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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8 2017. 9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법률상담 컨설턴트 캐슬린 김 변호사

예술인의 권리의식과
공정한 기회·계약·거래 환경이 중요하다

2017. 9

예술인은 법을 모르고, 법률가는 예술을 모른다는 통설은 이제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예술과 법. 여간해서는 만나기 어려운 두 분야를 냉철한 분석과 깊은 애정으로 연결하고 있는 예술법 전문가, 캐슬린 김 변호사는 그런 통설을 무색하게 만든다. 2015년부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법률상담 변호사로 예술인의 법적 문제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예술인의 법적 권리의식을 독려하고 예술인 복지와 더불어 예술생태계 개선이라는 큰 그림을 제안한다. 글·사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정리 김지승

예술인의 권리의식과 공정한 기회·계약·거래 환경이 중요하다

법적 분쟁에 있어 대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예술인에게 신뢰할 수 있는 법률가는 무척 드물고 그만큼 귀하다. 캐슬린 김 변호사는 ‘예술가의 권리’라는 글에서 “예술가의 창조적이고 지적인 노력과 노하우를 사회문화적 기여 또는 공공재적 성격으로만 치부해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김 변호사의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반영한다. 저서 『예술법』에서는 예술의 법적 정의부터 표현의 자유, 예술인과 예술계 종사자에게 실무적으로 필요한 법률까지 제시하고 있다. 특히 예술과 법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은 예술을 보는 김 변호사의 남다른 관점과 융숭한 지적 태도를 느끼기 충분하다. 그를 만나 예술인에게 필요한 권리의식과 법률지식, 예술과 법의 관계, 계약 시 주의사항 등 전문적인 조언을 들어봤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을 위한 법률 상담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분쟁이 있기 마련이고 예술계도 마찬가지이다. 예술 창작부터 전시와 유통, 소장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분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예술인과 예술계 종사자들은 이 크고 작은 분쟁들이 ‘법적 분쟁’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법적 분쟁의 경우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몰라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 시장이 발달한 나라들 특히 영미권 국가는 예술법(art law)이 중요한 법률서비스 분야 중 하나다. 또, 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법률가들이 예술인들을 위한 무료 상담활동을 많이 한다.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예술인들이 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또는 예방 차원의 법률 서비스가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상담 및 컨설팅을 진행하며 안타까웠던 점이나 전반적으로 개선이 시급해보이는 부분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속적으로 법률 교육 및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관련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예술인들도 점차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여러 법적 분야 중 예술법 분야는 한국에서 아직 미성숙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좀 독특한 분야이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법률가가 아직 수적으로 많지 않고 법률적 수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돈 되는 사건이 많지 않다 보니 예술인들이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인 대부분이 저작권이나 계약을 비롯한 법적 개념에 취약한 측면도 있다.

특히 개선이 시급한 건 뿌리 깊은 불공정 관행이다. 이는 예술인들이 기본적 법률 지식을 갖추고 계약서 작성에 적극성을 보인다고 해도 해결되기 어렵다. 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예술저작권을 포함한 지식재산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고 협상 및 계약 문화도 익숙지 않다. 예술인이 권리의식을 가지고 대응을 한다 해도 상대측에서 받아들이지 않거나, 소위 갑이라 불리는 쪽에서 우월한 협상력을 과도하게 이용해 불공정 관행을 강제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다. 우선 예술인 스스로 권리의식이 있어야 하고,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회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뿌듯함이나 보람을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상담 컨설팅이 도움이 됐다며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분들이 있다. 상담 컨설팅 후에도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불공정 관행이나 갑을 관계에서의 협상력 차이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도 많다. 간혹 ‘조언대로 해서 잘 해결되었다, 위험한 일을 피했다, 만족스런 계약을 체결했다’면서 예술인들이 연락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내 말 한마디가 한 예술인의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늘 두려움을 느끼며 마음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곤 한다.

저서 『예술법』에 '예술가와 복지'라는 목차를 따로 빼 기술하고 있다. 예술인 복지 정책의 지향점에 대한 평소 생각은?

내가 만난 많은 예술인들이 희망하는 것은 예술인 개개인을 위한 시혜적 복지보다는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였다. 재능기부나 열정페이라는 기만적인 명명을 내세워 예술인의 활동을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하고 강요하거나, 예술인을 노동의 대가로 정당한 돈을 받는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봐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더 힘들어했다. 현재 재단의 다양한 복지 정책도 물론 필요하지만 예술인들이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공정한’ 계약과 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계약서가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상당히 불리한 조건의 계약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지는 것, 계약서가 있어도 계약의 내용을 지키지 않는 것, 아예 보상을 하지 않거나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 것, 임금를 체불하거나 계약된 금액을 주지 않는 것, 저작권 같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현저히 낮은 금액에 양수하는 것, 예술의 가치와 지식재산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 또는 존중하지 않는 것 등. 예술계에 만연한 이와 같은 불공정 관행만 어느 정도 해소되어도 예술인의 평균적 삶은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예술인의 권리의식과 공정한 기회·계약·거래 환경이 중요하다 “예술과 법 사이의 미묘한 긴장”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 긴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늘 예술인과 법률가를 대척점에 있는 직업군이라 설명한다. 예술인은 인류 진보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예술인들은 기존의 규범이나 체제를 거부하고, 경계를 허물고, 기득권을 배척하고, 기존의 관념과 통념을 부수고, 한발씩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곤 한다. 반대로 법률가들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법(어떤 법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법이기도 하다)과 질서를 수호하고 그 법치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야만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수호자인가? 그건 아니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이고, 시대에 따라 필연적으로 바뀐다.

