도 입증된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과의 협업이나 그 성과가 예술에 반환(feedback)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술과의 협력을 통해 기업은 조직 관리, 매출 신장, 기업 이미지 쇄신 등 긍정적인 기업적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더 확장된 기업역량이 예술의 창조와 자유의 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심상용 교수는 쉬우마 교수에게 기업과의 협업이나 협력이 기업화된 생태계 안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예술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장 노엘 캐퍼러, 윤경구 외 역, 『뉴패러다임 브랜드 매니지먼트』, 김앤김북스, 2009
*중위계층과 빈곤층의 평균소득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수.
기업과 예술가의 파트너십,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방향
  • 오세형 차장 오세형 차장

마지막으로 오세형 차장의 순서가 이어졌다. 먼저 쉬우마 교수에게 혁신적인 경영과 기업문화 개선을 위해 예술의 창조적 역량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예술 주체의 반응과 수용 논리가 어떠한지, 어떤 미학적 해석과 논의가 이루어지는지 질문했다. 오 차장은 기업과 예술가의 내면적 만남, 상호관계의 신뢰와 변화에 기반을 둔 예술적 시도는 산업사회의 진전과 사회적 변화에 취약해진 기존 공동체를 돌아보고 문화적 회복을 모색하려는 공공성을 기반으로 출발했고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즉 이전의 전근대적, 근대적 체제에서 후기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국가나 사회가 살피지 못한 영역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생겨난 영역이라는 것이다. 예술계에서도 예술의 자율성을 비판해오던 예술가들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며 이러한 예술프로젝트가 확장되는 등 외부의 요구가 아니라 예술의 자발적인 마중물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가 자본주의의 꽃인 기업문화의 개선을 위해 협업한다는 과제는 예술가에게 자연스러운 동조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기업의 역량 강화나 조직문화 개선 등의 과제와 공동체 복원이나 자발성 확보와 같은 문제를 동일시하기에는 그 속성과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따라서 예술과 기업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영의 측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예술의 주체, 예술의 언어에서도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오 차장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과 관련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예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법률적 지원과 교육서비스 등의 간접적 지원을 넘어 직접적 지원형식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자생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적극적인 노력은 상당히 고무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파견된 예술인의 역할을 서술하는 논리에서 드러나는 커뮤니티아트, 참여예술, 공공미술에 관한 이론적, 미학적 흔적은 장기간의 실천과 합의로 형성된 보편적 이론이라기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드러난 현상이며, 여전히 논쟁적인 성격이 많은 담론이라고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점에 앞서서 그간의 공공정책이 예술지원의 근거로 삼아왔고 자체적으로 고유한 역사와 표현수단을 지닌 장르 중심의 다양한 예술이 선재하며 이는 지금도 현실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 차장은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지향점으로 삼는 예술을 통해 생산되는 관계, 주체들의 긍정적 변화라는 관점은 전체 예술의 현상을 수용하기보다는 특정한 태도와 관점을 가진 예술가나 활동을 지지하고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경향성을 인지하고 보완하려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또한, 예술가와 퍼실리테이터 단기지원의 한계와 그로 인한 상호 간의 제한적 기대감, 추가지원 부재로 인한 잠재적 성장과 확산의 단절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오 차장은 선택적 ‘예술’과 보편적 ‘복지’라는 모순과 이질성은 동시대의 여건이 낳은 정책의 환경이고 명확한 이론적인 토대가 부족하다면 이런 모순을 공유하는 예술가, 정책연구자, 사업실행자 간의 치열하고 현실적인 담론개발과 논의의 장을 더 체계화시키고 활성화하는 것이 타당한 대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예술가와 기업의 창조적 협업 본질적 방향성과 잠재적 가능성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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