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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9 2017. 10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송지은 대표

경계가 만드는 긴장,
“다른 세계를 느낀다는 의미죠”

2017. 10

런던에서 유학 후 다양한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송지은 작가에게는 대표, 기획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등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운영과 진행 중인 공동 프로젝트, 예술관 등으로 이어지던 인터뷰 말미에 그는 수식어 없는 아티스트, 그냥 ‘예술가’이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승 사진 <응옥의 패턴>, 유품 정리사와 참여자 워크숍, 2016

경계가 만드는 긴장을 유지하는 힘

주목받고 있는 〈응옥의 패턴〉은 그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다. 2015년에 리서치를 시작해, 2016년 첫선을 보이고 현재 제주에서 진행 중인 〈응옥의 패턴〉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한 명인 베트남 이주여성을 위한 작업으로 그가 고민하는 지점과도 많이 맞닿아 있다고 했다. 보통 내용적인 것을 고민한 후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이 작업은 형태보다 프로젝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이주여성에 대한 그의 감정, 베트남의 가족들을 방문하는 과정, 그 가족들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중요했다. 타 장르 예술인들과 일종의 프로덕션 스타일로 실험하는 작업이 거듭될수록 〈응옥의 패턴〉은 매번 새로운 고민과 관계가 결합해 같은 이름의 새로운 작품이 되고 있다.

너무 막연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은 어떤 것인가?

거대담론이라 누구든 짧게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의 방향에 국한해 답할 수는 있겠다. 어떤 사회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개인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예술의 형식과 방법보다 내가 느낀 것, 사회에서 보는 것, 생각하는 것들 안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예술로 다시 던져볼 수 있다. 지금 하는 작업에서 보면 그게 예술이란 생각이 든다.

〈응옥의 패턴〉도 그런 예술관이 투영된 작품인 듯하다. 작업 과정에서 몰두했던 부분이 있다면?

처음에는 ‘응옥’이란 여성에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하면서 공포감이 들었다. 그 여성이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그 여성과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그 여성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고민하면서 두려움과 마주했다. 이 과정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사비를 털어 응옥의 베트남 본가로 갔다. 응옥이 가족을 위해 지어준 집이었다. 거기서 죽음이 삶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현대 사회에서는 죽음이나 부정적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을 삶에서 배제하지 않나. 하지만 응옥은 집 안에, 내가 마신 차 속에, 앉았던 소파에, 숟가락에 있기도 했다. 죽음은 그런 것이란 걸, 삶과 분리되어 괴리가 큰 감정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경험을 사람들이 〈응옥의 패턴〉에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협업 건축가와 얘기했다. 설치물이 아니라 매개체가 되길 바랐다.

10월 중에 제주에서 〈응옥의 패턴〉을 다시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원래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거나 재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형태나 내용적 재현보다 그 안에서 끌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미처 다루지 못했던 것들이 아직 있다. 도달하지 못한 곳의 이야기를 상상력을 결합해서 풀어보고 싶었고. 주제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장르 예술인들과 나누고 싶어서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된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 만난 무용가 두 분에게도 이번 제주 작업 참여를 요청했다. 여러 예술인들이 다양한 온도 차를 가지고 〈응옥의 패턴〉을 해석해줬다. 제주 작업은 처음과는 다르게 작가들 각각의 작업이 서로서로 기대어 있다. 누구 하나 빠지면 존재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구조랄까. 보는 분들이 다양한 차이와 결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경험한 세계의 연장선, 안산 원곡동 현재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이하 ‘리트머스’) 대표로 있다. 공간의 정체성과 작업의 지향점은?

‘리트머스’는 동시대 미술 공간이다. 2007년 경기도 안산 원곡동에서 시작되었고 나는 2015년부터 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원곡동은 아시아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다. 이 지역 특성적 맥락을 주제로 ‘리트머스’에서 전시와 프로젝트, 교육, 포럼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전 대표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내게 그곳은 지역과 예술을 매개하는 공간이다. 예술인들이 지역을 읽기도 하고, 지역 사람들이 공간에서 예술을 만나기도 한다.