종종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 예술인들이 앞장서서 사고를 치면, 법률가들은 수습하는 역할이랄까? 예술인들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기존의 규범과 질서에 도전하면 법률가들은 필연적 변화를 어떻게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규범과 제도의 틀로 편입시킬 것인가,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까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렇게 판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새로운 법리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법률이 개정되거나 폐지되거나 새로 제정된다. 그 ‘미묘한 긴장’은 바로 이 사이 어딘가 늘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과 법 사이의 미묘한 긴장은 예술법 영역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무릇 예술은 경계를 허물고, 관습에 도전하며 기존 질서와 사회 통념을 깨부수고 나아가는 것을 본성으로 삼는다. 현재를 넘어선 낯섦이 예술의 본질이다. 이와 반대로 법은 기존의 관습과 사회 상규, 법적 질서 내에서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예술과 법은 길항 관계를 형성한다.” - 『예술법』에서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예술법에 영향을 미치는가?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문화 선진국일수록 예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위대한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된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고, 공감하고, 표현한다. 예술은 그 자체로 ‘표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아닌가. 예술은 좀 더 높은 차원의 표현과 소통 행위이다. 예술이 보통의 일상과 그리 동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 행복, 평안을 주는 예술을 창작하는 예술인 역시 직업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예술인이나 예술행위에 대한 왜곡된 시선 가령,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돈을 밝히는 건 순수하지 못하다는 시선 등은 예술인들을 힘들게 하고 예술을 고사시키고 만다. 직업 예술인들은 예술을 창작하고 표현하는, 헌법상 기본권을 가진 존재이자 자신의 예술행위나 그 결과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 그리고 법령상의 권리 등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어떠해야 하고, 예술인은 어떠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은 예술인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예술인들의 해외 계약 사례가 늘고 있다. 국제적으로 꼭 알아야 할 저작권 관련 지식이 있다면?

우선 저작권도 저작물, 즉 창작물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재산적’ 권리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고자 할 때는 권리자에게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인터넷 세상에서 자신을 숨기기란 쉽지 않다. 허락을 받고 정당하게 이용하겠다는 태도는 재산적 권리뿐만 아니라 창작자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예술인들끼리는 서로 무상 이용을 허락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때도 허락받은 이용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되고, 크레딧을 적절히 표기해 주어야 한다.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나의 권리도 존중받을 수 있다.

또한, 이용 허락(라이센스) 제도를 잘 활용하길 바란다. 저작권이 여러 가지 권리의 묶음이라는 점, 따라서 분할해서 양도하거나 이용을 허락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으면 좀 더 현명한 계약을 할 수 있다. 특히 ‘원 소스 멀티 유즈’ 시대에 2차 저작물 작성권은 쉽게 양도하거나 매절로 계약하지 않길 권한다. 창작자 본인이 권리의 주체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 계약이나 독점 계약이 관행화되어 있는데, 국제 계약의 경우 창작자이자 권리자로서 협상력을 발휘해 충분한 협의를 이끌어내는 게 좋다.

예술인 법률상담카페 등 예술인을 위한 상담제도가 개선해야 할 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법률상담도 매우 중요하지만 상담 이후도 중요하다. 상담 이후 상담 신청자의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해결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추가적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후속적 조치가 가능해지면 예술인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재원이 필요하겠지만, 조정이나 알선과 같은 ‘대체적 분쟁해결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거나 재단에서 직접 나서도 좋을 것 같다.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로선 현저히 부족한 예술 판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걸 텐데, 관련해 송무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예술인들이 분쟁을 미리 예방하거나 분쟁에 대처하는 데 있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계약서에 서명한다는 것은 이 계약의 조건과 내용에 법적으로 구속되겠다고 약속하는 의미이다. 계약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서 서명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해가 안 되면 자문을 구하고, 충분히 계약 내용을 숙지한 다음 서명해야 한다.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거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계약서에는 함부로 서명해선 안 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권리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법언이 있다. 법은 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신이 권리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거나, 권리를 지키는 일련의 과정을 두렵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포기하면 어느 누구도 대신해 권리를 지켜줄 수 없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조언하기 힘들지만 가능한 한 스스로 권리의식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요청해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캐슬린 김(Kathleen E. Kim) 변호사
  • 캐슬린 김(Kathleen E. Kim) 변호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J.D.)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상담컨설턴트
    법무법인 중정, 홍익대 겸임교수
    『예술법』 저자, 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 및 웹툰OSMU 표준계약서 개발자
    주요분야: 예술법, 엔터테인먼트법, 지적재산권법, 국제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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