2011년부터 ‘리트머스’에서 작업을 했다. 6년간의 영국 유학은 내게 단기 이주 경험과 마찬가지였다. 이방인의 소외감,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불편함 등 내내 이물감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받은 미술 교육의 장점이 한국 시스템과는 맞지 않아서 돌아와 한동안 방황도 했다. 그런 간극들을 안고 만난 안산 원곡동은 내가 경험한 세계의 연장선이었다. 어떤 맥락에서 편안함이 있었다. 사회적 시선이 만드는 개인의 소외감과 여타 감정들에 서로가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다. 공감은 예술이 가진 힘일 수 있고, 작업에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리트머스’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감하고 공감받는 과정이 작업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가?

작업 재료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대화라고 대답한다. 이 사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바라보는 것을 느꼈을 때 세상에 관한 질문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20대의 내 경험이 안산에서 작업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소셜스킨〉이란 프로젝트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데, 사회적 시선에서 소외되는 것들이나 그 시선이 제멋대로 규정한 정체성을 해체하는 작업에서 그 소외는 남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것이고, 내 것이었다. 미약하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면서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다. 내게는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는 이 지역이 서울과 멀리 동떨어진, 갇혀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길 바란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 경험은 어땠는지? 이후 작업에 영향을 받은 바가 있다면?

사업 원년부터 매년 참여하고 있다. 사업의 본래 목적인 예술인 복지나 사회적 인식 개선, 사회 참여 기회 연결 등도 중요하지만 예술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는 게 내게는 가장 매력적이다. 함께 팀을 이루는 구성원들 자체가 중요했고, 타 장르 예술인들을 만나 새로운 작업을 모색하는 게 좋았다.

작년 사업에서는 두 무용가, 배우, 미술가, 사진작가와 함께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야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무래도 야외 전시는 비용이 많이 들고 7, 8월 야외활동이 힘들긴 했지만 또한 즐거웠다. 참여예술인들끼리 친해졌고 사업이 끝난 후에도 서로의 전시, 공연에 관심을 가지고 협업할 기회를 만들어가며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좋다. 넓게 퍼지는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여러 장르의 예술인을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다. 이런 부분이 내가 지향하는 예술과도 닮아 있다.

관계장으로서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사업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예술인 복지에 대해 어떤 시각과 의견을 갖게 되었을 것 같다.

예술인 복지는 특수한 복지다. 창작자 개인을 지원하는 개념이 아니라, 예술활동에서 수익을 만들 수 없는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의미 아닌가? 그래서 예술인 복지가 다른 복지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는 복지재단이나 정책입안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 과정에서 실제 복지 대상자인 예술인들과의 대화와 협의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예술인의 현장 상황에 기반하는 복지 사업이 가능하다. 가령, 예술인을 위한 행사나 세미나, 정책설명회 등을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건 예술인 생태를 너무 모르는 기획이다. 예술인들이 생업하는 시간, 작업하는 시간, 자기 몰두가 필요한 작업 과정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에 여러 예술인들이 고마움을 갖고 있다. 여타 문화재단과 달리 예술가를 파트너로 생각하는 건 재단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현재 정책으로는 여러 상황의 예술인들을 다 끌어안기 힘들다. 예술인들의 현실과 생태를 연구하고 정책을 기획하는 전문 부서가 필요하고, 예술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묻고 수렴할 수 있는 창구가 상시 열려 있어야 한다.

예술, 예술인에 대한 사회 평균 인식은 어떻게 느끼나?

예술인들 노동시간을 따지면 일반 직장인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누가 나를 구속하지 않지만 자기 주도적 활동이니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 붙잡고 있다. 그런데 보통은 예술인들이 힘든 일 안 하고 노는 사람들인 줄 안다. 이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보고 대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술을 소비자 마인드로 대하는 일이 흔하고, 더 무서운 건 예술 정책조차도 그런 방식으로 예술을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점점 할 말이 없어진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삶과 예술 사이의 긴장’에 대해 언급한 걸 봤다. 평소 이 긴장을 어떻게 느끼고 작품에 반영하는가?

삶과 예술 사이에는 긴장이 필요하다. 내 삶과 예술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예술작업이 어떤 다른 삶과 맞닥뜨렸을 때 여러 갈래에서 긴장이 확 생긴다. 예를 들어, 작업이 위치하게 된 야외 공공 공간과 예술 사이의 경계, 대중과 예술이 만났을 때의 긴장감, 타자를 만났을 때의 긴장감 등이 계속 있다. 내 경우 뭘 하든 평소에 그 긴장이 늘 존재한다. 야외 작업을 지향하고, 공공 안에 파고드는 걸 더 재밌게 느끼기 때문일 거다.

공동체 속 긴장감은 무척 중요하다. 긴장된 상태라는 건 서로를 계속 느끼는 상태라는 의미이다. 긴장감이 없으면 경계 없이 융화되고, 타자를 인식 못하면서 내 존재도 흐려진다. 예술은 경계를 계속 두면서 삶에 긴장의 모서리를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일부분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삶의 전체 판을 흔드는 것. 그럴 때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재미있는 것 같다. 좀 더 실천적이고 실행적인 걸 좋아한다. 물론 아름다움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협업하는 분들과 미적인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다. 아름다운 것 안에 내가 고민하는 게 담겨야 하고, 그 안에서도 계속 긴장이 만들어진다.

비우고 버리는 작업 과정 협업에는 타 예술 장르와의 긴장, 타자와의 긴장도 작동하지 않나?

누군가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 내 안에 꾸준히 쌓인 걸 비운다. 비워야 그 사람이 와서 그 자리에 위치할 수 있다. 내 안에 무언가 꽉 들어차 있으면 누가 들어올 수가 없다. 그래서 버리는 과정이 있다. 작업 과정 전반이 그렇다. 꽉 채워서 내용을 보여주는 순간 참여예술인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가 없다. 예술인이 자기가 쌓아올린 개념을 어떻게 버릴 수 있나 반문할 수 있지만 그걸 버릴 수 있어야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예술의 여백이 생긴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작업이 몇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리서치해서 단기간에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작품이 찍어내는 형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버리고 비우는 과정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 예술은 작가가 제시하는 개념과 별개로 관객이 하는 개념에 대한 질문이 계속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개념의 공백을 만들려면 내 걸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고, 또 공동체나 커뮤니티로 예술인들이 결합할 경우 저자성도 내려놔야 할 때가 있다. 즉,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거다. 그렇게 예술만 남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예술인이 저자성을 내려놓는다는 건 분명 싫고 어려운 일이다. 100%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완전히 실패하기도 하고, 내 의도와 달리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작업이고, 프로젝트의 특성이 된다.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앞으로 작업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하나는 〈어느 이방인의 죽음〉이라고, 알려지지 않은 이주민들의 죽음을 책 형태로 아카이빙할 예정이다. 사전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응옥의 패턴〉을 마무리한 후 이 프로젝트로 정리해 보고 싶은 다양한 형태의 삶과 죽음 들이 있다. 다른 하나는 〈풋 프린트 인 중림동〉. 서울 중림동에서 사람들과 투어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개요는 나온 상태고 진행을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 매일 “바쁘지?”라고 물어본다. ‘리트머스’ 운영을 하고 있으니 흐름을 놓칠 수 없고 나 개인의 예술 실천도 중요하다. 지금 즐겁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덜 쉬면 되지 않나 한다. 바쁠 땐 바쁜 게 좋은 거니까.

  • 송지은
  • 송지은
    기획자, 아티스트
    현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대표
    2009 Goldsmith, University of London BA Visual Art and Critic study
    2011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다섯 개의 플롯, 그리고 그 이상의〉
    2012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지구가 부른다_다르게 사유하기〉
    2013 아이공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2014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아시아 예술 축전〉
    2015 175 갤러리 〈유랑; Site Explorers〉
    2016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응옥의 패턴〉
    2017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안산리서치] 〈응옥의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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